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해 검찰은 ‘조응천 기획, 박관천 실행의 허위 자작극’이라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한 결과’라 자평했고, 청와대는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의혹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상식에 어긋나는 수사 결론과 법 적용이 불신을 사고 있는 것이다. 먼저 검찰은 정윤회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이른바 ‘십상시’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내용이 모두 허위라고 단정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를 받은 박관천 전 행정관이 풍문과 정보 등을 빌미로 과장해서 짜깁기한 허위”라는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줄곧 주장해온 ‘찌라시’라는 표현과 맥이 닿아 있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허위 문서를 작성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 등 관련자에게 허위공문서작성죄를 물어야 마땅하다. 공무원이 허위 문서를 작성해 행사했다면 중죄에 해당한다. 형법 제227조(허위공문서작성죄)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문서 또는 도화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변개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지만씨(왼쪽)는 사법처리에서 제외되고, 조응천(가운데)·박관천(오른쪽)씨의 ‘자작극’으로 결론 났다.
그런데 검찰이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한 아무개 경위 등에게 공통으로 적용한 죄목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다. 검찰 수사 결과대로 문건이 정말 허위라면 박관천 경정은 매우 뛰어난 예지력을 지닌 소설가라 할 만하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물러날 것을 예견했고, 김덕중 국세청장의 퇴진도 수개월 전부터 미리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청와대 문건 유출의 종착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라고 밝히고도 그에게 면죄부를 준 것 역시 논란거리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이른바 박 회장의 ‘비선 라인’이 드러났지만 정작 박 회장은 빠지고 주변만 처벌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박지만 회장의 경우 소극적으로 문건을 받아 봤을 뿐 지시할 위치에 있지 않아서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최소한 2013년 6월부터 2014년 1월까지 7개월여 동안 17건이나 청와대 문건을 제공받았다는 사실만 감안해도 검찰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 달에 평균 2~3건씩, 사실상 정례 보고를 받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회장은 2014년 1월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정윤회씨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박관천 경정에게 이를 구체적으로 파악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에 박 경정은 ‘회장님 미행 관련 건’이라는 4쪽 분량의 문건을 박 회장에게 제출했다는 것이 검찰 발표다.

박지만 회장은 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행설이 사실인지 따져 묻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박 회장이 소극적으로 문건을 받아 보기만 했다며 애써 외면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박 경정이 유출한 문건은 일종의 ‘장물’에 해당하고 대통령 친동생이라는 위치로 보면 이를 사전에 인지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나아가 박 회장이 문건 전달을 요구했다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문건 유출을 묵인 또는 방조한 데다 직접 달라고 요구한 사실까지 확인됐다면 박 회장 또한 ‘공범’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1월5일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지만 회장을 둘러싼 검찰 수사 발표는 스스로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두 사람이 허위 문건을 만들어 박지만 회장에게 전달했다면서도 그 동기를 주관적으로 추측했을 뿐이다. “조응천과 박관천이 박지만을 이용해 자신들의 역할 또는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추단된다”라는 식이다. 이 같은 추단이 그럴듯하려면 박지만 회장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거나 청와대에서 사실상 막강 실세 구실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박 회장은 문고리 3인방의 견제 속에 대통령 취임식 때부터 지금까지 청와대에 한 차례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지만 회장의 이런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박 회장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알아서 문건을 만들어 빼돌렸다는 검찰 발표는 논리적 모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계류 중인 사건들 역시 진실 규명 어려울 듯

문건 유출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검찰 발표도 논란거리다. 검찰은 박지만 회장에게 전달된 문건을 대통령기록물로 본 이유에 대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생산한 것으로 정식 보고·결재를 마쳤거나 보고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경정은 청와대 문건 17건을 박 회장에게 넘겨주기에 앞서 조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았고, 조 전 비서관은 그중 12건에 대해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과 김기춘 대통령실장에게도 동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두 사람에게 사전 동의를 구할 당시 “박 회장께 위 ○○○ 관련 문제점을 고지해…” 또는 “박 회장 측에 예상되는 문제점을 알려드려…”와 같이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청와대 보고 시스템은 조 전 비서관이 홍 전 수석에게 먼저 보고한 뒤 다시 조 전 비서관이 김 실장에게 보고하는 절차였는데, 박 회장에게 보고된 문건 가운데 일부는 홍 전 수석에게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추면 검찰이 불법행위로 간주한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의 행위는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를 맡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상부 보고를 거쳐 실행한 적법한 공무수행이라고 볼 여지도 있는 셈이다.

검찰 수사는 결국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청와대 뒤치다꺼리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정윤회 문건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문건이 어떤 동기와 과정을 거쳐서 생산됐는지를 밝히는 게 기본이지만 검찰은 그런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청와대에서 공식 생산된 허위 찌라시’라는 우스운 모양새로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다.

현재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정윤회씨가 비선 실세로서 실제 청와대 비서관들을 통해 국정에 개입해왔는지다. 또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의혹도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취임 초부터 박 대통령 주변과 친인척 동향을 체크해왔던 박관천 경정은 이번 검찰 조사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12월7일 ‘십상시 문건’에 등장하는 청와대 비서진과 정윤회씨,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종 문체부 제2차관 등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문체부 인사 개입 의혹의 경우,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문체부 국·과장 교체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고 확인하는 등 구체적 진술이 나온 바 있어서 관련자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중간수사 결과를 감안할 때 계류 중인 사건들의 진실 규명 또한 난망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검과 국정조사가 또다시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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