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북한이 올해 5월이면 식량난 때문에라도 남한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는 정부 주변 민간 대북 전문가들의 무책임한 조언이 대통령 인식을 오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권 초기에는 ‘비핵개방 3000’이 정부 정책이라고 선전해왔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쑥 들어갔다. 비핵이니 개방이니 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각론이 전무하다. 그러니 정책이라기보다는 구호에 가깝다.

대신 요즘 정부가 북한과 관련해 하는 얘기는 딱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방침’에,  또 하나는 ‘신념’에 가깝다. 우선 신념부터 보자면, 이런 거다. 한·미 공조가 굳건하기 때문에 북한이 절대로 ‘통미봉남’에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한·미 공조에 구멍이 숭숭 났고, 통미봉남이 진행되는데도, 같은 얘기가 반복된다.

한·미 공조와 통미봉남에 대한 그릇된 신념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4·8 싱가포르 북·미 합의 이튿날 정부 당국자가 베이징에서 미국 측과 만났으나 미국 측은 핵신고 문제 외에, 정말 중요한 북·미 관계 일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새 정부들어 정부 주변에 상근하다시피 하는 이른바 민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여기에 한술 더 떠, 아무리 국무부가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합의를 해도, 체니 등 네오콘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며 대통령을 안심시켰다. 그래서 “통미봉남은 불가능하다”라고 대통령이 기세 좋게 선포하고 워싱턴에 당도했는데, 웬걸 미국 측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끄집어낸 게 바로 남북연락사무소 개설 제안이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얼마 전 청와대 고위 당국자라는 사람이 기자들을 불러, 미국이 북한과 만나기 전후에 우리에게 모든 얘기를 해준다며, 또다시 통미봉남 불가론을 끄집어냈다. 그러나 이제는 기자들도 그 얘기를 안 믿는다. 그 중 한 기자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는지, “이런 얘기 자꾸 하는 거 보니까 진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라는 투로 자기 기사 중간쯤에 박아넣어 버렸다.

ⓒ뉴시스북한 요청을 전제로 대북 직접 지원을 고집하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가운데).
대북 정책은 이미 실종한 지 오래다. 오직 남은 건, “북한의 요청이 오면 식량 지원을 검토하겠다”라는 말뿐이다. 이 아이디어의 근원을 따져보니, 새 정부 주변에 모여든 민간 전문가들 머리에서 나왔단다. 그들은 나름 전문지식을 동원해 북한이 올해 엄청난 식량난에 처할 것이기 때문에 5월만 되면, 결국 남쪽에 손을 내밀게 되어 있다며, 우리가 서두를 것이 하나 없다고, 보고서를 쓰고 정책 조언을 했다. 새 정부의 모든 대북 발언이나 인식의 밑바탕에는 바로 그들의 이런 ‘전문적 식견’이 작동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 셋은 몰랐다. 북한의 식량난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다 알 만한 사실이다. 정말로 전문가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중국이라는 선택지도 있고, 베트남도 있고, 미국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북한이 곧 무릎을 꿇을 거라며 다른 가능성에는 눈과 귀를 막았다. 북한 문제에 문외한인 대통령은 나름 전문가라고 알려진 이들의 조언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보다 못한 외교부와 국정원이 지난 4월 말 노무현 정부 때 주기로 했던 옥수수 5만t이라도 먼저 주자고 안을 내자, 대통령이 나서서 북한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왜 주냐며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또다시 보름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미국은 북한과 50만t 식량 지원 협상을 끝내버린 것이다.

물론 북한이 앞으로 그들 민간 전문가의 예언대로 우리에게 손 벌릴 리는 만무하다. 대신 우리 쪽에서 요즘 하는 얘기를 들여다보면 “제발 우리한테 쌀 좀 달라고 해주세요”라고 애걸하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만 하다. 몇 사람의 잘못된 ‘전문적 식견’이 나라를 몇 달 사이 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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