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임지영․고재열 기자

신임 영진위원장은 박근혜 싱크탱크 출신…
연극제 맞춰 문 닫는 극장… 세월호 집회 참여해서?

5월12일,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프랑스 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칸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동행할 예정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알리고 초청할 게스트와 작품을 섭외하기 위해서였다. 차질이 생긴 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삭감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영진위는 4월30일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지난해 14억6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8억원으로 삭감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칸 출장길에 동행하지 못했다. 지난 2월 부산시의 지도점검 때문에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이후 두 번째다.

절반 수준의 지원금 삭감은 유례없는 일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제외한 전주국제영화제 등 다섯 개의 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은 지난해보다 늘었다. 행정소송 등으로 영진위와 갈등을 겪었던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지원 대상에서 아예 탈락했다. 영진위는 국제영화제의 자생력 강화를 이유로 내세웠다. 심사위원들은 “지원 규모에 대해 심사위원 간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글로벌 영화제로 위상을 점유하고 있어서 자생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에 따라 부분 감액했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영진위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지원금을 절반 수준으로 삭감했다. 위는 지난해 BIFF 폐막식.
20주년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에 젖어야 할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갑작스러운 지원금 삭감에 난감해졌다. 더욱이 중국·일본 등의 아시아권 영화제로부터 매년 견제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제 관계자는 “단지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게 너무 추상적이다. 예년에는 간담회를 하거나 예산지원금 비율을 미리 전달해줘서 감이라도 잡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도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영화제 측에 따르면 지난해 지원금 4000만원을 삭감할 당시에도 사전에 지원 비율에 대한 공지가 있었다. 하지만 6억6000만원을 줄인 이번에는 아무런 예고가 없었다. 영화인 단체들은 즉각 성명서를 내고 반발했다. 5월12일 영화제 측은 영진위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특히 최종 결정 과정에서 심사위원 모두가 모인 자리가 아니라 야간에, 그것도 개별 전화를 통해 서면 의결한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2013년과 2014년 공개로 진행되던 회의가 이번 심사에서만 유독 비공개로 진행된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영진위는 ‘이미 위상을 확보한 영화제보다 도약하려는 영화제 육성에 집중했다’며 별반 다르지 않은 해명을 내놓았다. 설명에 따르면 4월27일, 국제영화제의 육성과 관련된 지원금을 논의하는 심사가 열렸다. 총 29억원 규모였다. 심사위원은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외부 인사 8명으로 구성된 9인 위원회가 맡았다. 회의 결과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금액을 일부 상향하자는 조건부 의결이 이루어졌다. 원안은 8억원보다도 낮은 금액이었다는 의미다. 재심사는 4월29일 오전에 이루어졌고 그날 밤 재심사 결과에 대한 최종심의가 서면으로 의결되었다. 전주영화제가 그다음 날이어서 긴급히 이루어져야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절차상으로는 위원들이 비공개를 합의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영진위의 지원금 때문에 황당한 곳은 부산국제영화제뿐만이 아니다. ‘2015년 영화발전기금 사업계획’에 따르면 8억9400만원 규모의 ‘독립영화 전용관 운영지원 대상’에서 기존 인디스페이스와 아리랑시네센터가 제외되었다. ‘지역 독립영화 전용관 신설’ 때문이었다. 영진위가 운영하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플러스와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네크 KOFA 2관, 신생 지역 독립영화 전용관 한 곳, 이렇게 세 군데만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현희 인디스페이스 사무국장은 “독립영화 전용관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잘되고 있는 2개관의 지원을 끊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관객 동원에서도 2014년 기준 두 영화관의 누적 관객 수는 전체 독립영화 전용관 이용자의 약 60%를 차지했다. 확인 결과 영진위가 지원하기로 한 지역 영화관은 아직 선정되지도 않았다. 영진위 측은 부산이라는 지역만 특정된 상태로 아직 사업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인디스페이스는 유독 부침이 심했다. 인디스페이스는 2007년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배급지원센터가 영진위와 지정위탁 계약을 맺으며 만들어졌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갑작스레 위탁제에서 공모제로 바뀌면서 휴관했다가 민간 기구로 독립해 광화문에 자리를 잡았다. 2012년 재개관할 당시에는 영진위의 지원이 없었다. 2013년 서울시가 지원을 한 이후 영진위가 연간 5000만원을 대관료 항목으로 지원했다.
 

