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서래마을 프랑스 학교 앞은 일년 내내 아이 마중 나온 학부모로 붐빈다(위). 보호자가 오지 않으면 학생을 교문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4월3일 오후 4시, 흔히 서래마을이라 불리는 서울 반포동 98번지 프랑스 학교 정문 앞에 푸른 눈의 프랑스 어머니 30여 명이 자녀를 데려가기 위해 몰려와 있었다. 남자 학부모도 간혹 보였다. 대부분 300m가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사는데도 아이 혼자 집에 가는 일은 없다. 교칙에 반드시 보호자와 동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교 관계자는 “저학년의 경우 보호자가 오지 않으면 학생을 아예 학교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치안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냐는 질문에는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 안에서도 거의 모든 학교가 이런 교칙을 가지고 있다”라고 답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큰 가방을 메고 혼자 학교를 오가는 풍경이 일반적이다. 부모가 학교까지 마중 나오면 오히려 ‘마마 보이’라고 놀림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학생 혼자 거리를 걷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에서 보호자 동반을 강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가 시간이 안 되면 보호자가 위임한 도우미(가디언)가 대신 학생을 데려가야 한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유학생 김지현씨(29)는 “남자 지도교수가 애 데리러 가야 한다며 오후 4시에 바삐 나서는 모습을 봤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이들 등하굣길을 돌봐주는 가디언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많다”라고 말했다.

프랑스만 유별나게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 등하굣길 챙기기는 유럽과 미국에서 일반화된 문화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런던 교외 윔블던에서 살고 있는 교민 류나마씨(36)는 한국과 너무 다른 영국 교육 문화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다. 일곱 살 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류씨는 한의원을 운영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매일 아침 9시10분에 아이를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오후 3시15분에 마중 나가는 일과를 지킨다. 교실 안까지 직접 들어가 담임 얼굴을 보고 인사한 뒤 아이를 들여보내고 돌아온다. 류씨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5~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예외가 없다. 류씨는 “일이 너무 밀려 도저히 마중 나갈 수 없을 때는, 학교에 전화를 하고 가디언을 보낸다. 전화 통보 없이 가디언만 가면 학교에서 애를 넘겨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보호자 동반 규정은 열 살까지 적용되는데 주변을 보면 열 살 이후에도 계속 등하굣길 동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 제도가 비용이나 시간면에서 부담을 주지만 류씨는 그래도 “매일 교사 얼굴을 보는 것이 마음 편해서 좋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아이 ‘픽업’은 계속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혼자 등교하면 담임이 집으로 전화

교민 류씨는 이런 ‘픽업’ 강제 규정이 영국 법률에 따른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영국 법에 등하굣길 보호자 동반이 명시되어 있는 건 아니다. 런던 스톤킹 법률사무소의 마이클 브러더턴  변호사는 “아동법에 등하교에 관한 조항은 없다. 하지만 만약 아이가 혼자 길을 걷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부모가 책임 추궁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학교가 자녀 동반 등하교를 의무화하기 때문에 이것이 법제화됐다고 아는 시민이 많은 것이다.

 

 

3월26일 발생한 일산 납치 미수 사건 피해자는 하굣길 초등생이었다.

몇 살부터 ‘홀로 등교’가 가능한지, 집까지 거리가 얼마나 가까우면 가능한지 그 기준은 지역마다 다르다.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 이런 원칙에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다. 지난해 6월 BBC는 ‘나홀로 등교’를 시도했다 실패한 학부모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 서머셋에 사는 학부모 케런 타운센트는 웨스턴슈퍼메어 초등학교에 아이를 혼자 등교시켰다. 그랬더니 이내 담임 교사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어머니, 이렇게 혼자서 애를 학교로 보내시면 안 됩니다. 만약 어머니가 같이 올 수 없으면, 택시에 태워서 보내세요.” 케런 타운센트는 “아들은 혼자서 학교에 가기를 원한다”라며 몇 차례 항의했지만 담임과 교장은 완강하게 원칙을 고수했다.

2005년 이래 매년 영국에서는 ‘jam-busting June’(6월 한 달 버스 안 타기)이라고 해서  아이 등하교 때 스쿨버스와 자동차를 태우지 말고 일부러 거리를 걷게 하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적당한 거리는 걷는 것이 자녀 건강에도 좋고, 이웃과 자연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운동 확산과 함께 아이 혼자 학교에 가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고 있어 학교와 마찰을 빚는다.

대개 유럽과 미국에서는 꼭 등하굣길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장시간 혼자 내버려두는 것 자체를 ‘아동 방임’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영국 내무성 홈페이지에는 각 지방정부·의회·경찰에 만 10세 미만 아이의 (나홀로) 통행금지를 실시할 권한을 준다고 되어 있다.

아이의 자립심을 강조하는 동양권에서는 물론 사정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개 아이 혼자 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아동 납치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일본 문부과학성은 저학년 학생이 하교할 때 반드시 그룹으로 함께 이동하고, 고학년 선배가 마지막까지 따라가도록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 중 10%는 방과 후 혼자 집에 방치된다. 나머지 90% 학생 중 대다수는 학원에 다니는데 이때도 보호자 없이 거리를 오간다. 하지만 프랑스나 영국처럼 반강제로 부모에게 등하교 동반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부모들은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한국·일본은 ‘나홀로 등교’가 일반적이다. 일본 정부는 집단 하교를 권장한다.


2007년 기혼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49.9%로 꾸준히 증가 추세이다. 두 집 중 한 곳은 맞벌이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퇴근 시간이 늦어 2007년 조사(잡코리아)에서 직장인 평균 퇴근시간은 7시였다. 업무 도중 ‘애 데리러 퇴근해야 한다’는 이유가 통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다.

혜진·예슬 납치 살해 사건과 일산 어린이 납치 미수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딸 가진 학부모 마음이 뒤숭숭하다. 위치 추적 장치 판매가 호황을 이룰 정도다. 하지만 근본 대책은 우리 부모들에게 자녀를 돌볼 시간과 여유를 주는 일이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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