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주진우 기자

‘표절’ 스님 오신 날?
목탁 대신 손에 든 화투짝
“승복 벗으면 전문 도박꾼이 된다”
주지 선거철은 스님들의 쇼핑 시즌?


4월29일 오후 1시. 서울 동국대 만해광장에서 교수들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동국대 총장 선임에 대한 조계종의 외압을 규탄하는 자리였다. 서울대 등 서울·경기 지역 12개 대학 교수협의회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7개 시민단체가 모였다. 그런데 기자회견 장소에 승려 10여 명이 몰려왔다. 그리고 염불을 외며 법회를 열었다. 교수들과 지켜보던 학생들이 항의했다. 그러자 승려들은 법회를 막는 것이냐며 목청을 높였다.

결국 교수들은 차도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만해광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조명탑 아래 길바닥에서 교수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계종은 표절 총장 선임을 철회하고 합리적인 해결을 촉구한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김서중 공동의장은 “교수들이 단식을 하고, 학생이 고공 농성에 나서게 된 것은 조계종단 수뇌부가 스님 총장을 만들려는 욕심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주성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위법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지난 2월11일 보광 스님의 후보 자격 문제 등 총장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기로 한 동국대 이사회가 열렸으나 여러 이사가 불참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교수들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던 만해광장에서는 4월20일부터 동국대 교수들이 릴레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교수들이 기자회견을 연 차도 위 15m 높이의 조명탑에서는 최장훈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최 회장이 표절 총장 반대를 주장하며 조명탑에 오른 것은 4월21일이었다.

‘동대 총장’은 자승 원장의 선거대책본부장 출신

4월30일. 동국대 재단 이사장 일면 스님이 동국대 불상에서 진행된 봉축 점등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월 이사장에 오른 후, 첫 공식 행사였다. ‘깨달음의 꽃이여 피어나라’라는 법어를 통해 일면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의 자비로 가득한 동국의 내일을 그려봅니다.” 법어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총장 선출을 재실시하라고 침묵시위를 벌였고, 청소 용역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동국대가 극심한 내홍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총장 선임 과정에서 총무원 지도부가 승려 총장을 만들겠다며 유력한 후보들을 사퇴시키면서부터다. 총무원은 불교대학 교수인 보광 스님을 단독 총장으로 추대했다. 보광 스님은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당시 자승 원장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인물로, 표절 논란까지 겪고 있었다. 표절이 밝혀지자 보광 스님은 해당 논문을 철회했다. 그러나 동국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그리고 동문들까지 나서 총장 취임을 반대했다. 조계종 총무원이 동국대를 직할 부대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저변에 깔려 있다. 지난 3월에는 학생들이 이사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동대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당시 신문에는 ‘80% 이상의 학생들이 조계종 종단이 총장 선거에 외압을 가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설문조사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종단은 스님 총장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5월2일 동국대 이사회는 신임 총장으로 보광 스님을 임명했다.

 

ⓒ시사IN 이명익4월29일 ‘표절 총장 반대’를 주장하며 최장훈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조명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 조계종 호계원장(사회의 대법원장 격) 일면 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에 오를 때도 갈등이 컸다. 이사장 직무대행이었던 영담 스님이 일면 스님의 이사직 지명이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사장실에 낮에는 일면 스님이 출근하고, 밤에는 영담 스님이 출근하는 상황이 한동안 벌어지기도 했다. 이사장실은 폐쇄되기도 했다. 결국 법정공방 끝에 일면 스님이 이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총장이 선출된 후에도 동국대 갈등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5월6일 동국대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표절 총장을 단호히 거부한다”라면서 사퇴를 촉구했다. 최장훈 대학원 학생회장은 조명탑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동국대 교수협의회도 대학본관 앞에서 총장 퇴진을 위한 릴레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교수들은 표절 총장 반대 천막 강의를 시작했다. 한만수 교수(교수협의회 회장)는 “학자에게 표절은 가장 부끄러운 과오다. 다양한 방식으로 총장 불인정 운동을 진행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총무원과 동국대 이사회 측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동국대 재단 측 진우 스님은 “보광 스님에게 돈 문제라든지 도덕적 흠결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논문 150편 가운데 두 편을 가지고 문제 삼는데 보광 스님은 굉장히 열심히 사셨고 다른 스님들보다 훌륭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말 많고 탈 많은 ‘동국대의 승려 이사들’

