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피고인석에 선 그는 20분가량 미동도 없이 판사의 선고를 들었다. 정치 관여, 증거인멸 교사 따위 모든 혐의가 인정되었다. 마지막으로 형이 나왔다.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하고 오늘 법정 구속을 할 겁니다. 피고인,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530단장 이태하씨(62)는 처음으로 움직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다음 “저희의 진실과 사실이 잘 소명되지 못한 거 같다. 앞으로 더 잘 소명하도록 하겠다”라고 짧게 말한 다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판사가 구속 사실을 누구에게 알려줘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같은 자세를 한 채 계속 말이 없었다. 검찰이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주장(구형)한 바 있지만, 법정 구속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검은 정장에 연보랏빛 넥타이를 맨 채 5월15일 서울 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하현국)에 출석한 그는 결국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지 못했다. 법정 오른쪽 문으로 나가 수갑을 찬 채 구치소로 향했다.

군 사이버사령부의 2012년 대선·정치 댓글 사건이 처음으로 엄벌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말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과 일부 군무원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섰지만,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실(〈시사IN〉 제382호 ‘“뽑는 이유는 예뻐서” 군 댓글은 사랑이었네’ 기사 참조)과 대비된다.
 

ⓒ시사IN 조남진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530단장이 5월15일 오전 서울 동부지법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군 사이버사령부 530단을 이끈 이 전 단장이 소속 대원 120여 명에게 정치·선거 댓글 1만2844회를 올리도록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군이 정치에 깊이 관여한 과거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헌법 제5조에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명문화되었다. 군은 그 어느 집단보다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국가기관이다. 피고인은 역사적 경험과 국민 전체의 의사가 강력하게 반영된 헌법 및 법률을 위반했다. 엄정한 책임 추궁이 요구된다”라고 꾸짖었다. 군사정부 이후 처음 드러난 군의 정치 개입인 ‘국기 문란 사건’을 엄단하겠다는 재판부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렇게 덧붙였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합리적 토론을 통한 여론 형성은 헌법이 채택한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국가기관이 특정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여론 형성 과정에 불법 개입한 행위는 어떤 명분을 들더라도 허용될 수 없다.”

판결문에는 이태하 전 단장이 했다는 지시가 좀 더 자세히 적혀 있다. 그동안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으로, 3급 군무원인 이 전 단장이 공무 수행의 일환으로 530단 대원들에게 정치 선거 댓글을 달라고 지시하면서 상세하게 알려준 대응 논리다.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 56차 라디오 연설 관련 대응방향: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비난을 일삼는 무뇌아들은 이 땅을 떠나라. …인터넷 여론 왜곡하는 알바시키들은 사라져야 한다.

이 대통령, 아직도 2년 남았다고 생각한다 관련 대응논리:대통령을 무조건 비난하는 빨갱이적 사고는 시급히 버려야 할 망국적 발상이다. 맹목적인 국가지도자 비난은 김정일 좀비들이나 하는 역적 행위이다….

검찰, 종북 세력과 전쟁 선포 관련:총·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선거 개입이 예상된다. 공안당국의 종북 좌파·빨갱이 색출은 당연하고 적극 찬성한다. 실패한 공산주의 체제·이념 고수하다 인민들 다 굶겨 죽이려는 개정일 집단을 찬양·옹호하는 자들은 다 북한으로 보내라.

이처럼 자극적 문구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이 전 단장은 3월18일 법정에서 “좀 더 강하고 임팩트 있는 내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게 심리전이다”라고 해명했지만, 재판부는 심리전이라는 그의 주장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사의 ‘임팩트 있는’ 지시에 따라 530단원들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거나 퍼다 날랐다. 이 또한 국민 세금을 들여 이뤄지는 공무 수행이었다.

“나는 박원순이 빨갱이인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가게에 옷 갖다 주고 했었다니까요. 근데 뉴스를 보니까 박원순이 노무현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하더라고요. 노무현한테 절했으니까 빨갱이잖아요. 그때부터 박원순 뒤를 쫓았어요.”

“원숭이~!!”

“문재인이 부산에 (출마)?? 개박살 나겠군요 ㅋㅋㅋㅋ”

“MB가 지구 북극권 그린란드를 방문해 자원외교 성과가 빛을 발휘하고 있네요.”


 

이 전 단장은 매일 부대원들이 수행한 사이버 활동을 취합해 대응작전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침 6시에 열리는 530단 상황회의에서 그는 연제욱·옥도경 당시 사이버사령관에게 여론 변화를 수치화해서 보고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당시 대통령 기사의 비난 댓글에 ‘종북 세력의 대통령 흔들기를 통한 국론분열 행위를 분쇄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응해 비난 여론이 6% 감소하고 옹호 여론이 6% 증가했다”라는 식이었다.

사이버사령관이 계속해서 530단의 사이버 ‘작전’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은 판결문의 다른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대선이 있던 해인 2012년 5월25일 근무일지를 보면, 당시 연제욱 사이버사령관은 ‘국내 진보 사이트는 친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진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 재검토 필요’라는 내용의 근무 지침을 하달했다. 지시에 따라 이태하 전 단장은 ‘진보→종북 성향, 보수→우익 성향’으로 변경할 것을 530단 대원들에게 다시 내려보냈다. 1심 재판부가 사이버사령부 최고 수뇌부인 연제욱·옥도경 전 사령관의 공동 범행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수뇌부를 정점으로 하는 지시 보고 체계를 인정한 셈이다.

기소 당시 신분 차이가 가른 처벌 수위

하지만 더 상위 책임자인 연제욱·옥도경 전 사령관은 이미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군 수사팀의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판결(위 표 참조)과도 비교된다. 이 전 단장은 3월18일 피고인 신문에서 “(상부의) 숨어서 일하는 애국자라는 칭찬에 굉장히 많이 고무되었다”라고 밝혔지만, 이들의 운명을 가른 데에는 기소 당시 신분 차이가 큰 역할을 했다. 현역 군인 신분인 연제욱·옥도경 전 사령관은 군사법원에서, 퇴직한 이 전 단장은 민간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전 단장의 법정 구속으로 2012년 대선 당시 군의 조직적 정치 개입이 심각한 범죄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이에 대해 군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연제욱·옥도경 전 사령관은 현재 민간인 신분으로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두 사람에게 1심과 다른 선고가 내려질지 주목된다.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은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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