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은 1981년 발생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당시 고문 피해자들의 변호인 중 한 명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이 〈변호인〉이 개봉을 한참 앞두고 있는데도 연일 화제다. 시사회가 열리기 전부터 검색어 순위 등 영화 관련 순위를 휩쓸고 있다. 홍보사에 따르면 〈변호인〉의 2차 예고편은 공개되자마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올해 개봉된 영화 중 최고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공개되자마자 하루 동안 21만8000건을 훌쩍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는 〈설국열차〉의 수치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꼭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꾸준한 폄훼 움직임도 있다. 보수 누리꾼들이 주로 이용하는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는 이 영화의 포털 사이트 별점을 낮추자는 글이 줄지어 올라온다. 반대쪽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견제하자는 글이 올라와서 〈변호인〉의 별점은 1점이거나 10점인,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 누리꾼 수만명이 소모적인 별점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배우 송강호씨가 영화 <변호인>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화 말미에 극중 송우석 변호사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거리로 나서고 구속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둘러싼 좌우의 첨예한 갈등은 영화제작사와 배급사, 홍보사를 위축시켰다. 제작보고회와 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언론과 만나는 것 외에는 배우와 감독의 인터뷰도 자제시키는 분위기다. 영화가 좌우 이념 갈등의 소재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제작보고회나 시사회가 끝나고 언론 인터뷰를 할 때도 대다수 배우들은 ‘노무현’이라는 이름 대신 ‘그분’이라는 표현으로 비켜갔다.

‘급전 필요한가?’라는 기사 올린 조선닷컴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씨가 특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조선 시대의 부당한 권력 찬탈을 다룬 〈관상〉과 미래의 계급사회를 보여준 〈설국열차〉에 이어 오늘 우리의 현실 이야기를 다룬 〈변호인〉까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두루 오가며 다양한 연기 변신을 보여준 그에게 〈변호인〉은 가장 부담스러운 영화였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실제 인물을 다룬다는 부담 때문에 한 차례 고사했었다고 밝혔다.

실제 보수 언론의 견제도 있었다. 10월30일 영화의 1차 예고편이 올라오자, ‘설국열차, 관상 이어 변호인까지… 송강호 연이어 영화 출연 “급전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조선닷컴에 올라왔다. 이를 기억한 기자가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기사를 환기시키자 송강호씨는 “급전은 항상 필요할 수 있는데 이번엔 아닌 것 같다”라고 답했다.

송강호씨를 비롯해 〈변호인〉에 출연한 배우들이나 감독이 이 영화를 언급할 때 꼭 붙이는 설명이 있다. 바로 이 영화는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해야 할 만큼 정치적인 영화’라는 걸 보여준다. 개봉일을 12월19일로 택한 만큼 이 영화가 정치적 논란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노무현 변호사’는 1987년 대우조선 파업 당시 노조를 돕다 노동법의 독소조항인 ‘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영화라는 면에서 〈변호인〉은 〈화려한 휴가〉와 비교된다. 〈화려한 휴가〉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영화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변호인〉은 상업영화로도 완성도가 높고 연출력과 연기력이 잘 결합되어 작품성까지 뛰어나다는 평이다.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영화적 잔재미를 다양하게 제공한다.

〈변호인〉처럼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이 다소 무겁게 이야기를 풀어간 것과 달리 〈변호인〉은 가볍고 경쾌하게 관객을 끌고 간다. 고문 장면도 〈남영동〉처럼 관객이 불편할 정도로 거칠게 몰아붙이지 않고 처절한 이미지 위주로 전달한다. 그리고 관객을 충분히 즐겁게 해준 다음 정신없이 내달린다. 변화구와 직구, 그리고 낙차 큰 커브의 환상적인 볼 배합으로 타자를 유린하는 투수처럼 웃음과 눈물, 분노와 감동을 적절히 배합해 관객의 마음을 계속 들었다 놓았다 한다.

