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지난 3월17일 이라크를 방문해 말리키 총리와 회담하는 미국 공화당 매케인 후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 대선에서 외교정책은 그다지 이슈가 되지 않는다. 유권자의 관심이 국내 이슈에 집중돼 있는 만큼 피부에 와닿지 않는 외교정책은 웬만큼 ‘섹시’하지 않는 한 꺼내봐야 별로 득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을 6개월 정도 앞둔 요즘 미국에서는 외교정책, 그 중에서도 미국의 이라크 정책이 유권자의 큰 관심을 끈다.

지난 2003년 3월 개전 이후 계속 중인 미국의 대이라크전은 지금까지의 전비 지출액이 8450억 달러에, 미국 경제에 대한 총비용은 3조~5조 달러로 추산되고, 지난달 말 현재 미군 희생자가 4000명, 부상자는 2만9395명에 이른다. 이라크 문제뿐 아니라 테러 용의자들이 구금돼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 지구 온난화 문제 등 굵직굵직한 외교 현안 등에 관해 공화, 민주 양당 대선 후보들이 나름으로 공식 견해를 밝히면서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밑그림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매케인(71) 후보는 집권 뒤 최대의 대외정책 이슈가 될 이라크전과 관련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은 미국 국민 10명 중 6명이 반대할 정도로 민심이 등을 돌린 상황이지만 매케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군의 지속적인 이라크 주둔을 찬성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하순 세계문제협회에서 행한 연설 때 “우리가 지금 이라크에서 미군을 조속히 철수함으로써 이라크 국민을 끔찍한 폭력과 인종청소, 나아가 대학살의 참극으로 몰아넣는다면 이는 배신행위요 위대한 미국에 대한 오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도덕적 책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라며 미군의 조기 철군을 반대했다. 미군이 이라크전에 개입한 이상 임무를 완전히 끝내기 전에 철수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버락 오바마(46) 후보는 이라크 문제에 관한 한 매케인과는 정반대다. 오바마는 “매케인 후보가 수천명의 인명 희생과 수천억 달러의 손실을 끼친 이라크전을 포함해 부시가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태도이다”라며 신랄히 공격했다. 오바마는 자기가 집권하면 이라크 자체보다는 중동 전체 차원에서 이라크 문제를 재검토하고, 이라크 주둔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이라크 문제 외 다른 외교 분야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차별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를 연합해서 국제 문제를 조화롭게 풀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연맹(League of Democracies)’을 조직해서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한 유엔을 뒷받침하자는 것이다. 하나의 실례로 핵개발 의혹 때문에 유엔의 제재를 받고도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이란의 경우 ‘민주주의 국가연맹’이 적극 나서 경제적 압력을 넣으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국가연맹’이 이란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하려 할 경우 이에 반대하는 러시아와 중국 같은 나라의 반발을 불러와 오히려 국제적 긴장감만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회의적이다. 

ⓒReuters=Newsis2006년 8월 케냐 나이로비를 방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와 만난 오바마 후보.
매케인의 외교정책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집권 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를 종식하고 모든 현안을 동맹국과 협의·논의해서 결정하겠다는 점이다. 한 예로 그는 정당한 법절차 없이 테러 용의자들을 구금해 국제적 논란을 빚고 있는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고 이들의 처리에 관한 국제 이해를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반대한 지구온난화 협정 문제도 미국이 솔선수범해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을 제한하기 위한 조처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매케인은 이런 담대한 외교정책 비전을 제시하면서 스스로를 ‘이상주의적인 현실주의자’로 묘사했다.

오바마 "외교 노력으로 국제 문제 해결"

25년에 걸친 오랜 하원·상원 의원을 거치며 미국의 외교·국방 정책에 해박하다는 평을 듣는 매케인 후보에 비하면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인 오바마의 ‘외교 이력’은 크게 떨어진다. 콜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그는 1997년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으로 의정 생활을 시작했고, 2004년에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했다. 시사 주간 〈타임〉은 빈약한 외교경험 문제가 심지어 라이벌인 힐러리 후보로부터도 오바마에 대한 주된 공격 소재의 하나로 등장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오바마 후보는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나름으로 기후변화 문제 및 핵통제 문제와 관련해 입법안을 제시하는 등 상당히 정력적인 활동을 해왔다는 평을 듣는다. 오바마는 지난해 여름 외교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에 ‘미국 지도력의 갱신’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 이라크전 조기 종식, 미국의 책임 있는 군사적·도덕적·외교적 지도력 회복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도전에 맞서야 하며, 무엇보다 이런 도전을 헤쳐나가는 데 국제 사회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타파하겠다는 점에서는 매케인 후보와 일맥상통한다.

오바마는 특히 핵개발 의혹을 받는 이란, 그리고 핵무기를 실험한 북한은 지역 내 무기 경쟁을 촉발시키고 중동과 동아시아에 위험한 ‘핵 인화점’을 야기하기 때문에 국제 연대를 통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위협에 직면해 ‘군사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면서도, 우선은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외교 접촉, 즉 양자대화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에 비하면 매케인의 대북관은 매우 강경하다. 그는 북한과 항구적인 외교협정을 맺기에 앞서 우선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핵물질 및 핵활동에 대한 완전한 해명 등 두 가지가 선행돼야 함을 분명히 했다. 또한 앞으로 북한과 협상을 할 때 핵문제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일본인 납치자 문제, 그리고 테러 지원과 핵확산 문제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해 집권 뒤 부시 행정부보다 더 강력한 대북정책을 추건할 것임을 강조했다.

매케인과 오바마 두 후보는 각각 나름의 외교정책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서로 심도 있는 토론회를 가져본 적은 없다. 외교 분석가들은 앞으로 토론회가 열리면 매케인은 이라크 문제가, 그리고 오바마는 이란과 북한 같은 적대국 지도자와의 직접 대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공화, 민주 양당을 막론하고 역대 미국 대통령은 아무런 조건 없이 적대국 지도자들을 만나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오바마의 직접 대화론은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있다. 그럴 경우 적대국 지도자들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자기의 국내 정치 기반을 강화하거나 합법화하는 데 악용할 소지가 크다. 매케인의 외교 고문인 랜디 슈네먼은 오바마의 직접 접촉 구상을 “순진하다”라며 깎아내린다. 그러나 오바마의 외교 고문인 앤서니 레이크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적대국 정상과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건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이다”라며 오바마의 ‘실용적’ 외교 접근을 두둔했다.

미국 유권자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 매케인과 ‘실용주의자’ 오바마 중 누구를 택할지 궁금하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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