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로 미국 정부와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름의 평판을 받는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 그는 연초만 되면 거의 거르지 않고 워싱턴을 찾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물론 국무부와 국방부 등에서 대북 정책에 관여하는 인사들을 두루 만나 이들의 견해를 청취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워싱턴을 방문했던 그는 대북 문제와 관련한 오바마 행정부 내 분위기와 관련해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미국 정부에선 북한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없어졌다. 원래 미국이 북한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은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1월 집권 2기를 시작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물론 집권 1기 시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처음으로 사용해 널리 유행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접근 방식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다. 이 방안의 핵심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미국이 먼저 대북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오히려 북한을 방치해 핵 개발을 진전시킬 시간과 빌미를 줬다는 이유로 미국 내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패작으로 평가받은 지 오래다. 근래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몇 년째 중단 상태인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한국·일본·중국을 분주히 오가고 있고, 최근엔 북한의 4차 핵 실험설까지 나돌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대북 문제에 대한 이 같은 오바마 행정부의 난맥상을 〈뉴욕 타임스〉가 신랄히 꼬집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직전인 4월24일자에 실린 분석 기사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2년간 김정은의 의중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북 정책에서 갈팡질팡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AP Photo3월3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국가안보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맨 왼쪽).
이 신문은 먼저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뒤 후계자로 나선 김정은에 대해 정보 당국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공한 브리핑이 오판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즉 정보 당국은 국정 경험이 미미한 김정은이 향후 통치 과정에서 고모부이자 당시 핵심 실력자였던 장성택의 견제를 받을 것이라 보고했지만, 김정은이 지난해 말 장성택과 그의 일파를 단숨에 제거한 데서 나타났듯이 그 같은 판단은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 스위스 국제학교에서 외국 문물을 보고 자란 까닭에 김정은은 김정일·김일성과 달리 핵과 미사일 개발이 아닌 경제 개혁에 치중하리라 판단했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의 핵 문제 해결에 치중한 탓에 북핵 문제를 등한히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오바마 1기 때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 특보를 지낸 로버트 아인혼은 〈뉴욕 타임스〉에 “오바마 행정부는 의식적이건 암묵적이건, 이란이 더 중요하며 핵문제 해결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주한 미국 대사관 부대사와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 부차관보를 지낸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자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제재를 가하건, 어떤 보상을 제공하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 명백하다. 미국의 정책은 실패했다”라고 단정했다. 사실 이 같은 지적은 새삼스러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1990년대 들어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뒤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를 비롯해 조지 W. 부시 행정부, 그리고 지금의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미국 정부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했지만 결국은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통신4월27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장거리 포사격 훈련을 지도했다”라고 보도했다.
‘전략적 인내’의 결실이라던 2·29 합의도 물거품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1기 출범 직후인 2009년 5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전임 부시 행정부의 ‘보상을 전제로 한 대북 협상’을 접은 채 ‘전략적 인내’ 방식을 취하며 북한을 사실상 방치했다. 그러다 2010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통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존재 사실이 드러나면서 허겁지겁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섰다. 미국은 2011년 7월부터 2012년 2월까지 모두 3차례 북한과 직접 회담을 했고, 그 결과 2012년 2월29일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 유예,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함한 핵활동 중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를 대가로 24만t에 달하는 식량 지원 등에 극적인 합의를 보기도 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은 ‘2·29 합의’를 두고 ‘전략적 인내’의 결실이라며 자평하기도 했지만 북한이 그해 4월 미국 등이 장거리 로켓으로 규정한 위성을 발사함으로써 ‘2·29 합의’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2012년 4월과 8월 각각 비밀 대표단을 평양에 파견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4월 방북단을 이끈 조지프 디트라니 전 국가정보국(DNI) 북한 담당 책임자는 “김정은이 정부 요직에 온건파 인사들을 기용하는 등 부친보다 덜 경직되게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장거리 로켓과 핵실험 등을 강행했고 핵 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꾀한다는 ‘병진 노선’을 천명했는가 하면 고모부인 장성택과 그 일파를 숙청함으로써 미국 정보 당국의 허를 찔렀다.

이처럼 북핵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꼬여가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바빠졌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의 방한을 앞두고 최근 국가안보회의 내부에서도 북핵 해법과 관련해 비밀전략회의가 열리고 분석 문건이 빈발했다. 그러나 결론은 ‘전략적 인내 이외의 대안은 더 나쁘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한 참석자는 이를 두고  ‘꽉 막힌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고백은 북한이 핵 포기 불가를 확인한 ‘병진노선’을 천명한 이상 종전의 ‘전략적 인내’라는 접근 방식이 벽에 부딪혔다는 뜻으로도 들리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접근’의 핵심인 북한의 ‘선(先)비핵화 의지 확인’이라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이 같은 분위기는 6자회담 재개 문제로 지난 1월 하순 중국을 방문한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회담 재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이 기존 공약, 특히 2005년 9월 공동성명의 비핵화 의무를 준수하겠다는 뜻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전략적 인내’ 정책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최근 들어 미묘한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북한이 최소한 고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 문제만이라도 협상 의제로 채택하는 데 동의해줄 경우 미국은 6자회담 재개에 반대하지 않을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워싱턴 외교가의 정보통 크리스 넬슨은 “오바마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한 6자회담 재개에 응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이 문제가 타결될 경우 미국도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를 고려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상대인 북한의 태도다. 이미 새 헌법에 북한을 ‘핵 국가’로 명시하고, 병진노선까지 천명한 북한이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원하는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란코프 박사는 “북한은 체제 방어수단으로 필요한 핵무기는 유지하되 향후 핵 개발을 더는 추진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고자 하지만 미국은 국내 정치적인 이유와 비확산 전략 때문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농축 우라늄에 근거한 핵실험까지 강행하거나 미국 본토를 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론’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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