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로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토목사업은 정치인에게 매력적인 공약이다. 국무총리실 자료를 보면 현재 36개 지자체에서 경전철 노선 84개를 검토 중이며, 총사업비는 51조5000억원에 이른다. 철도 및 역사 건설 역시 정치인들의 단골 공약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제19대 총선 후보 54명이 철도 혹은 역사 건설 공약을 내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철도 노선 연장 공약을 내건 후보 역시 59명에 이르렀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비슷한 공약들이 또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잘못된 토목사업이 어떻게 지방 재정을 파탄 내는지 보여주는 ‘교과서’가 있다. 용인경전철은 정치인과 건설사, 그리고 국책 연구기관의 ‘삼각동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사례다. 토목사업을 통해 치적을 쌓으려는 (혹은 뒷주머니를 챙기려는) 정치인과 감시 기능을 상실한 무능한 시의회가 판을 깔자 국책 연구기관이 이론적 뒷받침을 해줬다. 여기에 이윤 극대화를 노리는 건설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용인시 재정은 파탄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과 감사원까지 총출동해 용인경전철을 둘러싼 복마전을 파헤치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 이들이 ‘한탕’ 해먹고 떠나 엉망이 된 자리를 수습하는 것은 결국 시민들 몫으로 남게 됐다.

ⓒ시사IN 조남진용인경전철 ‘에버라인’ 개통식날 열차기지창에서 운행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전동차들.

1조127억원짜리 애물단지가 된 용인경전철의 시작은 허술했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둔 어느 날,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불명예 퇴진한 윤병희 전 용인시장은 이정문 시장 후보자(한나라당)의 전화를 받는다.

“용인경전철, 이거 추진해도 됩니까?”

“아, 그거 좋습니다.”

이 후보자가 조언을 구한 윤 전 시장은 용인경전철의 구상자였다. 2012년 수원지검 특수부의 용인경전철 수사 결과를 보면, 이 전화 한 통은 공약의 근거이자 ‘여론 수렴’의 전부였다.

이정문 시장은 당선 직후부터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용인경전철 사업을 추진했다. 민자투자법 시행령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사업 협상 대상자를 2인 이상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경쟁 구도가 되어야 주무 관청이 협상에 유리하고 사업비도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인시는 협상 대상자를 한 곳만 선정한다. 2002년 이정문 시장 취임식 당일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던 ‘봄바디어 컨소시엄’이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봄바디어 컨소시엄은 철도차량 부문 세계 1위, 항공 부문에서는 세계 3위를 자랑하는 다국적기업이다.

좀 더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 곳은 ‘하루 16만명이 용인경전철을 이용할 것’이라는 교통 수요예측을 한 국책 연구기관 한국교통연구원(KOTI·옛 교통개발연구원)이었다. 검찰 조사를 보면, 수요예측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수요예측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구 통행실태조사’는 애초에 시행하지도 않았고, 해외 경전철과의 수요 비교도 생략했다.

정치인·건설사·연구기관의 ‘토목 삼각동맹’

무엇보다 의아한 점은 연구원이 내놓은 수요예측이 사업자인 봄바디어가 제시한 수요예측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MRG:민간자본이 투입된 사업의 수익이 예상보다 적을 경우 그 적자분을 공공기관이 보전해주는 것) 때문에 보장액을 높이기 위해 사업자가 수요예측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되레 연구원이 내놓은 수요예측이 사업자의 수요예측보다 높았던 것이다.

용인시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수요예측을 재검토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교통연구원이 내놓은 수요예측을 기준으로 2004년 봄바디어와 실시 협약을 체결했다. 이정문 시장은 이 실시 협약을 체결하면서 사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시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시의회 의결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지방자치법을 위반한 것이다.

해당 용역을 수행한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들은 2001년 2월께 ‘경전철 벤치마킹’을 명분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 이 여행 일정은 봄바디어 한국지사의 전무와 협의해 짜였다. 9일간의 일정 중 7일은 봄바디어가 생산한 경전철을 타고 공장을 견학하는 데 할애되었다. 이들은 2003년부터 7년 동안 봄바디어로부터 명절 때마다 선물을 받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4월26일 경기도 용인시청 광장에서 열린 용인경전철 ‘에버라인’ 개통식에 김문수 경기지사(아래 왼쪽에서 세 번째)와 김학규 용인시장(왼쪽에서 네 번째) 등이 참석했다.

