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유럽에서 독일 베를린이 스타트업 하기에 최적의 도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스타트업을 하려는 인재가 베를린으로 몰려들고, 세계적인 스타트업 ‘사운드 클라우드’ 등이 베를린에서 성장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수년 내에 베를린의 스타트업 업계가 런던의 그것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온다. 지난 7월 첫째 주, 베를린을 직접 목격했다. ‘열광’의 이면도 볼 수 있었다.

베를린은 외국인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스타트업 펍네이티브 관계자 3명은 이탈리아인·루마니아인·한국인이다. 창업자를 포함해 26명이 일하는 회사의 직원 중 독일인은 없다. 이튿날 방문한 베를린의 유명한 스타트업 코워킹 공간인 ‘팩토리 베를린’에서는 헝가리인이 필자를 안내했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유명 스타트업 ‘사운드 클라우드’의 창업자는 스웨덴인이다.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필자를 맞아준 콜린과 톰은 각각 미국과 영국 출신이다.

베를린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 대다수는 인종뿐 아니라 국적도 제각각이다. 다양한 인종이지만 대부분 미국인이 종사하는 미국 스타트업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런 다양성에는 특유의 힘이 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어려움에 따른 비용도 발생한다. 문화적 배경과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동료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임정욱 제공베를린에서 열린 한 패션 관련 스타트업의 사업모델 설명회. 행사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낮은 물가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20∼30대 스타트업 종사자에게 매력적이다. 실리콘밸리의 살인적인 물가에 견주면, 베를린의 음식료품 값이나 집세는 저렴한 편이다. ‘꽤 괜찮은’ 수준의 삶의 질까지 보장된다. 저렴하고, 예술 친화적이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여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는 젊은이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임금 수준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낮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려는 인재는 자연스럽게 다른 대도시로 떠나게 된다. 또 독일은 노동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의미다. 비교적 단기간에 성패가 갈리는 스타트업의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럽 다른 도시에 비해 ‘정부 지원’은 약한 편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 지원 측면에서 보면, 베를린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매우 약한 편이다. 메르켈 총리는 스타트업들을 경제성장 동력이라며 추어올린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

그렇다고 베를린 스타트업들이, 실리콘밸리의 경쟁자들만큼 모험 투자를 활발하게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독일 투자자는 미국 투자자보다 보수적이다. 그리고 창업 및 투자 관련 규제도 많다. 또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 시장을 미국이 주도하는 만큼 베를린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매출 역시 미국 업계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다. 냉정히 평가하면, 베를린의 스타트업 업계는 ‘눈부신 발전’이라기보다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의 스타트업 중 이렇다 할 성공 사례 역시 지금까지는 사운드 클라우드 정도다.

하지만 컨설팅 전문 업체 매킨지 보고서는 베를린 스타트업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다. 이 부문에서 2020년까지 일자리 10만 개 이상이 창출되리라고 예상한다. 베를린은 가파르게 성장할 기회의 도시라기보다 여유롭고 안정적인 땅이다. 영어로 생활하는 데 무리가 없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창의적인 도시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젊은이를 끌어들인다. 훗날 베를린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스타트업이 더 성장하더라도 런던이나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정체성을 띨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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