ⓒEPA지난 2월20일 코소보 시민이 수도인 프리스티나에서 깃발을 흔들며 독립 선언을 자축하고 있다.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지도 4개월이 지났다. 지난 6월15일 알바니아계 코소보 정부의 새 헌법이 발효됐다. 그와 함께 그동안 코소보 지역을 관리해왔던 국제연합(유엔)은 그만 손을 떼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6월2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유엔은 코소보 독립 선언 이후 새로운 현실에 직면해야 하며 코소보에서 더 이상 과거처럼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라며 코소보에서 유엔이 할 일을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엔이 해왔던 일을 알바니아계 코소보 자치정부와 유럽연합(EU)에 넘긴다는 뜻이다. 유엔은 1999년 내전 종식 이래 9년째 코소보의 치안·사법·행정 업무를 맡아왔다. 반기문 총장이 철수 계획을 발표하자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코소보 독립이 공고화된다’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늦어도 8월에는 유엔이 코소보에서 발을 뺄 것으로 보인다.

이 전환기에 가려진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 유엔이 코소보를 떠나버리면 지난 9년간 유엔과 관련해 벌어진 각종 비리가 영영 묻혀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 2월20일 코소보가 만천하에 독립을 선포한 지 사흘 뒤 유엔 코소보 행정기구(UNMI K) 재정국장 예메니 나빌이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횡령한 돈은 4만 유로(약 6600만원)였다. 당시 이 소식은 외부의 눈길을 별로 끌지 못했다. 코소보 독립을 축하하는 축포와 환호가 세계 미디어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코소보 지역에서 벌어진 유엔 관리의 부정부패 규모가 엄청났음이 속속 드러났다. 6월 현재 공식으로 밝혀진 횡령 및 유용 액수가 4700만 유로(약 774억원)에 이른다. 1999년 이후 유엔이 코소보에 쏟은 재건기금 30억 유로의 2%에 해당되는 액수다.

9년간 횡령·유용 액수 774억원

이 비리를 수사하는 UNMIK 재무조사국장 로버트 마그니 대령은 일급 비밀로 간주되는 사건 파일을 갖고 있다. 2005년 한 해 벌어진 사건만 30건에 이른다. 마그니 조사국장의 부관인 마시모 빈센티 대위는 “UNMIK가 EU로 대체된 이후에도 수사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엔이 철수한 뒤에 수사를 계속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리를 저지른 유엔 관리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스테파노 발렌티노코소보 수도 프리스티나에 있는 유엔 코소보 행정기구 본부를 유엔 병사가 지키고 있다.
현재까지 유엔 관리 가운데 비리로 체포된 사람은 독일인 요 트러츨러 단 한 명이다. 그는 코소보 지역 전력 공기업이었던 KEC의 자금 중 450만 유로를 횡령했다.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나머지 수많은 비리 사건의 경우 용의자가 이미 외국으로 도망치고 없다. 앞서 언급한 예메니 나빌 역시 UNMIK 재무조사국의 수사가 시작되자 도망쳐버렸다. 국제법에 따라 수배 조처를 할 수는 있어도, 외국으로 간 용의자를 소환하기는 쉽지 않다.

코소보 알바니아계 최대 일간지 ‘코하 디토레’의 기자인 아우구스틴 팔로카는 “트러츨러가 체포된 이유는 그가 독일 정부를 과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이 자신을 보호해줄 거라 믿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소보 지역 신문이 아무리 이 문제를 보도해도 서방 기자들은 관심이 없었다”라며 국제적 무관심을 질타했다. 유엔이 30억 유로를 쏟아부었는데도 코소보 경제는 별로 나아진 게 없는데, 유엔의 고질적 관료주의와 부패에도 원인이 있다.

유엔 관리의 비리는 횡령만이 아니다. 각종 계약 비리도 있다. 예를 들어 코소보의 한국통신에 해당되는 PTK를 관리하던 스웨덴 관리 제라드 피셔는 오스트리아 회사 인포비아에 인터넷 사업을 넘겨주는 4200만 유로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불법 로비가 있었던 사실이 발견돼 스위스 검찰이 그를 기소했다. 2004년 UNMIK 재무조사국은 중립국인 마케도니아 수도로 그를 불러 취조했다. 하지만 여러 유럽 국가의 외교 문제가 얽혀 있던 이 스캔들은 흐지부지 끝났다. 제라드 피셔의 보좌관이던 알바니아인 레메 세마는 코소보에 남아 있다가 체포됐다. 그녀는 지난 5월9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몸통은 놓치고 깃털만 잡은 셈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월급을 3000유로씩 받는 유엔 관리 몇 명이 코소보와 관련된 계약을 좌우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리가 밝혀지는 시점은 항상 당사자가 본국으로 떠난 다음이다.

또 다른 유형의 비리는 공기업 매각 과정에서 이뤄졌다. 유엔은 코소보를 관리하는 동안 이 지역 내 몇몇 공기업을 민영화하는(실제로는 서방 대기업에 넘기는) 작업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코소보 신탁회사가 주도했다.

예를 들어 2003년 3월 코소보 신탁회사 사장이던 영국인 로저 레이놀드는 노르웨이 투자회사와 30만 유로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몇 달 뒤 로저 레이놀드는 유엔을 떠나 이 투자회사의 임원이 됐다. 2006년 11월 유엔 검찰국은 그를 비리 혐의자 명단에 올렸다. 혐의 내용은 배임·사기·돈세탁 등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로저 레이놀드는 전세계를 활보한다.

코소보 신탁회사의 전 위원 바리 샤바니는 니켈 광산 민영화 사업 과정의 비리를 폭로했다. 원래 민영화는 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알페론’이라는 회사가 불법으로 단독 입찰해 사업을 따냈다는 것이다. 이 계약은 무려 1억 유로에 이르는 것이었다. 샤바니는 “규정에 따르면 최소 3개 이상 회사가 입찰에 참여해야 하는데도 단독 입찰과 매각이 강행됐다. 당시 이 광산을 인수하려고 협상 중인 회사가 대여섯 군데 됐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회사들은 배제됐다”라고 말했다.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쓴 유엔 관리도 있을 것이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가려내려면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반기문 총장의 공언대로 만약 UNMIK가 무작정 해체되면 이 모든 사건 파일이 캐비닛 속에 영영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기자명 코소보·스테파노 발렌티노 (유로리포터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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