ⓒ시사IN 임지영인디스페이스(위)와 아리랑시네센터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영진위가 지원하기로 한 지역 독립영화 전용관은 아직 선정되지도 않았다.
제3회 유럽단편영화제 개막을 앞둔 서울 성북구의 아리랑시네센터 역시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한 기색이다. 성북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영화관은 3개관 중 1개를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사용 중이다. 독립영화 상영뿐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영화관 등 문화 다양성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획전을 치러왔다. 독립영화 전용관은 지난 5년간 최초 3년 동안 1억5000만원, 2년간 1억원, 이후 1년은 7590만원을 지원받았다. 인건비 이외 시설유지비 등 전용관 유지에 연간 5억원가량 쓰인다. 올해는 지원 여부 결정이 두 번 연기되었다. 박진우 업무총괄담당자는 “늦춰지는 줄만 알았지 안 될 줄은 몰랐다. 특히 내세운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영진위가 직접 운영하는 인디플러스의 경우 70석짜리 1개 영화관에 7억여 원의 예산이 과도하게 집중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신임 영진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싱크탱크 출신

이처럼 석연치 않은 영진위의 잇단 지원금 삭감의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추측이다. 대표적으로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시와 갈등을 겪어왔다.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작품’이라며 영화의 상영 취소를 요청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영화제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부산시는 영화제에 감사 격인 ‘지도점검’을 실시했고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권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 이후 올해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사퇴 압력을 받는 등 영화제의 자율성을 침해하려는 시도를 여러 번 경험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이번 예산 감액 결정이 부산국제영화제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 한 것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시사IN〉 제386호 ‘BIFF에 드리운 권력의 그림자’ 기사 참조).

인디스페이스도 지난해 10월 개봉 이후 〈다이빙벨〉을 장기 상영했다. 갈등은 또 있었다. 지난 1월 ‘2015 으랏차차 독립영화’ 기획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영화 〈자가당착〉을 비롯해 등급 미분류 영화 3편에 대해 영진위에 등급분류 면제추천을 신청해 승인받았다. 영화제나 기획전에서는 등급 미분류 영화도 상영할 수 있도록 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다. 하지만 얼마 뒤 영진위는 전체 상영작 11편을 모두 신청해야 하는데 3편만 신청했다며 승인을 취소했다. 이후 영진위가 등급분류 면제추천 제도 자체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영화계의 반발을 샀다.

 

ⓒ연합뉴스김세훈 영진위원장.
아리랑시네센터는 지금까지도 〈다이빙벨〉을 상영하고 있다. 영화계 관계자는 “〈다이빙벨〉이 아니더라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언제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진위 측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심사와 관련해 〈다이빙벨〉이라는 이름이 거론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영화에 관한 지원 역할을 위임받은 범국가 부문의 전문기구’다.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지만 정책적 독립성을 보장받는 자율기관이다. 하지만 일부 위원장들의 정치적 행보로 자주 구설에 올랐다. 강한섭 전 위원장은 색깔론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시작부터 정치적 인선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던 조희문 전 위원장은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 개입을 이유로 해임됐다. 올해 1월 취임한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구실을 해온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홍익대 동문이기도 하다. 취임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번 지원금 논란을 비롯해 ‘독립영화지원사업 통폐합’ 논란 등 영화계 내부에서 잦은 충돌을 보이고 있다. 한 영화인은 “영진위는 과거 영화계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공청회·간담회 등을 통해 파트너십을 가지는 단체였다. 차츰 바뀌면서 지금은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들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계 인사는 “영진위의 문화 인식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다. 더 이상 한국 영화 진흥이라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 영진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진위를 둘러싼 일련의 잡음이 “영화계에 대한 길들이기”라고 못 박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삭감된 예산으로 20주년 행사를 치른다. 영화제의 지난해 총예산은 약 120억원. 절반인 60억원이 부산시 지원이다. 그나마도 부산시와의 갈등 이후 매달 분할 지원받는 방식으로 수정되었다. 나머지가 영진위 지원금과 스폰서 협찬, 티켓 판매 수익금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정윤 홍보실장은 “삭감된 6억6000만원이 전체 예산에 비해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120억원 예산으로도 빠듯하게 진행해온 터라 사업을 줄이든지 해야 한다. 안 된다 싶으면 스폰서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나설까 하는 걱정이 든다”라고 말했다. 인디스페이스는 6월,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으로 이사해 운영을 이어나간다. 아리랑시네센터는 성북구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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