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진보 정당 또는 좌파 정당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일본식 표현은 ‘혁신 정당’이다. 일본에서 혁신 정당이라고 하면 사회민주당(사민당)·신사회당·공산당 등을 뜻한다. 혁신 정당 의석은 중의원 16석, 참의원 12석으로 전체 의석의 5%에도 못 미친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의석수가 감소해 위기감이 높다.

일본 정치가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일본 사회당은 40여 년간 제1야당의 지위를 누려왔다. 꾸준히 국회 의석 35%가량을 차지하며 자민당과 경쟁했다. 그러나 1994년 연립 여당 정권에 합류하면서 몰락을 재촉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당 총리(무라야마)를 탄생시켰지만 ‘자민당 지킴이’가 된 사회당은 정책을 크게 보수화했다. 일·미 안보체제, 자위대, 히노마루·기미가요 등을 용인한 것이다. 권력을 위해 정체성을 판 사회당은 1996년 대분열했다. 상당수 의원이 ‘리버럴 정당’인 민주당으로 옮겼고 사회당 고수파는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꿨다. 사회민주주의보다 더 왼쪽에 있던 좌파 당원은 신사회당을 만들었다. 신사회당은 현재 국회에 의석이 없지만 지방의회에 200명 가까이 의원이 있다.


1996년 민주당 탄생 때 좌파 몰락

현재 사회민주당은 유럽식 복지정당을 지향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옛 사회당을 물려받은 흔적으로는 현 민주당보다 훨씬 큰 중앙당 빌딩과 지방 조직, 그리고 정당 기관지 등이다. 민주당에 많은 의원과 실력자를 빼앗긴 사민당은 인재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유력 정치인으로는 전 사민당 대표 도이 다카코와 현 대표 후쿠시마 미즈호 정도(56~57쪽 인터뷰 기사 참조)다. 두 사람 다 여성인데, 일본 정치사에 여성 당대표는 희귀한 일이다. 자민당과 야합하지 않는 깨끗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도이는 법률학자였고, 후쿠시마도 부부가  인권변호사로 명망이 높았다. 국회에서 연설과 토론에 강하다. 인권·평화·환경·여성 단체 등 일본 NGO들이 국회를 찾을 때  먼저 사민당 사무실부터 들른다.

일본 좌파 정당의 몰락은 일본 노조의 쇠락과 궤를 같이한다. 과거 일본 사회당은 총평(일본 노동조합총평의회) 등 강력한 노조의 지지를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1996년 이후 노동조합 대다수가 민주당으로 지지를 옮겨 사민당은 고전 중이다. 거기다 자민당이 노동조직을 와해하는 각종 법안을 매년 국회에 제출해왔다. 과거 철도노조 와해 공작은 좌파 정당에 큰 타격을 줬고 지금도 일본 교원노조가 탄압을 받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빠져나간 자리에 비정규직 노조 등이 새 사민당 지지 세력으로 등장해 발언력을 키운다. 현재 사민당은 정권을 얻기보다 제3극화(양당제가 아닌)를 목표로 삼은 듯하다.

현재 사민당보다 의석이 더 많은 좌파 정당은 공산당이다. 공산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 1922년에 창당했다.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사민당과 달리 공산당은 66년 역사를 바탕으로 풀뿌리 조직에 기댄다. 당원이 40만명에 이르고 지방의회에 최대 3000명 이상 정치인을 보유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되면 자민당이나 민주당 수준으로 후보자를 내곤 한다. 기업 후원금을 부정하지만, 개인 정치헌금으로 버틴다. 국회에서 여당의 스캔들을 폭로하는 일도 많아 비리 조사 능력, 분석 능력은 언론도 높이 평가한다. 공산당의 기관지인 〈적기〉에는, 노동·복지와 관련한 특종 기사가 많다. 노동변호사 모임이나 민주 상공회 등 공산당 색깔이 짙은 조직에는 흔히 인텔리라고 불리는 인재가 많다. 

물론 공산당이라는 이름만으로 거부감을 나타내는 국민도 많다. 선거 때에는 공산당의 위험성을 알리는 괴문서가 뿌려지곤 한다.

현실적으로 공산당의 정책은 사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대중은 공산당이 자민당과 가장 반대쪽에 선 정당이라고 여긴다. ‘민주당은 자민당과 다를 바 없다’ ‘사회민주당은 사회당의 부산물이다’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색깔이 뚜렷한 공산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

10년 전만 해도 좌파 정당은 정권 탈환이라는 목표를 표방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을 가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양대 체제’를 주장하며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이긴 이후, 진보적 유권자들이 자민당의 대안으로 민주당에 몰리는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요즘 일본 국회는 선거 승리만 목표로 삼는 정치인 탓에,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각종 스캔들 공방으로 얼룩지고 있다. 비록 영향력은 적지만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책 정당으로서 사민당과 공산당의 존재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기자명 히라이 야스시 (슈칸긴요비 부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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