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R-TASS0가즈프롬은 기업이 아니라 권력 기관에 가깝다. 위는 가즈프롬이 관리하는 가스 파이프 라인,드베데프 가즈프롬 이사회 의장(현 러시아 대통령·맨 앞)이 파이프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가즈프롬에서 일하고 싶다.” 러시아 청년들의 한결같은 희망 사항이다. 세계 최대 가스 회사인 가즈프롬(Gazprom)은 러시아 경제의 버팀목이자 푸틴 대통령의 ‘강한 러시아’ 정책을 지원하는 전위대다. 5월7일 대통령에 취임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현재 가즈프롬 이사회 의장이다. 러시아 속의 러시아로 통하는 가즈프롬은 러시아 국가 전략기업이다.

가즈프롬은 4월23일 현재 시가 총액 기준 세계 3위(3190억 달러)인 공룡 기업이다. 가즈프롬이 확보한 천연가스는 29조 큐빅(1820억 달러어치)으로 전세계 가스 보유고의 17%에 이르며, 15만6000km에 이르는 가스관을 관리한다. ‘가즈프롬 네프티’라는 세계 20위의 석유 기업도 자회사로 거느린다.

가즈프롬 사업 영역은 에너지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와 N-TV 따위 언론사, 중견 은행 가즈프롬방크, 항공사 가즈프롬아비아도 가즈프롬 소유다.
가즈프롬 직원 수는 43만명이다. 러시아 노동 인구(총인구 1억4000만명)를 감안할 때 43만명이란 수는 국민 300명당 한 명이 가즈프롬 직원이란 얘기가 된다. 모스크바 남서쪽에 우뚝 선 34층 건물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 2500명은 대다수가 모스크바 국립대, 바우만 공대, 구브킨 석유·가스 대학 등 러시아 명문대 출신이거나 해외 유학파이다.

ⓒReuters=Newsis모스크바에 있는 가즈프롬 본사.
직원 복지 제도가 좋아 직원의 긍지와 자부심도 대단하다.
가즈프롬은 자체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두마(하원)는 ‘가즈프롬이 보유한 가스전과 가스관을 테러 공격에서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무장 병력 보유를 허용하는 특별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0년 푸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러시아가 연 7%대 고도 경제성장을 지속한 것은 가즈프롬 덕분이다. 러시아 세금의 80%가 에너지 관련 기업에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 경제가 가즈프롬에 의존하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가즈프롬은 1989년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국영 회사로 설립했다. 소련이 무너진 후 가즈프롬은 1993년 주식회사로 민영화했는데, 2003년 유코스 사태를 분수령으로 에너지기업 국영화에 주력한 러시아 정부가 가즈프롬 주식 소유를 꾸준히 늘려 현재 대주주(주식 50.002% 소유)가 됐다. 현행 러시아 투자법은 기간산업의 외국인 투자 한도를 50%로 묶고 있다.

가즈프롬의 지배자는 푸틴

가즈프롬은 가스 생산량 39%를 국내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전량 수출한다. 1993년 핀란드와 20년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한 이후 유럽 및 독립국가연합국 등 32개국에 가스를 수출한다. 유럽은 2006년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1610억㎥ 수입했는데, 이는 전체 사용 가스의 25%에 해당한다. 핀란드와 발틱 3국은 사용 가스 전량을 러시아에 의존한다.

가즈프롬은 문화·체육 사업도 열심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지낸 아드보카트가 감독이고 김동진과 이호 선수가 뛰는 제니트의 후원 기업이 가즈프롬이다.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전 때 인프라가 부족한 소치가 평창을 따돌린 데는 가즈프롬의 로비가 있었다.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가즈프롬은 한국 로비 액수의 세 배를 퍼부었다고 한다.

ⓒAP Photo2007년 메드베데프 가즈프롬 이사회 의장(현 러시아 대통령·맨 앞)이 파이프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가즈프롬은 푸틴의 회사로 통한다. 푸틴이 회사 경영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몸집을 불려 세계적인 회사로 키웠기 때문이다. 가즈프롬 조직은 푸틴 측근이 장악하고 있다. 최측근인 가즈프롬 이사장 메드베데프는 물론이고 사장인 알렉세이 밀레르도 ‘푸틴 사람’이다. 6월27일 선출될 차기 이사장도 푸틴이 지명할 전망이다. 지난해 총리로 발탁되어 푸틴 진영으로 합류한 빅토르 주코프 현 총리가 차기 이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때 가즈프롬이 그루지야에 공급하는 가스 가격을 대폭 인상하고 가스 공급을 중단한다며 위협한 적이 있었다. 그루지야 국민은 가즈프롬의 발음을 빗대 ‘가즈(가스) 푸틴’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에너지 수출은 러시아의 외교·전략 사업이다. 가스 협상을 매개로 러시아는 반(反)러시아 정권이 들어선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를 외교적으로 압박한다. 여기서 가즈프롬이 중추적 구실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너지 무기화라는 서방 측 비판을 묵살하고, 러시아는 가즈프롬을 앞세워 외교적으로 이용한다. 해외 순방을 할 때 푸틴 대통령은 밀레르 가즈프롬 사장을 꼭 동반한다.

가즈프롬의 국영화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에너지 자원의 국가 통제력 강화에 대한 염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경영 탄력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1분기에 러시아의 석유 산출량은 하루 평균 976만 배럴로 지난해에 비해 1%가량 줄었다.
최근 가즈프롬은 해저 가스관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5년 흑해를 관통하는 ‘Blue Stream’ 해저 가스관을 건설해서 터키에 가스를 공급하는 가즈프롬은 2006년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애니(ANI) 사와 손잡고 러시아-흑해-불가리아-유럽을 연결하는 ‘South Stream’(900㎞) 건설을 추진한다.

야심찬 프로젝트도 진행형이다. 현재 가즈프롬은 가스 매장량 세계 7위인 나이지리아와 사하라 사막을 관통해 나이지리아 델타 지역과 알제리의 지중해 연안을 연결하는 총연장 4000㎞의 이른바 ‘사하라·종단·가스관’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다. 가스로 유럽의 숨통을 바싹 조이겠다는 얘기다.

기자명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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