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 시각 4월19일 오전 워싱턴에 있는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부시 대통령.

한국 시간 4월20일 새벽 2시께. 미국 대통령 별장인 워싱턴의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질의 응답이 벌어졌다. 한·미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임기 중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느냐”라는 한국 특파원 질문에 매우 단호한 태도로 “노(No)” 한 것이다.

‘노’라고 할 때, 그의 표정이 얼마나 결연했던지 졸음을 참으며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내내, 뇌리에 깊이 각인될 지경이었다. 당연히 부시의 이 한마디는 다음 날 국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부시 대통령, 임기 중 김정일 만날 의사 없어” 대략 이런 종류의 기사가 도배를 했고 이 질문의 주인공인 조선일보 특파원 역시 같은 요지로 기사를 썼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워싱턴 전문가들은 이를, 기자들의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치부한다. 즉 부시가 ‘노’라고 한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인데 기자들이 오해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문제의 조선일보 특파원 질문은 김정일을 만날 생각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은 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날 생각이 있느냐를 물은 것이었다”라고 하면서, “부시 대통령 대답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그의 지적대로 조선일보 특파원의 질문은 “북핵 해결을 전제로 임기 내에 이명박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는가”였다. 그러니 부시의 ‘노’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나는 것’에 대한 ‘노’라는 그의 지적이 문법상이나 어법상 타당할 것 같다. 그는 이런 지적에 덧붙여, “이 얘기를 뒤집으면, (이명박과 함께가 아닌) 단독으로라면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고, 현재 북·미 관계 역시 그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은 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는 안 만나겠다고, 그렇게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을까.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한·미 관계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할 정도로 좋아졌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부시 대통령 본인이었다. 그러니, 혹시 앞으로 평양에 갈 일이 생길 경우,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그랬듯이 이 대통령 ‘손을 꼭 잡고’ 같이 가면 참으로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부시의 'NO'는 3자 회동에 대한 거부

그러나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그의 결연한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대단히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6년 11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 나와 당신과 김정일이 함께 만나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인심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그 뒤로도 선명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그 한마디로 그는 1년 내내, ‘평화협정’에 필이 꽂힌 노무현 대통령에게 시달렸다. 급기야는 1년 뒤인 2007년 9월 시드니 아펙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을 다시 만났을 때, 기자들 앞에서 노 대통령이 마치 1년 전의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을 가하듯 하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연합뉴스김정일 국방위원장.
이 사건 이후 워싱턴은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 남은 기간에 절대로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할 만큼 분개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한국의 특파원이 ‘한국 대통령과 함께 김정일을 같이 만나는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으니,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마치 어제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또다시 그런 약속을 했다가 이명박 대통령마저 노무현 대통령처럼 약속을 지키라고 달려들면 곤란할 것이므로, 더욱 단호하게 아예그 싹을 잘라버릴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 문제를 부시 개인의 경험에서 오는 반응으로만 치부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지나치게 희화화할 위험성이 있다. 2006년 하노이 회담에서 부시가 분명히 “같이 만나서 평화조약을 체결하자”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므로, 지금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동북아 정책 바뀌면서 대북 정책도 변화

노무현 정권 후반기 미국의 대북·대한반도 정책은 ‘6자 회담과 북·미 평화협정의 동시 병행’으로 요약된다. 2006년 5월 라이스 국무장관 보좌관인 필립 젤리코 미국 국무부 심의관이 작성한 〈젤리코 보고서〉에서 시작된 미국의 이 과감한 접근(브로드 콘셉트) 전략은, 그 전해 9·19 공동성명에서 싹을 틔운 북·미 평화협정과 수교, 그리고 6자 회담의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로의 발전을 축으로 하는 부시 2기 대한반도·동북아 전략을 구체화하고 정식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부터 미국의 정책은 또 한번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틀을 벗어나 준군사동맹 관계로 발전해가는 외적 환경에서, 한국의 친미 보수정권 등장이라는 내적 조건의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즉, 6자 회담을 발전시켜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로 가고자 할 때는 북·미 관계 역시 평화협정을 거쳐 수교로 나아가는 게 필요했지만,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그것을 축으로 아태 지역에 새로운 안보협의체를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는 시대로 접어들 경우, 이는 자칫하면 새로운 구상과 충돌할 수 있다. 북한과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남한에 대해서는 방위비 증액, 최신무기 구매, MD·PSI 가입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 전략 자체도 ‘평화’를 앞세우는 대신 북·미 쌍방의 실용주의적 이익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북·미 양국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존의 연락사무소 대신 외교대표부를 워싱턴과 평양에 둘 것이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외교대표부 대신 ‘이익대표부’로 이름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한국은 아태지역 안보협의체의 전위국가로 설정해가는 한편, 북한과는 쌍방의 이익을 앞세운 실리적 관계로 나아가는 ‘미국판 실용 외교’ 또는 ‘두 개의 한국 정책’이 부시의 ‘노’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