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힐러리(위)는 플로리다·미시간 주의 경선 무효를 번복하는 데 승부를 건다. 힐러리는 두 주에서 승리했으나 대의원을 선정받지 못했다.
“끝까지 버티느냐, 아니면 지금이라도 중단하느냐?” 한때 민주당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잘나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매일매일 이 고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상대인 버락 오바마 후보에 비해 대의원 수에서도 밀리고, 선거자금도 모자라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빚더미에 올라 있다. 대개 이런 상황이라면 상대 후보에게 깨끗이 자리를 내주고 후보 경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미국 정치의 관행이지만 힐러리는 아직 그럴 마음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현재의 경선구도를 8월 전당대회까지 끌고 가서 기어코 오바마와 한판 승부를 겨루겠다는 태도다. 

지난 5월6일 치러진 인디애나 주, 노스캐롤라이나 주 예비선거를 고비로 민주당 유권자의 민심은 사실상 오바마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힐러리가 인디애나에서 오바마에게 신승을 거둔 것이 위안이 될 수는 있지만, 대다수 정치평론가의 분석은 힐러리 측 해석과 다르다. 힐러리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려면 두 개 주 모두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두 곳 모두 실망스러운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힐러리는 인디애나 주에서 겨우 2% 포인트 차이로 오바마를 이겨 대의원 75명을 확보했지만 오바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15% 표차로 힐러리를 누르면서 대의원 115명을 거머쥐었다. 

힐러리 측근 "지는 전투 언제까지..."

힐러리는 인디애나 주 예비선거가 끝난 뒤 “11월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라며 경선 완주에 대한 결의를 재확인했지만 선거 참모들은 ‘지는 전투를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사실 이들은 힐러리가 인디애나 주에서마저 패했다면 경선 사퇴를 적극 종용할 참이었다. 힐러리 진영의 앨런 패트리코프 민주당 전국재정위원장은 “힐러리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지고 인디애나 주에서 승리한 것은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힐러리가 계속 경선에 임하겠다고 말하지만 진퇴 여부는 그녀만이 결정할 일이다”라며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웨스트버지니아 주를 포함한 나머지 6개 주(대의원 총수 217명)에서의 예비경선을 남겨둔 현재 일반 대의원 확보 현황을 보면 1842명을 둔 오바마가 1686명을 둔 힐러리를 크게 앞선다. 후보로 공식 지명되기 위해서는 대의원 2025명을 확보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오바마, 힐러리 어느 후보도 이를 자신하지 못한다. 어느 한 후보가 6개 주 모두를 독식하지 않는 한 2025명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른바 선출직 민주당원과 관리, 당 간부들을 총칭하는 796명 슈퍼 대의원의 표심에 따라 두 후보의 당락이 결정될 전망이다.

CNN의 최근 집계를 보면 오바마는 252명의 슈퍼 대의원을 확보해 266명을 둔 힐러리보다 조금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278명 슈퍼 대의원은 아직 최종 결심을 하지 못한 상태.

CNN 정치분석가인 데이비드 거겐은 “나머지 6개 주의 예비선거 결과보다는 슈퍼 대의워의 향배가 더 결정적”이라고 말하고 “슈퍼 대의원이 슬슬 오바마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라고 진단했다.

만일 힐러리가 나머지 6개 주 예비경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막판 슈퍼 대의원 확보 경쟁에서 모두 승리할 경우 오바마를 제칠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힐러리는 “결국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라면서 아직 후보 선택을 하지 못한 슈퍼 대의원들에게 호소하지만, 이들 모두가 힐러리 쪽으로 기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힐러리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변수는 당 선거규칙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대의원 선정을 받지 못한 플로리다 주와 미시간 주에 배정됐던 대의원 366명을 되찾는 일이다. 만일 두 주가 총 대의원수에 합산될 경우 공식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수는 지금의 2025명보다 훨씬 늘어난 2209명이 된다. 오바마에게 훨씬 뒤지는 힐러리가 “두 개주가 빠진 48개 주 대의원만으로 후보 선정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힐러리는 두 개 주에서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AFP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오바마가 앞서고 있다. 위는 오바마 후보 지지자 모습.
민주당 중진, '힐러리 용퇴' 설득 나서나

워낙 중대한 사안인 만큼 민주당 전국위원회 선거규칙위원회는 이달 말 공식 회의를 갖고 유권해석을 내릴 예정인데, 하워드 딘 위원장은 “개인적 견해 두 주 모두 대의원 인정을 해줘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어 힐러리 측이 내심 크게 반기는 모양새다. 그러나 오바마 측이 대의원 인정에 불복할 경우 최종 판정은 6월 말 마지막 심판기관인 민주당 신임위원회로 넘어간다.

문제는 힐러리가 지금처럼 승산 없는 게임을 이미 공언한 대로 과연 전당대회까지 끌고 갈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핵심 변수는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포함한 그녀의 강력한 후원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다. 현재 그녀의 후보 사퇴 여부에 영향을 줄 만한 인물로는 에드워드 렌델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존 코자인 뉴저지 주지사, 버논 조던 변호사,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클린턴 가문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인사로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고, 누구보다 유권자의 민심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따라서 이들이 막판 예비선거가 열리는 다음달 이전 힐러리에게 후보 용퇴를 진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 다른 변수는 힐러리가 막판 승부수로 오바마에 대한 인신공격을 포함해 이전투구 양상을 벌이는 경우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 경우 오히려 민주당 유권자들이 힐러리에게서 등을 돌릴 것으로 내다본다. 힐러리 진영의 슈퍼 대의원이자 캘리포니아 주 연방 상원의원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조차 “지금 같은 소모전이 계속되면 당 분열만 가중될 것이다”라면서 힐러리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흐름 탓인지 과거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앨 고어와 존 케리의 고위 선거참모를 지낸 로버트 슈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유세는 계속될지 몰라도 경선은 이미 끝났다.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 후보다. 이제는 힐러리가 경선을 어떤 방식으로 끝낼지 결정할 때다”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들은 힐러리가 끝까지 경선에 임할 경우 설령 오바마가 공식 후보로 선정되더라도 그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선택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용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힐러리가 점점 커지는 용퇴의 소리에 귀 기울일지, 아니면 지금 같은 마라톤 경선을 끝까지 고집할지 좀더 두고 볼 일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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