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주 이민’을 감행했지만 여전히 서울 오갈 일이 많은 안 아무개씨(43). 그러나 주말 또는 성수기면 비행기를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저가 항공을 이용한다 해도 유류 할증료 등을 감안하면 왕복 표값이 20만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항공사마다 제주도민 할인제도가 있다지만 할인 폭은 10~15%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 초유의 실험을 준비 중이다. 한국협동조합경영지원센터와 제주사회적기업경영연구원은 지난 5월13일 제주시에서 ‘제주 하늘버스협동조합’ 설립 공청회를 열고, 협동조합으로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 항공사’가 제주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셈이다.

웬만한 자본력과 기술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항공사업에 협동조합이 과연 진출할 수 있을까? 일단 협동조합의 전제 조건이라 할 ‘조합원 공통의 필요와 열망’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제주도민의 이동권은 점점 더 위축돼왔다”라고 김성오 한국협동조합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말했다. 제주 방문객은 연 15%가량 꾸준히 늘고 있다. 2013년 1000만명 수준이던 방문객 수가 2018년에는 20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럴수록 제주도민은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방문객 중심으로 영업하는 기존 항공사는 방문객 비중이 늘수록 제주도민에게 신경을 덜 쓰게 된다.

ⓒ시사IN 이명익5월13일 제주시 벤처마루에서 ‘제주 하늘버스협동조합’ 설립 공청회가 열렸다.
더 큰 문제는 화물이다. 제주에서 항공기를 통해 들고나는 화물은 2013년 기준으로 연간 17만t에 이른다. 국내 항공 화물의 55%가량을 차지하는 물량이다. 특히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농수산물 특성상 제주 농어민이 출하하는 겨울 채소·감귤·어류 등은 상당량이 항공편을 통해 육지로 이송된다. “제주 생산자 대부분이 농수산물을 서울로 출하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물류비용이 높다 보니 육지 생산자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라고 김진수 한라생협 이사장 겸 참맑은영농조합 대표는 말했다. 돈을 냈다고 자유롭게 화물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항공 화물 운송사업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하고 있는데, 이들 항공사는 국내용 화물 전용기를 운영하지 않는다. 2018년이면 화물량이 연간 30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물류 운송 사정은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늘버스협동조합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김성오 이사장은 협동조합 항공사가 출범할 경우 서울-제주 항공요금을 왕복 8만원(유류 할증료 포함)에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도민에게는 항공기가 대중교통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450㎞ 떨어진 제주를 오가는 항공요금이 420㎞ 떨어진 부산을 오가는 고속버스 요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져야 사회적 형평성에 걸맞다.” 조합원은 주말이나 성수기에도 변동 없이 이 가격으로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다. 화물 또한 전용 항공기를 통해 좀 더 싼값으로 이송된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은 보잉 737-800 기종의 여객기 2대와 에어버스 300-600 기종의 화물기 1대를 리스 방식으로 사들여 운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협동조합 또한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목표와 명분이 뚜렷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관련해 협동조합은 여객기에서 약 400억원, 화물기에서 약 270억원의 연간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객기 좌석 점유율을 80%, 화물 점유율을 50%로 가정한 수치다. 협동조합은 이렇게 발생한 매출액 670억원 중 연료비·인건비·정비료 등 각종 비용이 53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계산대로라면 투자비를 뽑아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는 얘기다.

제주항공이 사실상 사기업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협동조합형 항공사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런 전망에 이의를 제기했다. 고부언 제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항공기의 안전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가 관건일 듯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우봉 전 한성항공 대표는 “저가 항공이 처음 출범할 때도 안전성 우려가 제기됐지만 지금은 사라졌다”라며, 프리미엄 항공기나 저가 항공기나 안전 기준에 차이가 없는 만큼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보다 “평균 탑승률 80%를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국내선 운항만으로 수익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제주항공 영업·운송본부장을 지낸 이재인씨(한국항공정비주식회사 대표이사)는 서울-제주 왕복 요금 8만원으로 과연 흑자를 낼 수 있을지 반문했다. 기존 요금의 40% 가까운 할인 요금으로 하늘버스협동조합이 쉽게 흑자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다만 그는 “기본적으로 안전과 서비스, 그리고 유능한 경영진만 확보되면 수익은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는 것이 항공 산업이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의 특성을 잘 살리면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제주항공 전철 밟지 않겠다”

제주도민이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제주항공 출범 시 제주도는 초기 자본금 200억원 중 50억원을 투자하면서 대주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뒤 몇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제주도 지분은 4.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도민 혈세를 들여놓고 정작 이득은 대기업이 챙겼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협동조합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데서 제안된 측면도 있다. 협동조합은 1인이 출자할 수 있는 규모가 전체의 30% 이내로 제한된다. 많이 출자했다고 발언권이 큰 것도 아니다. 모든 의사 결정은 ‘1인 1표제’에 따른다. 더욱이 협동조합은 잉여금(사업이익)이 생기면 우선 적립금을 늘리게 되어 있다. 잉여금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적립금으로 늘어나는 조합의 순자산을 조합원(제주도민) 지분으로 증가시키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적립금을 제외한 50% 이상의 금액은 매년 조합원에게 배당하게 될 것”이라고 김성오 이사장은 말했다.

그런가 하면 협동조합은 제주도민을 직원으로 채용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세전 잉여금의 10%는 지역 사회에 기부할 계획이다. 말 그대로 ‘제주도민에 의한, 제주도민을 위한, 제주도민의 항공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늘버스협동조합은 생산자(항공 화물을 이용하는 사업자)와 소비자(제주도민), 직원이 결합한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 모형으로 추진된다. 협동조합은 2015년 5월 화물기에 이어 9월 여객기를 띄운다는 목표 아래 창립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까다로운 항공 인허가 과정을 통과하는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지만 일차 관문은 100억원으로 설정한 초기 자본금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협동조합은 10만원 이상 출자할 개인 조합원 2만명과 더불어 농협·수협·신협 등 기관 출자자를 끌어들일 계획이다. 김진수 한라생협 이사장은 “사업성을 좀 더 철저히 검토해야겠지만 일단 협동의 힘으로 당면한 문제를 풀어보자는 취지에는 우리 조합원들이 적극 공감했다. 한라생협의 경우 하늘버스협동조합 발기위원으로 참여한다”라고 말했다. 하늘버스협동조합은 6월19일 2차 공청회를 거쳐 7월 중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 예정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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