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이튿날인 4월17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정세전략실은 당직자들에게 ‘금언령’을 내렸다. 향후 대책, 책임 추궁, 정치권과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일절 함구하라는 지시였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마당에 정치권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새정연은 이날 각 시·도당에 경선 일정을 중단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4월17일 “지방선거 후보들은 선거운동을 중지하고 국민과 함께 힘든 때를 같이하자”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당내 경선 일정도 일주일가량 연기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5월2일, 서울은 5월9일에야 후보 선출대회가 열린다. 6·4 지방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뽑히게 생긴 것이다. 이미 새정연 후보로 사실상 본선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결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정치권은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사회적 비극 앞에 혹여 정치인의 ‘허튼짓’이 불거질까 봐 긴장하고 있다. 참사 초기에는 일부 정치인이 우르르 현장 방문에 나서고, 지방선거 도전자들이 참사 위로를 빌미로 한 선거운동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야 모두 상대방을 공격하는 발언을 자제하며 실종자의 생환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50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 정치권이 이번 참사의 정치적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는 없다.
 

ⓒ시사IN 조남진4월16일 안철수 공동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정치인들(위사진)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각각 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오히려 악재?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에 악재가 될 수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가 집권당이 아닌 야당에 불리하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그는 달라진 언론 환경을 이유로 들었다. 보수 언론과 종편이 언론 지형을 장악하고 있는 한 이번 참사로 야권이 반사이익을 얻는 보도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과거 야당이 집권한 시기였으면 정부의 안전대책 미흡 등을 보수 언론이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종편과 보수 언론은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태 수습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후 대통령이 합동분향소에 가서 눈물이라도 흘려봐라.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야권은 앉아서 지방선거 패배를 맞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사건 당일 공중파와 종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구조자 숫자가 200명이나 차이가 날 수 있느냐”라며 안전행정부 차관을 질타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노출됐다. 4월17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참모진의 만류에도’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책임자를 엄벌하겠다”라고 말한 뒤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일도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야권 관계자들조차 “박근혜 대통령이 적어도 자기 지지율 수습은 잘했다”라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악재’까지는 아니어도, 세월호 참사가 새정치민주연합에 그다지 좋은 국면을 만들어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를 앞두고 대형 사건이 터지면 선거 자체가 묻혀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새정연의 핵심 당직자는 “대형 참사에 선거가 올스톱되면 기존 선거 구도가 굳어버린다. 그러면 쫓아가는 쪽이 불리해진다. 공약이든 정쟁이든 뭔가 만들어서 국면을 뒤집어야 하는 새정연에게 좋을 게 없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 역시 “우리의 자세는 간단하다. 집권당으로서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오히려 새정연의 처지가 더 조심스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4월16일 안철수 공동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정치인들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위 사진 가운데)가 각각 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아닌 게 아니라 속내가 복잡한 건 새정연이다. 자칫 세월호 침몰 참사를 정치적으로 엮으려 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정연 쪽에서 참사 이튿날부터 ‘입단속’에 나선 것은 그런 염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닥치고 ‘좋은 말씀’만 하는 것도 책임 있는 정치 세력의 태도가 아니다. 새정연의 관계자는 “문제는 타이밍이다. 한동안 입 다물고 있겠지만, 결국 (정부 책임론으로) 치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그게 언제일지 판단하는 게 지도부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유정복 인천시장 예비후보는 타격 사정권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실책이 사고 집계 혼선 수준에서 마무리되면 야권으로서는 딱히 ‘액션’을 취할 게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대응은 우왕좌왕이다. 급기야 4월18일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하다. 정부가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며 대국민 호소문까지 발표했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음에도 실종자 가족이 정부를 질타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정부·여당을 바라보는 여론이 싸늘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이 지방선거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인물이 있다. 인천시장에 도전하는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다. 유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며 기존 행정안전부에서 이름을 바꾼 안전행정부의 초대 장관이다. 지난 2월14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그가 ‘이전 정권과 달리 지난해에는 50년 만에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자화자찬한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업무보고 뒤 사흘 만에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가 일어났고, 그로부터 두 달 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정치권에서는 적어도 인천시장 선거에서만은 유정복 전 장관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천시가 바닷가와 접한 도시라는 점에서 이번 참사에 대한 여론도 예민할 수밖에 없다.
4월18일 열린 새정연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는 발언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박혜자 최고위원은 “정부가 선상 방송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우원식 최고위원도 “지금 언론과 SNS 등에서 다양한 추정이 제기되는 것은 정부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새정연의 한 현역 의원은 “구조 단계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부 책임론을 제기할 것이다.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3년 10월10일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 참사는 여러모로 세월호 참사와 닮았다. 승선 인원 파악부터 사고 수습까지 정부는 오락가락했고, 사고 대처도 늑장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움직임은 좀 달랐다. 훼리호 참사 발생 이튿날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계속되는 대형 사고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황인성 내각이 총사퇴하라”며 초강수를 뒀다. 김영삼 정권은 사고 발생 하루 만에 교통부 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을 경질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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