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명→164명.’ 사고 발생 7시간이 지날 때까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는 구조자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대책본부는 재난이 발생하면 범정부 차원의 통합지원과 총괄 기능을 담당하는, 안전행정부에 설치된 비상대책기구다. 대책본부 본부장은 안행부 장관이 맡는다. 사고가 나자, 정부는 매뉴얼대로 대책본부를 가동했다. 대책본부 차장은 바로 오락가락 발표를 한 이경옥 안전행정부 2차관이다. 안행부 2차관실은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안전 업무를 맡고 있는 주무 부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국정 운영의 양대 축으로 ‘국민 안전’과 ‘경제 부흥’을 강조했다. 안전을 강화한다는 의미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꿨다. 2차관실 산하에 안전관리본부도 신설했다.

지난 1년 안행부는 대국민 안전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보도자료를 내기에 바빴다. ‘재난 및 안전사고에 선제적 대응체계를 마련한다’며 관계 부처 합동으로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부처별 안전 관련 법·제도를 총괄적으로 조정·정비하는 차관·차장급 안전정책조정회의’가 신설되었다. 안전정책조정회의를 매월 한 차례 열고 있다는 설명도 따랐다. 또 ‘중앙부처·지자체·공공기관에 각각 재난안전책임관을 지정해 각종 사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게 했다. 각 지자체에 안전행정국·안전총괄과 등 안전관리 총괄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모든 광역단체에서 특별사법경찰관을 운용하게 했다. 시도별로 ‘안전문화실천협의회’를 구성하고 행정기관과 민간이 함께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고도 발표했다. 재난 발생 즉시 긴급 출동해 정부의 재난대응 활동을 돕고 인명구조, 긴급복구·구호 활동을 전개할 ‘재난긴급대응단’도 출범시켰다.

이렇게 안행부발 보도자료만 살펴보면, 그리고 매뉴얼대로만 작동했다면, 세월호 침몰 참사 때 대량 구조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은 매뉴얼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컨트롤타워도 없었다. 컨트롤타워 노릇을 해야 할 대책본부는 탑승자와 구조자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완벽하다고 자랑하던 시스템은 인재가 발생하면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곤 했다.
 

ⓒ시사IN 조남진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위) 직전 안전행정부는 ‘생명을 구하는 골든타임제’를 도입한다고 했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 때도 혼란상이 드러났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사고 일주일 전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긴급 차량이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게 하는 ‘생명을 구하는 골든타임제’를 도입해, 2013년 58%에 불과하던 ‘5분 이내 재난현장 도착률’을 2017년에는 74%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당시 리조트 참사 현장에는 긴급 차량들이 골든타임 안에 도착하지 못했고 안행부와 소방방재청은 우왕좌왕하며 사망자 파악도 제대로 못했다. 아무리 ‘폭설’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해도 용납되기 힘든 대처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 때도 같은 혼선이 반복됐다. 특히 초기 대응 미숙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인명 피해를 키웠다. 전문가와 관련 공무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근혜 정부의 ‘말만 화려한 페이퍼 대책’이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명패만 바꿨을 뿐 내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국책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안전을 정말 강조했다면 안전을 담당하는 부서를 1차관 산하로 해야 했다. 생색만 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안행부는 1998년 정부 조직·인사를 총괄하는 총무처(1차관)와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내무부(2차관)가 통합되면서 탄생했는데, 과거 총무처 구실을 하는 1차관실에 인사권 등을 틀어쥔 ‘실세 부서’가 많다. 이에 비해 2차관실에는 상대적으로 약세 부서가 많은데, 박근혜 정부는 2차관실에 안전 업무를 맡겼다. 게다가 안전담당 부서는 공무원들이 가기를 꺼려 하는 곳이다. 한 전문가는 “지방은 더하다. 시도 재난관리부서 과장은 전문성이 없는 행정직 과장이 맡고 있고, 기피 부서라는 이유로 신규 직원이나 퇴직 예정 공무원들이 배치된다. 인센티브 등을 통해 전문성 있는 직원들을 유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AP Photo미국은 연방재난관리청이 모든 재난에 대응한다. 위는 2009년 뉴욕 허드슨 강 여객기 추락 사고 현장.


“재난 대응 이원화, 그 자체가 맞지 않다”

국내 정부조직상 재난관리 업무를 처음 맡은 곳은 1948년에 설치된 내무부 장관 산하 건설국이었다. 그 후로도 재난관리 업무는 내무부 라인이 맡으며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재난관리 전담기구를 처음으로 전문화한 건 노무현 정부 때다. 2004년 6월에는 재난관리 전담기구로 소방방재청을 개청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재난 관련 일부 기능을 행안부(안행부)로 이관했다. 문제는 이관만 되었지 더 이상 업무영역이 확대되지도 전문화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 안전’이라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생색내기용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원화다. 현재 자연재난은 소방방재청이 담당하고, 인적·사회적 재난은 안전행정부가 담당한다. 이렇게 이원화된 중앙재난 조직을 운영하다 보니, 전문성을 지닌 소방방재청은 기능이나 역할이 축소되고, 지방자치단체에 이중의 지휘 시스템이 작동해 혼선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이번에도 안행부·국방부·해수부·해경 등이 상황실을 만들었지만, 초기 역할 분담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책기관의 또 다른 전문가는 “재난 대응을 이원화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현대사회는 복합재난이 빈번하다. 소방방재청이 맡고 있는 자연재난이라고 인적 피해가 없는 게 아니잖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이원화를 고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원화와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혼선은 외국과 비교해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책본부는 미국의 재난관리 체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국은 자연재난이든 인적 재난이든 모든 재난을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전문적으로 담당한다. 또 NIMS(National Incident Management System)라 불리는 재난관리 체계가 작동한다. 사건지휘 체계, 관계기관 협업체계, 합동공보 체계가 표준화되어 작동된다. 9·11 테러를 계기로 국토안보부를 신설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했다. 독일도 9·11 테러를 계기로 연방내무부 산하에 ‘시민보호 및 재난대응청(BBK)’을 만들어 종합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었다.

박근혜 당선자 인수위 시절, 국내 전문가들도 재난 대책과 관련한 여러 방안을 인수위원회에 제안했다. ‘국민안전부’를 신설하거나 방재청을 ‘국민안전부’로 확대하는 방안에서부터, 안전행정부에 재난 전문 3차관실을 신설하는 방안까지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런 제안 대신 명패를 바꾸고 세가 약한 2차관실에 안전 부분을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4월7일 박 대통령은 “재난 유형별로 3000개가 넘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다고 하는데, 기존 매뉴얼 중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없는지 짚어보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대형 복합재난에 대비한 매뉴얼이 필요한 건 아닌지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두고 국책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원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매뉴얼만 만들어보았자 무용지물이다. 선진국은 매뉴얼이 아니라 복합사고 시나리오별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통합대응기구에서 이를 구현한다”라고 지적했다.

아마도 이번 사고가 수습되고 나면 안행부는 복합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또 다른 ‘페이퍼용’ 보도자료를 내놓을 공산이 크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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