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분노로 일렁이는 대한민국 인터넷 바다에는 이런 말이 둥둥 떠다닌다. ‘세월호:대한민국/ 선장:대통령/ 선원:고위공직자들/ 승객:국민/ 선내방송:대한민국 언론….’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냉담하게 인터뷰 요청을 거부당하는 것은 기본이다. 멱살을 잡히거나 먹던 밥그릇을 빼앗기거나 메모 중이던 스마트폰을 빼앗기는 경우도 이따금 발생했다. 고등학생들이 진도로 보낸 구호품 상자에는 ‘기자들 쓸 생각 X, 먹을 생각 X’와 같은 경고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아래 사진). 기자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불린다.

언론이 자초했다. 사건 발생 초기 “학생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냈다. 미국 방송 CNN이 수온에 따른 생존 가능성을 분석하고 있을 때 국내 공영방송 뉴스는 사망 보험금을 계산하고 있었다. 단원고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아느냐”라며 마이크를 들이밀고 부모와 형제를 잃은 여섯 살 아이에겐 “엄마 아빠 어디 갔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인터넷에는 ‘타이타닉·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 ‘엑소 앨범 발매 연기…단원고 교감 자살’ ‘SKT, 긴급 구호품 제공·임시 기지국 증설 “잘생겼다~ 잘생겼다”’ 따위 참사를 ‘활용’한 기사들이 넘쳐났다. 포털 사이트가 나서서 뉴스 서비스 제휴 언론사들에게 “자극적인 편집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시사IN 이명익안산 단원고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취재진이 오열하는 학부모들을 취재하고 있다.
반복되는 대형 재난과 주먹구구식 대응 속에서 상식과 이성을 잃은 언론 역시 또 하나의 ‘데자뷔’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구조를 위해 확보해놓은 좁은 통로에 허락 없이 따라 들어가고, 산소통 메고 뛰어가는 구조대원을 붙잡고 인터뷰하며, 실명 위험 때문에 생존자 눈 위에 덮어놓은 담요를 걷어올리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등 구조 작업까지 방해하는 취재 경쟁을 두고 구조대원과 시청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때도 텔레비전과 신문은 “아비규환과 아수라장이 된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은 문구, 시신으로 보이는 잔해를 클로즈업한 사진과 영상 등으로 도배됐다. 오락가락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하다 오보를 양산하는 기자들, 장례식장·병원에서 허락 없이 찍은 사진들, 비슷비슷한 내용의 사연들…. 과거의 보도 양태를 그대로 답습한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SNS를 통해 유통되는 오보나 추측성 보도가 추가됐다는 점 정도라고 할까.

재난 이후 사후약방문은 정부뿐 아니라 언론계에서도 나왔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국내외 대형 재난 사고 직후 혹은 1주년에는 어김없이 재난 보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다시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라는 다짐 아래 세미나를 열고, 윤리강령을 개정하고, 포토라인 준칙을 제정하고, 반성하는 사설(社說)을 썼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 준비하던 재난보도준칙은 당시 대다수 회원사가 필요성을 공감했는데도 제정되지 못했다. 당시 준칙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태스크포스를 이끌 인력과 재정이 부족했고, 나서는 곳이 없는 와중에 사건이 점점 잊히면서 준칙 제정도 흐지부지됐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한목소리로 “참담하고 부끄럽다” 말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를 수행하면서 언론은 또다시 자성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취재기자들은 유족 앞에서 취재수첩을 접고 사진·영상 기자들 역시 풀(Pool)단을 만들어 카메라 세례를 자제하고 있다. 데스크들도 현장 기자들에게 “자극하지 말라, 무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곤 한다. 한국기자협회는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 10개 항을 만들어 각사 회원들에게 배포함과 동시에 11년 전 무산된 재난보도준칙 제정에 다시 나섰다. 4월23일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는 보수·진보, 온·오프라인, 취재·사진·영상 등 여러 분야의 언론인들이 참석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라는 공통된 심정을 밝혔다.

언론이 되새겨야 할 재난 보도의 기본 원칙에 대해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이연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의 알 권리에 우선해 구호와 인권을 중심에 둔, 철저히 피재자(被災者)의 관점에서 뉴스를 생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언론사 스스로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방재기관의 임무를 띠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 급파된 기자들은 때때로 그 원칙이 혼란스럽다. 방송사 기자 ㄱ씨는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울부짖는 유가족의 모습을 묘사하지 말아야 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니만큼 기록해서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는 않을까 고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신문사 사진기자 ㄴ씨는 “우는 학생들 얼굴을 찍어야 할지 말지, 병원에선 어디까지 접근해야 할지 매사 고민의 연속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방송사 기자 ㄷ씨는 “데스크들은 처음엔 무리해서 취재하지 말라고 하다가도 막상 타사에서 무리한 취재로 단독이라도 할라치면 ‘넌 뭐 없냐?’는 식으로 압박을 준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때에도 언론의 취재 경쟁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재난보도준칙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해서도 기자들의 의견이 갈린다. 사진기자 ㄴ씨는 “전 언론사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준칙이 있으면 적어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데스크에게 들이대며 저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사 기자 ㄹ씨는 “이제껏 제정된 여러 보도윤리강령 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한 재난보도준칙 역시 ‘지키면 나만 손해’가 되기 십상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난 취재 현장 등 기자가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사문화된 보도준칙보다 차라리 대표 간사를 둔 기자단과 같은 임시 협의체 구성이 오보와 무리한 취재 경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중앙 일간지 기자 ㅁ씨는 “세월호 보도의 두 가지 큰 문제점은 알맹이 없는 정부 발표를 받아쓰기한다는 것과 취재 경쟁으로 인해 비윤리적 보도가 난립한다는 것이다. 현장 취재기자단을 조직하면 정부에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라고 압박할 수 있고 비윤리적 보도에 대해서는 기자단 내부에서 페널티를 주는 등 적잖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그간 정부가 해온 언론 통제, 정·언 유착 관행으로 볼 때 이런 기자단 구성 방안은 오히려 위험한 요소도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재난 보도 원칙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가운데 이 시간에도 언론은 비슷비슷한 뉴스들을 쏟아내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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