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적인 이슈에서 과학자와 일반인의 인식 격차는 어느 정도나 될까? 미국 과학진흥협회와 퓨 리서치 센터가 미국 과학자 3748명과 미국 일반인 2002명을 대상으로 흥미진진한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이들은 13개 이슈를 과학자와 대중에게 동시에 던졌는데, 의견 차가 크게는 51%포인트까지 났다. ‘유전자변형작물(GMO)이 안전할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과학자 그룹에서 88%, 일반인 그룹에서는 37%였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초래한 일인가? 87%(과학자) 대 50%(일반인). 인류는 진화의 산물인가? 98%(과학자) 대 65%(일반인).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가? 65%(과학자) 대 45%(일반인). 어린이에게 백신을 의무 접종해야 하나? 86%(과학자) 대 68%(일반인).

 

ⓒ시사IN 양한모

일반인의 신념과 과학계의 다수설은 꽤 자주 충돌한다. 한국의 진보층으로 좁혀봐도, 상식처럼 통용되는 신념이 과학의 세계에서는 소수파인 사례가 종종 있다. GMO가 위험하다는 신념은 과학자 중 12%만 지지한다. 탈원전주의는 그보다는 논란의 여지가 크지만, 과학자 그룹에서 적어도 다수파는 아니다.

나는 진보 특유의 반권위주의가 비주류·얼터너티브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로 넘어갈 때가 있다고 느낀다. 이게 심하면 반지성주의가 된다. 이 세계관에서 ‘주류’ ‘강단’ ‘과학’은 거의 욕설로 통용된다. 예방접종 강요는 글로벌 제약회사의 음모, 암 환자를 수술하자고 하면 주류 의학계의 음모, 원전을 지지하는 주장은 모조리 원전 마피아 로비의 결과…. 편견의 힘과 돈의 힘이 과학 연구를 왜곡시킨 실례도 제법 있어서(인종 간 지능 격차 연구와 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하는 연구가 우선 떠오른다) 이런 성향에 힘을 실어준다.

의심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그것은 과학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학이 내놓는 (언제나 잠정적인) 결론이 나의 세계관과 맞지 않는다고 곧바로 어떤 음모의 그림자를 떠올리지는 말자. 이건 의심하는 자세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이런 태도를 나는 ‘얼터너티브 중독’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진보주의자일수록 경계해야 할 태도가 이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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