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난을 책임진 안전행정부에는 백서 제작을 지휘하는 부서나 담당자가 따로 없다. 지자체나 각 기관에서 발간하는 백서는 홍보 팸플릿을 방불케 하거나 기관의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시사IN〉 분석 결과 그나마 백서다운 백서로는 1996년 서울시가 펴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백서〉를 꼽을 만했다. 백서에는 재난 대응 시스템의 혼란이 비교적 사실대로 기록됐다. “사고 1시간 만에 대책본부가 구성되고 소방대원·경찰관·군인 등 6000여 명이 투입되었지만 통합지휘본부를 찾지 못해 구조작업이 지체되는 일이 다반사였다.”(623쪽) 이번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우왕좌왕식 대응을 18년 전에 예고한 셈이다.
이런 백서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방치되어 있다. 복수의 재해·안전관리 담당 공무원은 백서 내용을 숙지하는 게 의무가 아니라고 했다. 백서가 발간되면 각 지자체에 배포되긴 하지만 활용도는 높지 않다. 백서가 자신의 과에 비치돼 있는지 모르는 공무원도 있었다. 한 기초자치단체 재해 담당 공무원은 백서를 활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백서를 꼭 봐야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다른 광역시 재해 담당 공무원은 “지자체가 만든 백서는 자신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만 상세히 기술해, 사고 예방에 참고하기에는 수준이 미흡하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원광대 양기근 교수(소방행정학과)는 “지금까지의 백서는 통렬한 반성과 재발 방지라는 취지에 충실하지 못했다. 백서를 만들어야 하는 재난은 어떤 것이고, 백서를 만들었다면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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