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4월18일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을 태운 골프 카트를 몰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3월3일자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한국의 사르코지’라고 불렀다. 사르코지는 지난해 당선한 프랑스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는 닮은 점이 있다. 둘 다 우파 정치인으로서 친기업 정부를 자부하고 영어 교육을 강조한다. 미국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친해지려 노력하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자기의 영어 능력에 대한 평가다. 

지난 4월18일 이명박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만난 자리에서 “Can I drive?”(골프 카트를 내가 몰까요?) “He is my guest”(부시는 내 손님이죠) 등 영어로 농담을 했다. 그는 종종 외국인과 기자가 모인 자리에서 영어로 말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니콜라 사르코지의 경우는 다르다. 지난해 10월11일 그는 부시 대통령를 만나기 위해 미국 메인 주 켄느번크포트 골프장을 찾았다. 이 때 사르코지는 기자 앞에서 영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공식 기자회견 단상에서 모국어로 말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르코지의 경우는, 부시 일가에게 ‘초청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순간에도 프랑스어를 썼다. 자세히 당시 영상을 살펴보면 기자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르코지가 부시와 몇 마디 주고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자 가까이에 오면 꼭 통역을 불러 중계하게 했다.

이를 두고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인 특유의 고집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실용주의자다. 그가 프랑스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국어사랑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진짜 이유는 단지 자기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헝가리계 이민자 출신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사르코지가 영어 회화를 전혀 못하지는 않을텐데, 발음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사르코지의 영어 발음을 알 수 있는 동영상 하나가 인터넷 사이트 유튜브(youtube)에 올라 있다. 사르코지가 재무장관 시절, 외국인 투자자 앞에서 연설한 이 동영상을 보면 그는 국어책 읽듯 한 단어씩 끊어가며 “위윌/비/애피/투/엘프/유/메이크/모네”(여러분들이 돈을 벌도록 도울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미국인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진 게 창피했는지 대통령 사르코지는 그 뒤 ‘감히 공개 석상에서 영어를 쓸 엄두를 내지 않는다(텔레그라프, 3월26일자)’.

사르코지의 소심함은 이명박 대통령과 비교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 이른바 ‘MB영어’란 발음이 어색하고 문법에 어긋남에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15일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에게 ‘Why don’t you ask me know-how to win the primary’(나에게 경선에서 이기는 법을 물어보지 그랬어요)라며 농담을 걸었다. 문법에 따르면 ‘Why didn’t’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이

ⓒReuters=Newsis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은 특유의 프랑스식 영어 발음으로 미국 네티즌의 놀림을 받았다.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best of best’(옳은 표현은 best of the best)라든지 ‘doing best’(옳은 표현은 doing their best) 따위 콩글리시로 말하다 누리꾼의 놀림을 받은 적 있다. 물론 ‘글로비시’라고 해서 다소 발음과 문법이 틀리더라도 뜻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영어학자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MB 영어’를 ‘실용 영어’ 또는 ‘서바이벌 잉글리시’라고 부른다.

영어 유창했던 시라크는 일부러 모른 척

사르코지는 품격을 지켜야 할 국가원수로서 제대로 영어를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안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난 3월 말 영국 방문을 앞두고 사르코지는 몇몇 영어 인사 문장을 특별 교습받은 적이 있다. 과거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프랑스 의회에서 수려한 프랑스어로 연설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답례가 필요했다. 그 외 다른 경우에 사르코지는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

한편 사르코지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 가 영어를 쓰지 않은 이유는 모국어주의 때문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해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시라크 대통령은 2005년 조지 W. 부시와 정상회담 때 일부러 프랑스어만 썼다. 밀담을 나눌 때도 예외가 없어 저녁 식사 자리에도 통역을 배석시켰다. 그는 유엔 회의 때 프랑스어 통역 서비스가 없으면 토니 블레어 총리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했다. 2006년 3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때 유럽상공인협회 프랑스 대표인 에르네스트 안토니에 세이에르가 25개국 유럽 정상 앞에서 영어로 연설하자 시라크는 화를 내며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시라크식 모국어 순결주의는 프랑스 내에서 논란이 인다. 유럽중앙은행 의장 장 클로드 트리셰도 국제 회의에서 프랑스어를 고집한다. 하지만 지나친 자국어 옹호는 유럽연합 운영의 비효율을 낳는다는 비판도 있다. 
국가 원수의 외국어 사용을 너무 금기시하거나 너무 과대 평가하는 것 모두 진짜 실용주의와 동떨어진 것이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 외교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외국어 능력이 대통령직 수행의 필수 요건인 것처럼 추앙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난 1월10일 한 국내 신문은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과거)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만난 자리에서 동문서답했다는 얘기가 안줏거리로 회자되면서 대통령의 언어 능력의 중요성이 거론된 적도 있다. 대통령의 자신감과 대인관계는 국가적인 무형자산에 속한다” “인간관계에 필수적인 디딤돌이 대통령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글 중간에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를 닮을 것을 주문했다. 그 글을 사르코지가 봤다면 머쓱해졌을 것이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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