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개입 의혹 논란이 일었던 국가보훈처 〈호국보훈교육〉 DVD 교재 일부가 국가정보원 자료인 것으로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나 쌍용차 파업,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등 야당이나 시민단체 활동을 ‘종북’으로 비판한 보훈처 DVD는, 11개 세트 58개 동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시사IN〉 제321호 ‘노무현 지지 모임이 북한지령 받고 활동?’ 참조). 보훈처는 대선이 치러진 2012년 이 DVD를 전국 학교에 배포했고, 1411회 강연하고 연인원 200만명가량이 보았다고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밝힌 바 있다. 대선 개입 논란이 일자,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국감에서 “DVD 협찬자(제공자)가 밝히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누구인지 답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왼쪽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실이 제공한 국가보훈처 DVD, 오른쪽은 국정원 동영상. 동영상 제작자는 “김정은 주택의 위성사진 등은 외부에서 구할 수가 없다. 국정원에서 제공받았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동영상이 보훈처 DVD보다 먼저 제작

〈시사IN〉은 국가정보원이 제작을 의뢰했다가 납품받은 보훈 관련 동영상을 다수 입수했다. 동영상뿐 아니라 세금계산서 등 관련 자료와 증언도 확보했다. 〈시사IN〉이 입수한 동영상과 대선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보훈처 DVD를 비교해보니 일부 동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똑같았다. 상당 부분 장면이 일치하는 동영상도 많았다. 국정원으로부터 안보 관련 동영상 제작을 의뢰받아 납품한 김철희씨(가명)는 “보훈처 DVD 가운데 3개는 내가 만들어 국정원에 납품한 것과 똑 같다”라고 증언했다(“내가 제작한 동영상이 논란 일으켜 충격” 인터뷰 참조). 김씨가 국정원에 동영상을 납품하고 받은 세금계산서에는 명의가 7452부대로 되어 있었다(국정원의 대외용 이름 ‘5163부대’ 기사 참조). 7452부대는 국정원 댓글 사건의 장본인인 김하영 직원의 변호사비를 대납한 사실이 밝혀져 그 실체를 두고 논란이 인 바 있다.

제작 시기로 보면 민간업체가 국정원에 납품한 동영상이 보훈처 DVD보다 앞섰다. 국정원 동영상이 보훈처 DVD 세트를 구성하는 데 쓰였음을 추론케 한다. 김철희씨는 “국정원이 그동안 납품받아 가지고 있던 여러 동영상이 보훈처 DVD 세트로 구성된 것 같다”라고 추정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치하는 3개뿐 아니라 김씨가 만든 국정원 동영상과 보훈처 DVD는 많은 부분이 겹쳤다. 이를테면, 보훈처 DVD 여덟 번째 CD 중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북한’ 편에 나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글라스를 낀 채 술을 마시고 그가 마시는 양주 브랜드를 보여주는 장면은 자막이 있고 없고만 차이가 날 뿐 국정원 동영상과 동일했다(아래 두 번째 사진 참조). 북한의 선전물 ‘우리는 행복해요’ ‘세상에 부럼 없어라’와 같은 네온사인 또한 국정원 동영상과 국가보훈처 DVD 화면이 같았다.

북한 수용소의 참상을 알리는 수기 그림 또한 국정원 동영상과 국가보훈처 DVD 양쪽에 다 나오는 장면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보훈처는 각각의 그림을 따로따로 슬라이드 형식으로 DVD 세트 안에 정리를 해놓은 데 비해, 국정원 동영상은 한 장면 안에 그림 10개를 격자무늬 식으로 배치해놓았다. 같은 원자료를 써서 화면을 재구성한 것이다. 공개처형이나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 모습은 같은 앵글과 같은 장면이 반복적으로 보훈처와 국정원 동영상에 등장했다.

 

 

 

공개처형, 북한의 기아.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려는 우리 인민의 세기적 염원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1993년 김일성 신년사 장면과 말을 타고 있는 김정일, 그리고 화려한 폭죽을 터뜨리는 북한 시내의 모습 등도 국정원과 보훈처 동영상에 모두 나온다. 국경을 넘는 탈북자를 적외선 카메라로 찍거나 꽁보리밥이 담긴 도시락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앵글까지 동일하다. 

동영상을 국정원에 납품한 김철희씨는 “김정은 주택의 위성사진이나 기쁨조 동영상은 외부에서 구할 수가 없다. 저런 장면은 국정원에서 제공받았다. 국정원도 이런저런 것은 꼭 들어가야 할 장면이라며 동영상 자료를 제공했다”라고 말했다. 김씨 외 국정원에 동영상을 납품한 또 다른 관계자도 “국정원에서 동영상 제작을 맡기면서 자신들이 가진 자료를 건네준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런 안보 관련 동영상을 보통 외주를 주고 납품을 받아왔다. 외주를 주면서 관련 업체로부터 보안각서를 받았다. 제작 후에는 국정원이 제공한 동영상뿐 아니라 작업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체를 가져갔다. 김씨의 증언과 관련 서류를 보면, 보훈처 DVD 제공자는 국정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런 의혹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외부 업체에 의뢰해 동영상을 제작한 것은 맞지만 직원 교육용으로 만든 것이다. 국가보훈처 등 외부 기관이나 단체에 제공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보훈처 관계자도 “10월 국감에서 보훈처장이 제공자를 밝힐 수 없다고 답변한 것 이상으로 더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양주를 마시는 장면,

 

기쁨조 공연,

 

기자명 고제규·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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