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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5일 기름값 걱정에 시름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 발표됐다. 한국석유공사가 주도한 SOC 컨소시엄이 이라크 쿠르드 지역 8개 광구의 개발 계약을 따냈다는 보도였다. 확보한 석유 매장량이 약 20억 배럴로 한국이 2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초대형 유전 개발 계약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SOC 컨소시엄은 쌍용건설·현대건설을 필두로 국내 7개 건설사가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는 로비스트로 이름난 최규선씨가 대주주인 유아이앤씨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하는 논조가 국내 언론과 외신 보도에 다소 차이가 있다. 외신은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 앞부분에 이번 계약이 완전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영국 통신사인 로이터의 경우에는 첫 줄(리드)에 “이 계약이 불법이라고 보는 중앙정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를 넣었다.

현재 이라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석유개발권리 분쟁을 조정할 ‘신석유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2007년 초에 발의됐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통과되지 않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쿠르드 지역에 매장된 석유의 개발권을 주장하지만, 바그다드에 자리 잡은 중앙정부는 석유 이권을 지방에 넘겨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쿠르드와 바그다드 간 정치 문제와 연결돼 이라크 내부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뜨거운 주제다.

올해 2월14일 거의 똑같은 내용의 양해각서(MOU)가 발표됐을 때 이라크 중앙정부가 발끈하며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바람에 한국-이라크 간 외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적을 내기 위해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 계약을 주도한 한국석유공사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석유공사 측은 “2월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그 사이에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 간에 사이가 좋아졌다. 이라크 총리와 쿠르드 총리가 곧 만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중앙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 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지난 6월24일 이라크 중앙정부 총리 알 말리키와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 네치반 바르자니 가 바그다드에서 만나 회담을 했다.

“석유법 통과, 여전히 시간 걸릴 듯”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 지방정부가 석유 문제를 놓고 회담을 한 것은 지난 4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협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고 표현했다.

이 회담은 이라크 국내뿐만 아니라 아랍 전체에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이 어렵사리 따낸 유전 개발 계약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회담 결과에 대한 평가는 아랍 언론 사이에서도 다소 엇갈린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낙관론을 펼친 곳은 범아랍 언론사 ‘다르 알 하야트’였다. 이 신문은 6월21일자 기사에서 익명의 쿠르드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번 만남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회담이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대담한 제안’을 내놓을 것이다. 자세한 제안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곧 양측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회담을 한창 진행하던 지난 6월24일 외국 기업과 자치정부 간의 유전 개발 계약 발표를 홈페이지를 통해 했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지난 2월처럼 거센 반발은 하지 않았다. 이런 이라크 정부의 무반응이 낙관론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부정적 견해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라크 현지 아랍어 신문사인 〈이라크의 미래〉 역시 협상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회담이 끝났지만 구체적인 성명서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라크 석유장관 후세인 샤라스타니는 6월26일 현재 여전히 ‘쿠르드 자치정부와 외국 기업이 맺은 유전 개발 계약은 불법이며 무효’라고 밝히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와 계약을 맺은 회사는 이라크 중앙정부의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방침도 여전히 유효하다.
 

ⓒEPA이라크 말리키 총리(오른쪽)와 쿠르드 자치정부 바르자니 총리(왼쪽)가 6월24일 바그다드에서 만났다.

터키 신문 ‘투데이즈 자만’은 외국 기업의 무분별한 계약 시도 자체를 비판했다. 이 신문은 6월26일자 기사에서 “이라크 중앙정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쿠르드 자치정부가 한국 및 캐나다 기업과 유전 계약을 맺었다. 이런 행위는 이라크 사회의 통합을 위협하고 갈등을 깊게 만들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터키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국경을 접한 나라로 쿠르드와 이해관계가 겹치는 대목이 많다.

다소 중립적인 견해도 있었다. 쿠르드 지역 영자 신문사인 ‘쿠르디쉬 글로브’는 이라크 의회의 쿠르드족 대표인 블로 박사의 말을 인용해 “양측이 무척 진지하기 때문에 결국 좋은 결론을 유도해낼 것으로 낙관한다. 하지만 완전히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회담 분위기에 희망도 엿보였지만 당장 새로운 결과가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튼 이라크-쿠르드 간 ‘정상회담’을 틈타 한국 외에도 외국 기업이 쿠르드 유전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쿠르드와 계약을 맺은 캐나다 회사 탈리스만은 전체 수입 중   20%를 자치정부가 갖는 데 합의했다.

한편 이라크 중앙정부도 최근 유전 개발 계약을 과감하게 진행하고 있다. 빠르면 6월30일께 이라크 정부는 엑손모빌·로열더치셀·토탈·BP 등 내로라하는 석유 메이저 기업과 유전 개발 계약을 맺을 전망이다. 석유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외국 기업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이유는 ‘2년 단기 계약’이라는 편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이들 석유 메이저는 주로 이라크 남부 지역 유전을 차지하게 된다. 계약이 공개 입찰이 아니라 수의 계약으로 이뤄졌고, 혜택을 본 기업이 대부분 전쟁에 참여한 미국·영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라크 침공의 목적이 석유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의심을 강화시켰다.

이라크 중앙정부와 계약을 맺은 회사들은 ‘명시적이고 분명한’ 이익을 눈앞에 둔 반면, 쿠르드 자치정부와 계약을 맺은 한국 기업은 여전히 불확실한 ‘어음’을 들고 있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정부가 비판받은 점은 협상 결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이번 계약도 ‘만약의 위험’까지 솔직히 밝힐 필요가 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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