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5월13일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지진으로 숨진 사람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지난 5월12일 낮 2시20분쯤. 중국 쓰촨성 더양시 루장현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샹젠 씨(35)는 집 소파에 앉아 있다가 뭔가 이상한 진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열어봤지만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 그러나 10분 뒤, 돌연 집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화병 등이 떨어져 깨졌다. 놀란 샹젠 씨는 세 살 난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샹젠 씨는 건물이 무너지거나 죽은 사람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웃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공원과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고 샹젠 씨도 〈시사IN〉과 전화 인터뷰를 한 5월15일까지 동네 마당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Xinhua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오른쪽)가 지진으로 크게 다친 어린이를 위로하고 있다.

올해는 정말 중국에서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해다. 1월에 한파가 몰아치고 2월에 폭설이 내리더니 3월에는 티베트 독립운동 사태(중국 시각으론 폭동)가 있었다. 4월에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인권 시위대와 중국인 유학생이 충돌했다. 그리고 5월, 쓰촨성 대지진이 발생했다. 중국 서남부 쓰촨성 원촨 지역 부근을 진앙으로 한 이번 지진은 진도 7.8 규모의 강진으로 피해 범위가 쓰촨성 전역에 미쳤다. 진앙지 부근은 시가지가 전멸했다. 5월16일 중국 쓰촨성 리청원 부성장은 기자회견에서 (5월16일 현재) 사망자가 2만1500명, 매몰자가 1만4000명이라고 추산 발표했다. 이러다 8월8일로 예정된 올림픽 개최가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지진 발생 이후 중국 정국이 흐르는 양상을 지켜보면 이번 쓰촨 대지진은 앞선 여러 불미스러운 사태와는 다른 점이 있다. 비상사태 발생 이후 중국 정부가 보인 기민한 대응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지진 자체는 분명한 참극이지만, 정치학적 시각에서 보자면 이번 지진은 베이징 지도부가 어수선했던 민심을 다잡고 국론을 통일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치 지지율 하락 때문에 고전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1년 9·11 테러 사건이 터져 힘을 얻고 미국민이 하나가 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중국 정부가 대지진 수습에 빠르고 적확하게 행동한 것은 사실이다. 진앙지인 원촨 부근은 교통이 불편한 산악 오지인데, 지진이 발생(5월12일 오후 2시28분)한 지 1시간이 채 안 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직접 긴급 복구를 지시했다.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났을 때는 청두시에 주둔하던 인민해방군 5000여 명과 경찰 3000여 명이 현장에 급파됐다. 뒤이어 의료진이 출동했다.

“정부 신속한 구호에 감동”

세 살 난 아기와 함께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청두 시민 샹젠 씨는 “정부의 구호 조처에 대해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 원자바오 총리가 직접 와서 잠도 안 자고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간부들이 매일 피난민 숙소에 와서 필요한 것이 없느냐며 챙긴다. 내가 운영하는 공장이 하나 있는데, 생산 상황이나 관리 문제에 대해서도 챙겨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AP Photo5월15일 중국 안후이성 뤼안 시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왼쪽).

청두시 진장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는 시민 리이(李椅) 씨도 비슷한 답변을 했다. 그는 “지진 경보 발령을 빨리 내려 시민들을 신속히 대피시켰고 여진이 발생할 때마다 계속 통보를 해주고 있다. 물가도 정부가 확실히 통제해서 적어도 청두 안에서는 물가 상승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1976년 탕산 대지진 때 중국은 언론 보도를 막았다가 3년 뒤 사망자가 24만명이라고 확인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그때는 초기 구호도 늦어서, 한동안 중앙정부는 대지진의 규모를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치밀한 언론 통제로 외신 기자들 사이에 악명 높은 중국은 이번에는 (지진 문제에 관한 한) 외신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하고 있다. 다소 선정적일 수도 있는 사망자 가족의 절규와 끔찍한 피해 장면 사진도 포함된다.

중국 정부가 탕산 지진 때와 달리 정보를 공개하기로 한 것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도 한몫 한다. 인터넷 발달로 중국 네티즌이 현장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는가 하면, 동영상 화면도 속속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티베트 이야기는 쑥 들어가”

정확한 상황 보도에는 신화통신이 주인공이었다. 국무원 산하 관영 언론사인 신화통신은 지진 발생 18분 만에 첫 속보를 냈다. 그때 신화통신은 사망자 수가 최소 3000명이 넘을 거라고 추산했다. 신화통신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홈페이지(xinhuanet.com)에 특별판을 만들었고 거의 분 단위로 속보를 내보냈다. 물론 보도 내용은 주로 정부 대응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다. 중국은 포지티브 뉴스를 다량으로 내보내는 것이 네거티브 뉴스를 진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미국식 미디어 전략’을 배운 듯하다.
 

ⓒXinhua5월13일 쓰촨 남서부 주유완 마을에서 구조대가 부상자를 이송하고 있다.

청두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다가 지진을 겪었다는 여성 왕샤오페이(王小佩) 씨(20)는 “신화통신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지진 재해 지역의 상황을 알 수 있고, 재해 지역에 뭐가 필요한지 알고 적극 도움을 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에 대한 마음도 바꿨다. 그 전에는 중국 정부가 절박한 필요에 대응하는 것이 이렇게 빠른 줄 몰랐다. 이 일을 통해, 중국 정부의 지도 능력과 정부 지도자들이 다 인민을 정말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왕샤오페이 씨는 인터뷰 말미에 “중화민족은 무너지지 않을 민족이다”라며 찬양에 가까운 민족관을 펼쳤다.

이번 지진은 최근 주목되고 있는 중화민족주의 바람을 강화시킨다. 성화 봉송 보호를 빙자해 폭력 시위를 벌인 중국 유학생들의 경우는 중화민족주의가 잘못 발현된 경우지만, 이번 대지진에 대한 민족주의는 긍정적인 쪽으로 흐른다. 젊은이들은 자원봉사에 나서고, 전국에 걸쳐 성금 물결이 이어진다. 사고 발생 사흘 만에 중국 전역에서 성금 8억7700만 위안(약 1300억원)이 모였다.

물론 대지진 이면에 정부의 어두운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 언론은 검열 이후에 보도된다. 부실한 도시계획이나 부실 공사 문제도 가려져 있다. 대지진 바람에 강화되고 있는 중화민족주의가 뒤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알 수 없다.

쓰촨 대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정우경씨는 지진 이전과 이후 달라진 쓰촨 풍경을 이렇게 말했다. “올해 초 쓰촨 지역은 티베트 독립운동 테러가 있었다. 자동차가 폭발한 사건, 37번인가 47번 노선 버스인가가 터졌다는 이야기 등…. 여기 사람들은 티베트 독립운동 세력을 ‘DJ(독립 장족의 준말)’라고 부르는데, 학교에서 대학생 예비 공산당원들이 ‘DJ’들을 비판하는 선전 활동을 하며 단속하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대지진 이후 티베트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사람들은 온통 정부의 복구 작업에 귀를 기울이고 뉴스는 구호 작업만 집중 보도한다.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가 된 모습은 1999년 세르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 폭격 사건 이후 처음인 듯하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

요즘 이 바람을 타고 영웅이 된 사람은 원자바오 총리다. 피해자 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연일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원자바오 총리의 사진이 신화통신을 비롯한 주요 언론 매체에 실린다. 9·11 이후 부시 대통령이나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누린 인기와 비슷하다. 모든 자연재해는 정치적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대지진 정치 게임에서 승리하고 있다.

통역·안승해/취재협조·셰이저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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