송강호씨가 맡은 송우석 변호사는 2대8 비율의 가르마에 체크무늬 양복을 즐겨 입고,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돈을 좀 벌자 취미로 요트를 시작한다. 영락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의 속물적인 모습부터 고매한 모습까지 폭 넓게 보여준다. 비록 노 전 대통령 특유의 말투는 흉내 내지 않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싱크로율(일치 비율)이 높아진다. 판사에게 형사소송법을 들이밀며 피고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검사의 궤변을 논리적으로 논박하며 야무지게 몰아붙이는 모습은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상업고등학교 출신 변호사의 좌충우돌 성공기로 경쾌하고 가뿐하게 시작한다. 잃을 것 없는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는 사법서사들이 주로 하던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를 자칭하며 수수료로 돈을 모은다. 이후 상고 출신의 장점을 살려 잘나가는 세법 변호사로 승승장구한다. 8차선 도로 위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내달리는 일만 남은 그의 인생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단골 국밥집 주인아주머니의 아들이 시국사건에 연루되면서다.

ⓒ시사IN 조남진11월29일 양우석 감독(맨 오른쪽)과 배우들이 서울 왕십리 CGV에서 언론 시사회에 참석했다.

눈앞의 불의 앞에서 영화는 경쾌한 질주를 멈추고 주인공이 속물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중년의 성장영화 형태를 취한다. 여기서부터는 돌직구다. “할게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포기 안 합니다. 절대 포기 안 합니다” “무죄면 무죄판결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송우석은 온갖 겁박과 불이익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영화의 에피소드를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은 소송에 들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력이다. E. H. 카가 소련에 살았던 빨갱이가 아니라 영국의 외교관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을 영국 대사관을 통해 문서로 확인해오고, 고문 증거를 확보해 고문 조작 사실을 밝히는 과정이 에피소드로 사용된다. 법정에서 “알리와 포먼이 경기를 할 때 김일성이 알리를 응원했다고 칩시다. 그럼 그때 피고인들도 알리 편을 들었다면 그것도 이적행위입니까?”라고 물었던 일화도 에피소드로 쓰인다. “법정에서 김일성을 고무 찬양하는 행위를 삼가달라”는 검사의 어이없는 대응도 영화에 담겼다.

법정 공방은 이 영화의 영화적 성취가 집약된 부분이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법정 장면을 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한 다양한 움직임으로 역동성 있게 찍어냈다. 공판마다 다른 방식으로 에피소드를 풀어가서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고조시킨다. 자연광을 살린 조명이 긴장 속에서도 차분하게 법정 공방을 따라가게 만든다.

이 영화가 영화적 힘을 갖는 것은 현실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부당한 재판 과정을 보면서 관객들은 국정원 대선 개입과 이에 대한 경찰의 수사 축소, 그리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수사 간섭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평론가 최광희씨는 “이 영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칭송이라기보다 그가 통과했고 분노했던 한순간을 통해 우리 시대가 잠시 까먹은 보편적 시비지심을 재확인하는 작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어떤 대중적 ‘현상’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라고 평했다.

1점 아니면 10점.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영화 <변호인>에 대한 별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대중적 ‘현상’으로 이어질지 관심 집중

‘이 영화는 절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할 때 동원하는 또 다른 단어는 바로 ‘상식’이다. 이 영화는 상식에 대한 영화이고 상식을 주장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소리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상식의 힘을 믿는다. 62일 동안 고문을 당하게 되는 진우는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바위는 죽어 있고 달걀은 살아 있다. 달걀은 깨어나서 바위를 넘을 수 있다”라고 말하며 속물 변호사 송우석을 일깨운다.

다시 바람이 불까? 조짐이 심상치 않다. 친노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도 단체 관람을 추진하는 모습이 SNS에 포착된다. 11월29일 언론 시사회를 연 이후 배급사는 ‘국토대장정 시사회’로 세몰이에 나선다. 11월30일 제주를 시작으로, 12월1일은 부산과 대구에서 시사회를 하고 이어 다른 도시에서도 순차적으로 시사회를 열 예정이다. 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할 때 전국을 순회하며 지지를 이끌어낸 것처럼 배우와 감독이 전국을 순회하며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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