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10년간 힘겹게 이루어 놓은 남북 화해와 협력, 평화 기조에 이상 징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클린턴의 8년 평화 이후 부시 정권의 8년 전쟁과 같은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려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 들어 평소 국어 실력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저 말을 저런 상황에서 써도 되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실용’이라는 말이 문제다. 이 정부에서 이 말은 마치 무슨 마스터 키 같다. 안 쓰이는 데가 없다. 정치도 실용, 경제도 실용, 외교도 실용, 대북 관계는 창조적 실용. 현장 상황이 다르고 대처 방법도 다를 터인데, 무조건 실용이라는 말로 복색을 통일해놨으니, 정작 뭐가 실용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동안 ‘숙달된 조교처럼’ 보여준 시범 사례를 통해 생각해본다. 이제는 전설이 되다시피 한 당선자 시절의 전봇대 스토리. 그리고 유괴범 체포에 늑장을 부린 경찰에 분격한 나머지, 직접 일산까지 ‘납시어’ 결국 6시간 만에 범인을 체포하게 만든 최근의 활약상. ‘실용=실제로 씀. 실질적인 쓸모. 실용적=실제로 쓰기에 알맞은’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매우 근접해 보이지 않는가.

대북 정책에선 사라진 ‘실용’

물론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여기에도 시비는 붙는다. 대통령이 무슨 6급 행정주사냐? 전봇대나 뽑고 다니게. 혹은 직접 일선 경찰을 ‘족치고’ 다니면 경찰청장을 비롯해 경찰의 그 꽉 짜인 지휘체계는 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볼멘소리가 안 나올 수 없다. 그렇다 해도 대통령이 직접 몸으로 뛰며 ‘이것이 바로 실용이여’라고 시범을 보이는 거야말로 ‘실용적 리더십’의 극치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금세 헷갈린다. 최근 들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터지고 말았지만, 북한이 보이는 이 정부에 대한 분노는 갑작스럽게 형성된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20일 대통령 당선 축하 기자회견에서 시작해 자문교수단이 쏟아낸 말들, 그리고 인수위를 거쳐 최근까지 계속된 대통령과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의 거의 ‘언어 폭력’에 가까운 대북 관계 발언 어디에서도 전봇대를 뽑아버리고 유괴범 체포에 앞장섰던 실용 정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첫째, 실용이라는 말에 대한 필자의 이해가 잘못됐다(그렇다면 사전도 잘못된 건가?). 둘째,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당국자의 그동안 발언이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정책 기조나 정신에서 벗어났다. 셋째, 처음부터 지향하는 목표가 달랐다. 즉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정책 목표와 다르고, 그런 견지에서 보면 여전히 실용적이다.

ⓒ연합뉴스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 수사가 부실했다며 강하게 질책한 뒤 일산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크게 세 가지일 터인데, 첫째나 둘째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누천년간 대대로 사용해온 건데 갑자기 뜻이 변할 리도 없고, 최소한 초등학교만 나왔더라도 그 뜻을 헷갈릴 리 없다. 그리고, 그동안 각개약진 식으로 터져 나온 발언을 곰곰이 따져보면 나름의 일관성과 체계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세 번째 가능성으로 점점 생각이 모아진다.

지난 10년의 남북 관계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미진한 점은 있었지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라는 기조가 정착했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 합의 정도는 이미 형성됐다고 생각해왔다. 아무리 친미 보수정권이라 해도 경제 살리기를 표방한 마당에 안보를 뒤흔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 믿음이 요즘 들어 크게 흔들린다. 아무래도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시절을 생각해보니, 클린턴 정권 8년의 평화 이후에, 냉전의 전사가 부활해 세계를 온통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런 세월을 막 통과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땅이라고 해서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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