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신좌파의 상상력〉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좌파 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 1·2’를 최근 펴냈다. 1권 〈한국의 민중봉기〉는 1946년 10월 총파업에서 시작해 2008년 촛불시위에 이르는 ‘민중을 주인공으로 다시 쓴 남한의 사회운동사’이고, 2권 〈아시아의 민중봉기〉는 1947년부터 2009년에 이르기까지 필리핀·버마(미얀마)·티베트·중국·타이완·방글라데시·네팔·타이·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9개국에서 벌어진 민중봉기의 역사를 다룬다.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라는 주제 아래 한국의 민중봉기가 별도로 한 권의 책이 된 까닭은 “아시아 전역의 봉기 형성 과정에서 광주가 담당한 역할로 인해 남한의 운동은 아시아 민중권력의 중심에 위치”(2권 17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민중봉기의 주체들은 “서로에게서 배우고, 이전 사례에 근거하여 운동을 확장하고, 서로의 어휘와 행위와 열망을 빌리는 수용력을 발휘”해왔다.

카치아피카스는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68혁명의 의미를 “인류가 처음으로 자기의식을 펼친 해” “인류가 서로 연대하여 투쟁하는 수백만 보통 사람들이라는 역사로 갑작스럽게 들어섰음”을 상징한다면서 민중의 자기결정에 의한 해방적 상상력의 실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에로스 효과(Eros Effect)’라는 개념을 선보이는데,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 1·2’는 이 개념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작동하는지를 재확인하는 일종의 사례 연구다. “2011년의 지구적 봉기는 진보적 힘으로 소멸했지만 사회운동들이 어떻게 급속하게 확장하면서 동시적인 물결로 등장했는지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내가 ‘에로스 효과’라고 부르는 그 현상”(1권 7쪽)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1968년 5월 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 시내 광장에 모인 사람들.

‘에로스 효과’란 68혁명의 사상가이자 카치아피카스의 스승이기도 한 H. 마르쿠제의 ‘정치적 에로스와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저자가 차용해 확장한 것이다. 이 개념은 혁명(또는 봉기)의 시작은 ‘이성’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솟구치는 ‘해방에 대한 본능적 요구’와 ‘억압에 저항하는 원초적 본능’에 의한 것, 다시 말해 ‘에로스(eros)적인 저항’을 뜻한다. 카치아피카스에 따르면 에로스 효과란 ‘대중의 직관’과 ‘다중의 지혜’에 의해 수십만, 때로는 수백만 민중이 “서로를 직관적으로 동일시하며 자신들 행동의 힘에 대해 동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자기조직화’해내는 동력이다. 또한 이 힘은 우리가 광주민중항쟁의 ‘절대 공동체’에서 직접 목격했듯이 봉기 이전의 지배적이었던 가치와 규범을 서로에 대한 인간적 사랑과 연대로 대체한다. 세계의 모든 민중봉기는 표면적으로는 특정 민족국가 내부에 종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현상은 전 지구화한 상호관계 속에서 발전했고 일련의 연쇄 과정을 통해 전파되었으며 오랜 세월 체제에 저항하는 힘으로 남았다.

실패로 끝났다고? 하지만 세계를 뒤흔들었지

그러나 저자 스스로 밝혔듯 “많은 경우에 글로벌 기업들이 봉기 주체들의 등을 타고 넘어와 과거에 닫혀 있던 시장을 열고 자국 자본가들에게 고용된 민중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자본의 국제기구들은 “민중운동의 에로스적 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유에 대한 요구를 소비재, 신기한 장치와 발명품에 대한 요구”로 변질시켰다. 과연 ‘에로스 효과’는 단지 혁명운동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적 구성 개념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사회를 변혁하는 데 유용한 운동 전술일까?

이 책에서 그가 어떻게 답했는지 소개하는 대신, 나는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이제껏 세계적인 혁명은 단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라는 말로 대신하겠다. 억압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저항의 꽃이 피어나는 법이다.

기자명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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