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선언한 지 열흘쯤 지난 3월 중순, 새정연의 한 전략통을 만났다. 무공천으로 인한 불리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시원하게 답했다.

“무조건 지겠지. 그래도 우리는 면죄부를 받았다. 기초선거에서 우리만 무공천하고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두면 국민이 보기에 선거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이 구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새정연은 기초 무공천을 기정사실화하고 나름의 대응 논리를 궁리 중인 것으로 보였다. ‘합당 효과’ 때문인지 당내 반발로 인해 무공천 방침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낌새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 달 뒤 판이 180° 뒤집혔다. 무공천은 없던 일이 되었고, 이와 함께 안철수의 ‘새정치’도 사라졌다는 비아냥이 들린다. 남은 건 새정연이라는 야권 통합정당의 존재뿐이다.

당장 궁금증이 이는 건 “기초 무공천은 결코 바꿀 수 없다”라던 안철수 공동대표가 왜 갑자기 ‘무공천 여부를 국민과 당원에게 묻겠다’고 태도를 바꿨느냐는 점이다. 무공천 재검토 방침이 알려진 4월8일, 대다수 언론은 무공천 강행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보냈다. 무공천 재검토를 시사하는 기사를 쓴 건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물먹은’ 타사 기자들이 새정연 측에 항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만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4월11일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 한데 모인 ‘무지개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왼쪽부터 김두관·정세균 공동선대위원장, 김한길·안철수 상임선대위원장, 문재인·정동영 공동선대위원장
ⓒ연합뉴스 4월11일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 한데 모인 ‘무지개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왼쪽부터 김두관·정세균 공동선대위원장, 김한길·안철수 상임선대위원장, 문재인·정동영 공동선대위원장

그러나 새정연 내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단 당내 반발이 김한길·안철수 대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섰다.

4월 들어 신경민 최고위원이 “무공천하려면 차라리 당을 해산하라”며 지도부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우원식·양승조 의원 등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초 무공천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는 한편, 안철수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한 새정연 당직자는 “김한길 대표도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의원들이 김 대표를 만날 때마다 안 대표를 설득해서 출구전략을 짜라고 압박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3월 말에 나온 두 가지 여론조사 결과가 새정연 내에 돌면서 논란이 되었다. 리얼미터와 리서치뷰 조사였다. 3월25일 MB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벌인 대국민 여론조사에서는 ‘무공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응답이 53.8%로, ‘무공천을 철회해야 한다’는 응답(21.1%)보다 두 배 넘게 나왔다.

반면 3월28일 리서치뷰가 과거 ‘민주당’의 기초의원과 대의원을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는 ‘민주당만 무공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8.7%로, ‘대선 공약이므로 찬성한다’는 응답(36.8%)보다 높았다.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지만 리얼미터 조사보다는 좁혀진 수치다. 이 조사에는 안철수 신당 쪽 인사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새정연 관계자는 “이 조사를 놓고 안철수 대표 쪽에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론조사와 당원 투표 50대50으로 이뤄지는 무공천 여부 조사에 안 대표 지지자들이 참여하면 실제 결과는 무공천 쪽으로 더 기울 것으로 예측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무공천 재검토 발표가 나온 4월8일만 해도 새정연 내에서는 결국 무공천으로 결론 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공천해야 한다’가 53.44%로, 무공천(46.56%)을 앞질렀다. 국민 여론조사만 따로 봐도 공천(49.75%)과 무공천(50.25%) 의견이 팽팽했다.

안철수 대표 측 예상이 빗나간 이유

예측은 왜 빗나갔을까. 여의도 정가의 해석은 이렇다. 일단 4월 들어 무공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무공천 고수 대 철회 여론의 차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또 무공천 재검토 발표가 일제히 언론을 타면서 안철수 지지자들이 ‘판’을 달리 읽었다. 안철수 대표가 공천 쪽으로 돌아섰다고 봤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새정연의 관계자는 “결국 안철수 대표가 지지자에게 신호를 잘못 보낸 셈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새누리당이 공천을 강행하는 상황에서 공천을 안 하면 불공정한 상황이 되므로’라는 문구를 넣은 여론조사 항목이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이다.

‘기호 2번’ 아래로 재집결한 새정연의 앞날은 어떨까. ‘수도권 기초단체장 전패’ 분위기였다가 ‘절반 이상은 건지면서 선전하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전망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장애물이 만만치 않다. 당장 새정연의 무공천 방침을 믿고 이미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군소’ 기초의원·기초단체장 후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들이 정당 공천 부활에 따라 ‘낙동강 오리알’이 되면서 밑바닥 조직 표가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광역단체장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무공천 철회 결론이 내려지고 다음 날인 4월11일 안철수 대표 쪽 인사들이 강력 반발했다. 허재안 성남시장 예비후보, 장형옥 경기도 광주시장 예비후보, 이대의 수원시장 예비후보 등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초 공천 선회로 과거처럼 국회의원들이 기초단체장과 기초 및 광역의원의 공천을 결정하는 행태가 재연될 위기에 처했다”라고 비판했다. 기초단위 공천이 부활함에 따라 옛 민주당 국회의원의 ‘줄 세우기’가 공천을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게임의 규칙’ 만들고 공천 잡음 줄이는 게 숙제

경기도와 광주광역시 등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를 놓고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이는 것도 새정연에게는 부담이다. 경기에서는 김상곤·김진표 예비후보가 경선 방식을 놓고 ‘탈당 불사’ 카드까지 내놓으며 치고받고 있다. 광주에서는 한 후보에 대한 전략공천설이 퍼지면서 경쟁 후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잡음이 커질수록 무공천 철회로 가뜩이나 스타일을 구긴 새정연에게는 좋지 않은 모양새다. 중앙선관위 경선 위탁 기한인 4월25일까지 ‘게임의 규칙’을 얼마나 매끄럽게 완성하느냐가 눈앞에 놓인 숙제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구원투수는 ‘무지개 선거대책위원회’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와 문재인·정세균·정동영·손학규·김두관 등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 한데 모인 무지개 선대위의 구실에 따라 선거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정연의 핵심 당직자는 “문재인·김두관이 영남, 정세균·정동영이 호남, 손학규가 수도권을 책임지는 식으로 모양새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위기에 처한 김한길·안철수 리더십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했던 ‘기초 무공천 드라마’는 결국 새정연만의 진통 속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무공천을 버리는 대신 1대1 구도를 손에 쥔 새정연의 지방선거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궁금하다.

기자명 이오성·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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