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북·미 회담 하루 전날인 4월7일 싱가포르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힐 차관보.

‘범태평양안보협의체(PAN ASIA PACIFIC SECURITY UNION. 이하 PAPSU)’ 구성 등 이명박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미국이 준비 중인 ‘한·미 동맹 6단계 로드맵’ 관련 기사(〈시사IN〉 30호)는 워싱턴과 서울-베이징과 평양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기사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한 4월7일 오후부터 베이징 외교가는 관련 전문가를 대상으로 내용 확인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평양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서울 외교가는 의외로 침묵에 빠져 있으나, 이명박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청와대 측이 미국 측에 이 문제와 관련해 모종의 어필을 하는 등 비중 있게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특히 지난 4월8일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핵 신고를 둘러싼 담판을 마치고 베이징에 들른 힐 차관보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한 행동을 한 이면에, 이 기사와 관련한 청와대 측의 불만 표시 및 대통령 방미를 앞둔 상황에서 북·미 관계 속도를 조절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얘기가 워싱턴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힐 차관보의 모순된 행동: 힐 차관보가 4월9일 베이징에 도착한 이후 보인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전날인 4월8일 싱가포르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북핵 신고와 테러지원국 해제 등 북·미 간 쟁점을 둘러싸고 막판 협상을 시도했다. 그리고 협상 결과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그가 워싱턴으로 곧바로 복귀하지 않고 굳이 베이징을 들러 중국과 한국 일본 등에 회담 결과를 설명한 점, 그리고 북한 측 반응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힐 차관보 본인도 4월9일 베이징 미국 대사관 기자회견에서 “북한과의 양자 회동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다음 날인 4월10일 워싱턴으로 향하면서 기자들에게 “함께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요소가 아직 다 정리되지는 못했다고 강조하고 싶다. 아직 우리 앞에 많은 일을 남겨두고 있다. 어떤 중요한 돌파구가 있었다고 추정하지 말기를 바란다”라고 말해, 앞의 얘기를 부인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그러나 회담의 또 다른 당사자인 북한은 4월10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을 빌려 “10·3 합의 이행을 완결하는 데서 미국의 정치적 보상 조처와 핵 신고 문제에서 견해 일치가 이룩됐다”라고 밝힌 데 이어, 조만간 핵계획 신고서를 중국 측에 건네는 등 후속 조처에 착수할 것이란 뜻을 내비쳤다. 똑같은 회담을 둘러싸고 회담 당사국들이 상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 정부 불만이 원인? :싱가포르 회담 이후 힐 차관보의 말 바꾸기, 그리고 회담 결과에 대한 북한과 미국 간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워싱턴 내막에 정통한 정보 소식통은 “서울(청와대)에서 〈시사IN〉 기사와 관련해 (백악관에) 불만(complain)을 토로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즉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전에 워싱턴 소스로 한·미 관계 로드맵이 나간 것에 대해, 청와대 측이 불만을 토로한 것이 힐 차관보의 행보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기사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이번 싱가포르 북·미 합의에 대해서도 서울 측이 매우 강하게 어필했고, 이 점 역시 힐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 국무부가 한발 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 영향을 끼쳤음을 숨기지 않았다. 즉, 북한과 미국이 이명박 대통령 방미 전에 너무 나가버리면 “서울이 할 일이 없어진다면서, 이명박 대통령 방미 전까지 유보해달라고 (서울 측에서) 요청했다”라고 전했다.

ⓒAFP4월8일 힐 차관보와 회담이 끝난 후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그러면서 그는 “싱가포르 합의는 워싱턴에서도 말이 많고 서울에서도 요구가 있어 한·미 간 협의가 끝날 때까지 연기(hold game)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미 간에는 북한이 핵 신고 대가로 요구한 사항을 미국이 받아주기로 하는 등 이미 ‘내부적으로 (얘기가)끝난 상태’라고 덧붙였다.

북·미 관계에 정통한 또 다른 소식통에게서 확인한 결과 역시 워싱턴 측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북한과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 신고 문제뿐 아니라 △테러지원국 해제 △라이스 방북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향후 북·미 채널 유지 방안에 대한 문제 까지 합의를 이뤘다는 것이다. 다만, 워싱턴 소식통이 전한 한국의 불만 등을 감안해 합의 내용의 대외적인 표출이나 후속 조처를 4월15~19일 이명박 대통령 방미 이후로 미뤄놓은 것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PAPSU 가입에 촉각 곤두세우는 베이징·평양: 베이징과 평양에서도 한·미 동맹 6단계 로드맵을 매우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베이징 정보 소식통은 “중국 측이 〈시사IN〉 기사 내용을 매우 충격적으로 본다”라면서 “단계별 내용 하나하나에 대한 검토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한국이 범태평양안보협의체(PAPSU)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중국은 대단히 심각하게 여긴다. 서울이 PAPSU에 가입하는 순간 커다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중국 전문가 역시 “중국이 통상 분야 등에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베이징 채널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평양 역시 서울이 PAPSU에 가입하는 것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본다. 이 밖에도 낮은 단계의 MD(미사일방어) 가입 △첨단무기 구입 등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한다.

한편,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한·미 동맹 6단계 로드맵’과 관련해 “미국이 아직 우리에게 100% 다 오픈한 상태는 아니고, 또 이번에 다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현재 정상 간에 다뤄야 할 문제와 실무 레벨에서 협의할 문제를 나누는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가 미국에 불만을 토로했고, 싱가포르 합의 이행을 미뤄달라고 했다는 워싱턴발 정보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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