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2월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앤디 그로세타 미국 육우목축협회 회장(동그라미)이 참석했다.

지난 2월25일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여의도 국회의사당. 시민 4만5000명이 초청됐지만 연단 앞자리는 박근혜나 정몽준 같은 유력 정치인이 차지했다. 그런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뒷자리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서양인이 보였다. 나라의 중요 행사에 큰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것이 한국에선 결례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가까이 걸어오자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등 신난 모습이었다. 이 남자는 앤디 그로세타 미국 육우목축협회 회장이었다.

육우목축협회(NCBA)는 소를 키우는 목장주들의 연합으로 미국 주요 로비 단체 중 하나다. 두 달이 지나 미국산 쇠고기 확대 개방 발표가 있자 그로세타의 방한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가 한국에 쇠고기 수입 개방 압력을 넣고 막후 협상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거다.

NCBA 홈페이지에는 앤디 그로세타 회장이 2월29일 현지 라디오 방송과 한 인터뷰가 공개돼 있다. 여기서 가르세타 회장은 한국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다. 그는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은 시간문제다”라고 낙관한 뒤 “이명박 대통령은 4월9일 총선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은 뒤 (수입 재개를) 확실히 추진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즉 4월9일 전에는 한국이 쇠고기 수입 확대를 주저하더라도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니 안심하라, 총선만 끝나면 된다는 뜻이었다. 실제 이명박 정부의 행보는 그와 같았다.

지금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광우병 수입 파동의 근본 원인 제공자가 바로 NCBA다. 지난 2003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된 이후 NCBA는 줄기차게 워싱턴 정계를 압박하며 한국 쇠고기 수입 재개방을 주장했다.

특히 지난 한·미 FTA 협상 때 NCBA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007년 3월 워싱턴에서 FTA 고위급 협상이 진행되는 때를 맞춰 NCBA는 봄 연례 총회를 워싱턴에서 개최했다. 워싱턴에 몰려온 이들 지역 목축업 대표자는 국회를 돌며 로비했다. 3월28일 총회 개막식 때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협회 간부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시 대통령이 연사로 등장했다.

NCBA의 성화 때문에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도 쇠고기 문제는 한·미 통상 외교의 불씨로 남았다. 2007년 11월15일 NCBA 제이 트뤼트 부회장은 한국과 일본의 쇠고기 수입 중단 조처로 입은 업계 손실이 125억 달러에 이른다고  미국 국제위원회(ITC) 청문회에서 주장했다. 미국 의회는 쇠고기 문제를 핑계대며 FTA 비준을 미뤄왔다.

협회 간부가 미국 정부 요직에 임명

1898년 창립된 NCBA는 워싱턴·덴버·시카고 3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NCB A가 하는 가장 큰 일은 정치권 로비다. 미국 책임정치연구소(CRP) 통계에 따르면 2006년 목축업계가 뿌린 정치 후원금이 486만 달러다. 이 중 상당액이 NCBA의 활동으로 이뤄진다. 선거 때가 되면 후원액은 더 늘어난다.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목축업계의 정치 기부금은 461만 달러였는데 이 중 78%가 공화당 부시 후보를 위해 쓰였다. 2004년 대통령 선거 때도 목축업계 기부금 585 달러 중 78%가 공화당 부시  몫이었다. 2008년 경우는 현재까지 55%만이 공화당 몫으로 격차가 줄었다.

로비는 효과가 있었다. ‘다우너 소’(광우병 의심 소) 판매금지법이 2003년 7월 단 3표의 지지만 받고 폐기된 적 있다. 법안 폐기에 주도적인 구실을 했던 공화당 하원 농업위원회 위원장 로버트 굿래트와 민주당 찰스 스텐홀름 의원은 모두 목축업자로부터 수만 달러 기부금을 받았다.
 

ⓒNYT2007년 3월28일 미국 육우목축협회 워싱턴 총회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NCBA의 영향력은 후원금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표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몬태나, 사우스다코타, 네브래스카, 캔자스, 오클라호마, 위스콘신, 아이오와, 미주리 등 쇠고기 산업발전 지역은 이른바 ‘비프 벨트’라 불린다. 이 중 캘리포니아를 빼면 나머지 주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정치가들은 NCBA의 활동에 충분한 답례를 한다. 2004년 대통령 선거 전 부시 대통령은 척 램버트 특사를 한국에 보내 쇠고기 수입금지 해제 압력을 행사했다. 4년마다 되풀이되는 ‘NCBA 로비→시장 개방 압력’ 공식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부시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NCBA에 우호적이다. 그 자신이 텍사스 목장주였던(현재도 그렇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NCBA 총회 때도 연사로 나섰다. 2004년 1월1일 신년 기자회견 때 부시는 “쇠고기는 안전합니다. 나는 매일 쇠고기를 먹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아예 NCBA 출신 인물을 농무부 고위 관료로 임명하기도 했다. 2002년 12월 이래 미국 농무부 시장거래 및 규제 프로그램 담당 부차관을 맡고 있는 찰스 램버트(척 램버트) 박사는, NCBA에서 수석연구원으로 15년간 일해온 사람이다. 그는 농업통상자문위원회(APAC) 산하 육류산업통상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대통령 직속 통상정책·협상자문위원회(ACTPN) 위원을 겸했다. 역시 ACTPN 위원인 위드 윌리는 전 NCBA 회장이다.

농무부 장관 비서실장 데일 무어는 과거 NCBA 입법 관련 업무를 총괄한 인물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NCBA의 로비 책임자(Chief Lobbyist)였다. 알리사 해리슨 농무부 대변인은 NCBA의 홍보담당 이사였다. 그 밖에 엘리자베스 존슨 식품영양 수석보좌관 역시 NCBA 전 식품정책 담당 부국장 출신이다.

이런 미국 농무부가 목축업자에게 관대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0개월 이상 소는 광우병 위험물질(SRM)인 뇌와 척수를 제거해 팔아야 하지만, SRM을 제거했다는 입증 증명서는 목장 주인이나 민간 축산업자가 발급 가능하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NCBA는 조지 W. 부시 재임 기간에 미국 농무부를 좌지우지하는 권력단체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한국 정부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쇠고기 수입 확대 NCB A가 FTA 협정 비준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2008년 4월21일 기사에 인용된 주미 한국 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조만간 (FTA 비준을 향해) 미국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조직적 로비가 미국 업계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자 NCBA와 농민연합회 등이 즉각 환영 성명을 냈다” “이들의 전국 조직망을 보면 놀랄 것이다”라고 말했다. NCBA가 한국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한국 한우 농민이 이명박 정부에 미치는 힘보다 더 커 보인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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