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 왕들아 지혜를 가지라. 너희 세상 통치자들아 경고를 들으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고 떨며 환호하라.(시편 2편 10~11절)”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이 구절을 주제로 삼아 2011년 6월15일 밤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수요여성예배에서 1시간 동안 강연했다.

이 강연 내용이 세상에서 큰 논란을 빚는 게 개신교인들로서는 당황스럽다.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한 이야기를 외부인들이 종교적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비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강연 내용도 교회 안에서 흔히 하나님의 뜻이라며 감사와 순종을 강조하는 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도 “일반 역사인식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눈 역사의 종교적 인식”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세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이 이 경고를 들어야 한다고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녹화한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공개해놓았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 속에 갇혀 설득력을 잃어버린 지금 교회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6월1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역사인식과 기독교’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시사IN 신선영 6월1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역사인식과 기독교’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일제 식민 지배도, 6·25전쟁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 후보자의 영상을 보고 경악하는 이들에게 교회가 “우리끼리 한 말이니 신경 끄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공공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다. 교회 강연 내용을 맥락 없이 인용해 비난한다는 피해의식은 이해할 대목도 있지만, 교회의 말을 알아들으려 하지 말라며 교회가 먼저 문을 닫아서야 되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기독교적 언어’로 볼 때에는 문 후보자의 강연 내용에 별 문제가 없는가? 문 후보자는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삶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며 자신의 강연은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단련시키셨구나, 그 고난 속에서 길을 열어주셔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라는 내용이다”라고 해명했다.

교회 장로이면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참여했던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문 후보자의 강연을 다 듣고 나서 이런 강연의 요지에는 “수긍할 점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즉, 한국 역사를 풀어내는 문 후보자의 대체적인 줄거리는 교회 안에서 얘기해온 역사관과 대동소이해 보인다. 한국교회연합에서는 “성경적·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될 수 없다. 일부 표현의 미숙이 있었으며, 개인적인 역사관을 다 동의할 수는 없으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라고 옹호했다.

문제는 ‘대동(大同)’ 속에 숨은 ‘소이(小異)’, ‘미숙한’ 표현 속에 드러나는 ‘치명적인’ 역사관이다. 오히려 기독교적인 언어와 논리가 그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묘하게 동원돼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부드러운 장로님 목소리로 성경을 인용한다고 해서 다 신앙 강연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도 똑같은 출애굽기(엑소더스)를 두고 어떤 목사는 민족의 해방을 설교했고, 일본 교회는 조선 민족이 가혹한 이씨 왕조를 벗어나 내선합일을 이뤘다고 설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역사에 대한 자신의 자의적인 해석을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시켜 마치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하고 남북을 분단시키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왜곡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 신앙으로 포장만 한 것이지 잘못된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부적절한 주장이다. 하나님의 뜻을 마음대로 왜곡하는 불경스러운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KBS 〈뉴스9〉 화면캡처〈/font〉〈/div〉KBS 〈뉴스9〉가 보도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2011년 온누리교회 강연 영상.
ⓒKBS 〈뉴스9〉 화면캡처 KBS 〈뉴스9〉가 보도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2011년 온누리교회 강연 영상.

 


문 후보자가 교회에서 한 강연 중 인터넷에 공개된 것은 모두 3건이다. 수요여성예배의 첫 강연 외에도 1
주일쯤 뒤인 2011년 6월23일 그는 ‘마리아행전 준비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내용을 설파했고, 이듬해인 2012년 2월 ‘크리스천 리더십 스쿨’에서 한 강연도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세 차례 강연에서 모두 문 후보자는 윤치호를 중요하게 거명한다. 문 후보자는 “이 사람(윤치호)은 비록 친일은 나중에 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죽은 사람”(크리스천 리더십 스쿨 강연)이라고 소개하면서 윤치호의 일기를 상당 부분 인용했다. 자신의 역사관을 풀어낼 때에도 사실 성경보다는 윤치호의 논리를 따른다.

잘못된 윤치호 인용으로 친일 논리 답습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윤치호를 잘못 묘사했고, 그의 친일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답습하는 데 머물렀다. 윤치호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을 비판하고 조선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고 판단한 인물이다. 신앙보다 민족의 생존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런 차원에서 나름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이 친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윤치호의 생각을 식민지 시대 기독교 신앙인의 한 모범적인 사례처럼 여기는 것은 오류다. 역사작가 이덕일씨는 “문 후보자의 역사관은 신앙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철 지난 군국주의적 관점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했다. 더욱이 김구 선생도 기독교인이었고, 김규식·주기철·손양원도 신앙의 힘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인물인데, 이들은 생략한 채 유독 윤치호를 중요하게 인용한 것 자체가 문 후보자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 보여준다.

문 후보자의 강연 중 ‘조선 민족이 게으르고 불결하고 지도자는 타락했다’는 얘기도 비숍 여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윤치호의 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 후보자는 윤치호의 일기 중 그가 학교를 세우려 하는데도 조선 청년들은 일하러 오지 않고 중국 노동자들만 온다고 한탄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사실은 마찬가지죠. 지금도 우리 일자리, 젊은이 일자리 없다고 그러지만, 사실 눈높이만 조금 낮추면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 웬만한 일자리는 다 안 가려고 그래. 꼭 대기업 가야 되고. 그런 것만 생각한다 이거예요. 나는 이런 것이 혹시 우리 피에 그런 것이 좀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좀 들게 되더라고요.”(2011년 6월23일 강연)

윤치호를 읽을 때는 그가 왜 친일에 빠지게 됐는지,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그를 따라가기만 하다가 결국 강연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가 이런 민족성을 개조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는 데까지 나가버렸다. 이 한 발짝 차이가 바로 기독교적 신앙고백과 친일적 논리 사이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다.

기독교출판사 새물결플러스의 대표 김요한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구는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현상에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상당수의 일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불순종하거나 대적하는 사단적인 것임을 고려하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강연은 일제를 신의 뜻을 대행하는 심판자로 격상시켰고, 개신교의 역사인식을 수동적인 운명론으로 전락시켰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개신교인 중에도 문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의 논리가 신앙적인 언어로 잘 포장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그런 스토리텔링에 교회가 푹 젖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심지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단순히 총리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며 신앙에 대한 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한국교회언론회)라는 주장까지 있다. 교회의 명운을 문창극 한 사람과 동일시하는 언사다. 천동설에 교회의 명예를 걸었던 중세 교회의 모습이 연상된다. 교회가 먼저 세상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지혜를 가져야 한다.

 

기자명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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