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군에서 잃고 긴 세월을 어떻게 보냈나?
허영춘(허)
:1984년 4월2일 큰아들 원근이를 군에서 잃었다. 부대에서는 원근이가 첫 휴가 나오기 전날 M16 소총으로 자기 오른쪽·왼쪽 가슴에 각 한 발, 머리에 한 발 도합 3발을 쏴서 자살했다고 통보했다. 그 뒤 30년 동안 생업(김 양식업)을 제치고 서울과 진도를 오가며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애써왔다. 1988년부터는 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하며 군 의문사 진상 조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143일간 노숙 농성을 하기도 했다.
두 사건은 ‘처음에 군이 자살이라고 발표했다가 다른 국가기관의 재조사에서 자살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지만 국방부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방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나?
허
김:군에 오래 몸담은 사람으로서 허 일병 사건을 보며 고통과 분노를 느꼈다. 이 사건을 끝까지 자살로 밀어붙이는 국방부를 보면서 ‘조작의 신’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었다. 의문사위 등 다른 국가기관과 국방부 안에서도 양심 있는 사람들이 이미 타살이라고 밝혔으면 국방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끝까지 깔아뭉갠 채 자살몰이를 했다. ‘3성 장군 출신인 당신도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일반 국민이 어찌할 수 있겠느냐’는 한탄을 들을 때면 군 생활을 오래 한 사람으로서 너무 참담하고 힘들다.
자살이 아니라는 근거를 간단히 짚고 가자.
허
김:헌병대 수사관이 훈이 사망 현장에 들어가려 하자 부대에서 막고 물청소를 실시했다. 훈이 손목시계가 파열되고, 크레모아 스위치 박스가 파괴되는 등 격투와 반항의 흔적이 수두룩했지만 아예 조사 대상에서 빼버렸다. 훈이가 본인 소지 M9 베레타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해놓고 나중에 유족이 조사해 다른 사람 권총이었음이 드러나자 ‘그날 김 중위가 다른 사람 권총을 차고 근무에 들어갔다’고 둘러댔다.
지난해 8월 허 일병 사건 항소심 재판장은 ‘타살이라면 동료애를 가진 부대원들이 입을 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라던데.
허:부대원들을 공범으로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사건 전날 모든 사병에게 머그잔으로 소주 한 컵씩을 먹이고 사건 직후에는 사체를 옮기고 탄피와 시간을 조작하는 일을 분담시켰다. 일명 ‘매미타기 고문’이라고, 철조망에 매달고 곤봉을 무릎에 껴서 밟는 고문을 당한 뒤 부대원들이 자살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해줬다고 한다. 재판장은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동료 부대원에게 그런 짓을 했겠느냐고 하지만 5공 시절의 물정을 모르는 소리다.
김:김훈 중위 휘하 소대원들의 판문점 군기 문란 행위는 보안법에 걸리는 것이라서 기무사가 먼저 조사해서 처벌 위협을 하니까 특조단 조사 때 겁을 먹고 자살 방향의 허위 진술을 한 것이다. 타살을 증언한 병사에 대해서는 수사관이 윽박지르며 ‘그럼 네가 죽였지?’ ‘네가 죽인 사람 봤지?’라고 몰아붙였다. 이것이 군 의문사위 재조사에서 다 드러났다.
다른 국가기관의 재조사로 자살 결론이 뒤집힌 뒤 유족에게 회유는 없었나?
허
김:특조단 발표 전에 국회 국방위 소위원회에 국방부 간부가 찾아와 ‘타살로 보면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겠다’ ‘자살로 보아도 징후와 동기를 밝히기 어렵다’라면서 유족과 국회의 입장을 생각해 진상 규명 불능 사건으로 처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살로 만들어내느라고 밤새 고생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국방부 자문 법의학자들이 반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허:법의학자가 바로 서지 않으면 의문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원근이 사건 국방부 기록에도 김훈 중위가 거론된다. 김훈 중위 사건을 법의학 토론회로 잠잠하게 만들었으니 허원근도 법의학 토론회로 끝내자는 것이다. 국방부 자문 법의학자들이 국방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고 있는데 양심의 편에 설 수 있겠나. 국과수 출신 한 법의학자는 유족들에게 “내게는 국방부에서 떡값이 더 이상 안 온다. 계속해서 객관적 소견을 냈더니 그런가 보다”라고 하더라.
김:법의학자가 개입하려면 반드시 사건 현장에 데려가야 한다.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주는 자료와 떡값으로 움직이는 법의학자들은 군 사망 사건 조사에서 퇴출돼야 한다.
허
국민과 군 의문사 유족에게 하고픈 얘기는?
김:군에서 아들을 잃으면 가정이 파탄난다. 군 사망자 유가족의 피눈물은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국방부가 진실을 외면하고 묵살한다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가 안보와 강한 군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