봄바디어가 생산하는 철제차륜 LIM을 용인경전철에 추천한 것도 한국교통연구원이었다. 애초 용인시가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로부터 도시철도기본계획상 확정·통보받은 것은 고무차륜이었다. 그러나 용인경전철은 결국 철제차륜으로 건설되었다. 감사원은 “구조물 공사비만 579억~873억원 과다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감사보고서에 밝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용인시 실무진이 이정문 시장에게 13차례 이상 문제점을 보고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정책 수정은 없었다. 2004년 중앙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가 ‘3년간 90%로 체결한 운영수입보장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역시 묵살됐다. 기획재정부가 과도한 운영수입보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예측 수요의 50% 미만인 사업에 대해서는 운영수입보장을 하지 않도록 했지만, 이 또한 무시했다.

이정문 시장이 이 모든 것들을 찍어 누르는 대신 손을 벌린 곳은 봄바디어였다. 이 시장은 봄바디어에서 받은 경비로 이종재 당시 용인시의회 부의장을 비롯해 시의원 18명에게 ‘경전철 견학’을 명분으로 미국과 캐나다 여행을 주선했다. 실제로는 골프와 관광 등 유람성 해외여행이었다. 그 대가로 시의회는 입을 다물었다.

한편으로 이 시장은 친동생이 운영하는 전력에 39억원, 측근이 운영하는 △△건설산업에 19억원의 하도급을 주도록 경전철 시공사인 대림산업과 한일건설에 압력을 가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측근에게 받은 1만 달러가 결국 이 전 시장의 발목을 잡았다. ‘부정처사 후 수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시장은 지난 2월15일 징역 1년, 추징금 1만 달러를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무리한 사업 강행과 부정한 행위로 용인시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도 반성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한다”라고 밝혔다.

용인경전철과 관련한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2010년 용인시는 경기개발연구원에 다시 수요예측을 요청했다. 경기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수요예측 결과는 하루 최대 3만명이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수요예측에 비해 13만명이나 적은 숫자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수요예측을 기준으로 MRG를 적용하면 시는 앞으로 30년간 2조5000억원을 사업자에게 보전해줘야 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2010년 용인경전철이 완공되고도 3년 넘게 개통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루 16만명 탄다더니…실제는 9000명 이용

완공 이후 3년 만인 올해 4월26일 개통한 용인경전철의 100일간 운행 기록을 살펴보면 하루 평균 탑승객 9000명. 당초 예상 인원인 16만명의 5.6%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6월에는 25만8000명, 7월에는 25만1000명으로 매달 탑승객이 줄고 있는 형편이다. 용인시는 8월 이후 탑승객 수를 아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2010년 4월21일 부산 사상과 경남 김해를 잇는 경전철이 성능과 안전을 점검하는 시운전을 하고 있다.

2010년 당선된 김학규 현 시장(민주당)은 완공된 용인경전철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준공 승인을 내리지 않았다가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세 차례 준공보고서를 제출했다가 반려당한 사업자 봄바디어는 국내 법원이 아닌 국제상공회의소에 국제 중재를 신청했다. 여기서 용인시가 패하면서 8500억원을 물어내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결국 용인시는 용인경전철 때문에 또 한번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10월10일 ‘용인경전철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하 주민소송단)’은 용인경전철 사업비 전체인 1조127억원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정문·서정석 전 시장은 물론 김학규 현 시장과 용인시 공무원, 시의원, 사업관계자와 건설사 등 모두 42명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요구였다. 대상자 42명 중 눈에 띄는 대목은 그동안 책임 추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한국교통연구원과 연구원 3명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주민소송단을 이끄는 현근택 변호사는 “실패한 정책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선례를 남기자는 게 주된 취지다. 그래야만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 아닌가.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또다시 각종 개발 공약이 쏟아질 텐데, 이번 소송이 그런 것들을 제어하는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용인경전철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용인경전철과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김해~부산 경전철, 의정부경전철 역시 과다한 수요예측으로 인해 1조원대에 가까운 적자가 예상된다. 의정부경전철은 통행량의 31.2%가 과다 산정된 것으로 지난 8월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수요예측 당시 민간 사업자가 임의로 개발한 신뢰성 낮은 모형을 사용했고,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국가교통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시가 임의로 실시한 가구 통행실태조사 자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확정되지도 않은 대학 이전 계획을 반영해 통행량을 과다 반영하는 등 잘못된 수요예측을 한 광명경전철과 성남경전철의 경우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사업이 전면 재검토되기도 했다.

모든 토목사업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수요예측이 잘못됐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용인경전철 사례에서 보듯 수요예측의 실패가 정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는 정치인·연구기관·건설사 삼각동맹이 다시금 꿈틀거린다. 용인경전철 소송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삼각동맹에 경고를 보낼 수 있을까. 용인경전철 주민소송단의 소송에 지방선거를 앞둔 각 지자체의 눈과 귀가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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