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입대했다가 비전투적 요인(질병·사고·자해 등)으로 사망하는 장병의 수는 한 해 80여 명이다. 1948년 창군 이래 군인 1만3000여 명이 이렇게 스러져갔다. 이 중에는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군 헌병대가 초동에 부실·축소 수사를 하거나 사고 원인에 대한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기기 급급한 뿌리 깊은 관행 탓이 크다. 이런 사건들의 경우 군 당국은 자살로 몰아가기 일쑤고, 유족들은 군 당국의 ‘자살’ 처리를 납득하지 못한 채 국가와 군을 불신하고 원망해왔다. 사망 이유가 중요한 것은 ‘순직’ 처리 여부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사체 인수를 거부해 국군병원 냉동실에 보관 중인 사체는 17구, 각 군 보급대대 영현창고에 보관 중인 유골은 125위에 이른다.

군 의문사와 관련해 세간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된 사건은 1998년 2월24일 판문점 241GP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이었다. 이후 군 의문사 문제가 시급한 인권 과제로 공론화되면서 숨죽이던 군 의문사 유족들이 단체를 결성하고 국방부 앞에서 소복시위를 벌이는 등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방부와 각 군에서도 사안에 따라 특별조사단을 만들어 재조사에 들어가는 등 여론에 부응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정부 차원에서는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군 수사요원과 민간 조사관들이 함께 진정이 접수된 군 의문사에 대한 재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와 군이 주도하는 이런 대응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나 다름없었다. 대다수 군 의문사가 부실했던 헌병의 초동수사 결과를 더욱 강고하게 굳히는 결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사IN 자료벽제에 있는 한 군부대 영현창고(위)에는 고 김훈 중위 등 군 의문사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처럼 군대 내 사망 사건에 대해 경직되고 완강하기만 하던 국방부의 태도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부임한 뒤 얼마간 변화 기류가 나타났다. 국방부는 10월22일 보도자료를 내고 ‘중앙전공사망심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각 군 본부에서 맡았던 사망자 순직 여부 재심사를 국방부가 설치한 위원회로 통합해 맡기로 하고, 위원 구성도 군이 3분의 1, 민간위원이 3분의 2를 맡아 심사 결과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법조·의료·인권 분야의 민간 전문가 6명이 위원으로 위촉됐고, 위원장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나눔운동본부 이사장)를 영입했다. 손봉호 위원장 위촉식장에서 한민구 장관은 “병영 문화 혁신에 기여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춘 위원회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조처는 올 들어 각종 군기 사고와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이로 인해 군에 대한 국민의 질타와 불신이 극에 달하자 고육책으로 나온 성격이 짙다. 국방부는 앞으로 군내 사망 사건 처리의 공정성과 투명성, 전문성을 높여 국민의 신뢰를 이끌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번 조처를 찬찬히 뜯어보면 여전히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당장 위원회의 심사 대상을 ‘자해 사망을 인정하는 경우(자살 인정)’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원회는 군 수사당국이 자해로 인한 사망이라고 결론 낸 사건에 대해서만 순직 처리와 국립묘지 안장 따위 전향적인 조처를 결정할 수 있을 뿐, 다른 국가기관의 조사에서 사망 원인이 진상 규명 불능으로 나오고 그래서 유족이 진상 규명을 원하는 경우는 원천적으로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기준이라면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이자 군대 내 사망 사건의 제도적 해결을 위한 기폭제가 되었던 김훈 중위 사건의 경우 심사 대상에 오르지도 못한다. 김훈 중위 사건은 헌병대의 초동수사와 국방부 특조단의 재조사 과정에서 자살로 몰아가기 위한 증거 인멸과 증언 조작 등이 있었다는 정황이 국회 국방위와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 타 국가기관 조사에서 드러나 ‘진상 규명 불능’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대법원도 헌병대의 초동수사 부실이 김훈 중위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판시하고 이런 부실 수사가 유가족의 법익을 침해했다며 국가에서 일정한 배상을 하라고 판시한 바 있다.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 개정한 국방부의 꼼수

이처럼 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근본적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국방부가 위원회의 설치 근거로 삼은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을 개정하면서 김훈 중위와 같은 군 의문사 대상자를 슬그머니 자살자 분류 대상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이런 꼼수는 군내 사망자에 대한 순직 요건을 다룬 전공사상 분류 기준 개정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공사상 분류표(2-14)에서 다른 국가기관 조사에서 진상 규명 불능으로 나온 대상자에 해당하는 ‘그 밖의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 여부를 전공사망심사위원회에서 인정한 경우’를 아예 자해 사망자 항목에 포함시켜둔 것이다.

ⓒ연합뉴스2013년 5월24일 군 의문사 유가족들이 아들의 영정을 들고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촉구했다.

결국 국방부의 훈령 개정과 위원회 설치는 처음부터 자해 사망자의 순직 인정 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일 뿐 (자해를 인정하지 않는) 군 의문사 대상자는 아예 심사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게 만든 것이다.

현재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같은 다른 국가기관에서 ‘자살’이라는 군의 초동수사 결론을 수용하지 않고 ‘진상 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군 사망자는 48명에 이른다. 이번 위원회 안대로라면 이들의 유족 가운데 누군가가 국방부의 자살 결론을 수용하고 심사 신청을 할 경우 위원회가 전향적으로 처리해줄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국방부가 대대적으로 객관성과 신뢰성을 자랑하고 있는 이 위원회는 ‘자살을 받아들이면 순직으로 처리해주고, 자살을 인정하지 않으면 순직으로 처리해주지 않겠다’는 또 다른 협박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예비역 중장)는 “나는 국방부를 정상적인 국가기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 끝까지 투쟁하겠다”라고 단호히 밝혔다.

결국 국방부의 중앙전공사망심사위원회 설치에도 불구하고 48명의 의문사 대상자는 여전히 구제받지 못한 채 재심사 보류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군 의문사 문제가 진정성 있게 해결되려면 국회가 대법원과 국회, 국민권익위원회,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군 수사기관이 아닌 다른 국가기관에서 ‘진상 규명 불능’으로 처리한 사망자에 대해 전향적으로 순직 처리하고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국방위 송영근 의원(새누리당)은 최근 ‘진상 규명 불능 사망자’에 대한 순직 처리 규정을 포함한 군인사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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