진우 스님의 말대로 보광 스님의 표절 흠결은 다른 이사들에 비하면 사소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총장 선임 과정에서 동국대 일부 이사들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사장 일면 스님은 탱화 절도 사건의 당사자로 의심을 받고 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일면 스님이 봉선사 말사인 흥국사 주지로 재직할 때 1700년대 제작된 탱화가 사라졌다. 일면 스님은 사라진 탱화를 모사해 법당에 걸어두었다. 2004년께 봉선사 관내 비구니 스님의 방에서 사라진 흥국사 탱화가 발견되었다. 흥국사 탱화라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 비구니 스님은 그 탱화를 일면 스님에게 받았다고 혜문 스님에게 털어놓았다. 혜문 스님이 이를 문제 삼자 일면 스님은 까마득하게 어린 혜문 스님에게 사과했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탱화 절도 사건을 밝혀낸 혜문 스님은 일본으로 쫓겨가게 됐다고 한다. 총무원 한 고위직 스님은 “탱화는 일면 스님이 도난당한 것으로 결론이 난 문제다. 더 이상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탱화 도난 사건을 승가의 근간을 흔든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중들은 자비를 생명으로 모인 문중이다. 절 땅을 팔아먹고, 도박을 하고, 여자와 눈이 맞는 일은 인간사 어느 집단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불가에서 절대 용서하지 못할 죄가 있다. 그것은 훼불(毁佛), 매불(賣佛) 행위다. 생산시설 파손 행위는 영업 자체를 막는 일이다. 주지가 불상·탱화를 팔면 남아날 절이 어디 있겠는가.”
 

ⓒ시사IN 이명익4월29일 동국대 만해광장에서 동국대 총장 선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려던 민교협 소속 등 대학 교수들은 갑자기 몰려온 승려 10여 명에게 밀려났다.

다른 이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해 보인다. 동국대 이사이자 강원도 대형 사찰 법흥사 주지인 삼보 스님은 강원도 삼척에서 모텔을 운영한다. 4층짜리 모텔 건물에서 지하 1층은 룸살롱으로 세를 주고, 1층은 다방과 소주방 그리고 음식점에 세를 주고 있다. 2·3·4층은 자신 이름으로 영업신고를 한 후 모텔을 운영한다. 이는 “승려는 종단의 공익과 중생 구제의 목적 이외에는 본인이나 세속의 가족을 위해 개인 명의의 재산을 취득해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된 ‘승려법’ 제34조의 2 제1항 위반이다. 삼보 스님은 조계종의 판사 격인 재심호계위원을 맡고 있다.

동국대 이사이자 총무원장 사서실장(비서실장에 해당) 심경 스님은 간통죄로 피소된 전력이 있다. 스님이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는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승려법에서 사실혼은 징계에 의하지 않고 즉시 제적 처리를 당하는 중죄다.

또, 동국대 이사인 명신 스님은 1999년 6월 강원도 양양 보리수마을 분양 사기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일반인 이사로 선임된 이연택 이사는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인허가 청탁 대가로 토지를 헐값에 매입한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 등으로 사법처리된 전력이 있다. 이 이사는 대법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억8000만원이 확정됐다.

동국대 이사회의 한 스님은 “삼보 스님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그대로 소유한 것이어서 이사회에서 별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심경 스님 문제는 30년 전에 고소가 취하된 사건이라 크게 문제 삼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근 조계종 종책 모임인 삼화도량 소속 승려들은 일면 스님과 삼보·심경 스님 등 의혹이 있는 동국대 이사 3명을 총무원 호법부에 고발했다. “사랑 문제까지 고발한 것은 자비가 부족한 것 아니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발에 참여한 도정 스님은 “출가자가 일반인의 가정을 파탄 낸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다. 고발당한 스님들의 내용은 종단 내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조계종의 최상위 권력층이란 이유로 어떠한 조사나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다. 절도 이사장, 표절 총장, 간통 이사, 모텔 이사가 나오면서 동국대는 풍비박산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지난 3월 동국대 학생들은 총장 취임을 반대하며 이사장실(이사장 일면·위)에서 농성을 벌였다.

동국대 현 사태에 대해 참여불교재가연대(상임대표 허태곤)는 긴급 제안문을 냈다. “현재 조계종은 오욕을 뒤집어쓰고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지탄받고 있으면서도 내부에 건강한 비판 여론이 살아나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죽은 단체이고, 그 중심에 총무원장 스님께서 서 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종단 자정을 위한 불자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서울대 우희종 교수는 “권력을 쥔 승려들의 일탈이 조계종 자체의 정체성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모든 권한이 집중된 자승 총무원장이 자정과 혁신을 하겠다고 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조계종 내부에는 자정할 능력이 부족하고 밖에서 소리를 내야 하는 언론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종교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약육강식, 황금만능, 정글의 법칙 등 세상의 나쁜 모습을 종교가 정화하기는커녕 조계종과 총무원이 그대로 쫓아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동국대만 생각하면 서글프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고 말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바세계에 전파하겠다는 것이 동국대의 건학 이념이다. 그런데 절도 행위를 한 스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고, 스님들이 파계를 넘어 패륜적 행위를 보이고 있다. 스님들은 속세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고도 종교 권력의 힘으로 검찰과 법원을 무력화시킨다. 조계종은 대중이 아니라 권력이 있는 스님들에게만 자비를 베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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