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점차 미국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자 아·태지역 안보협의체를 만들려고 한다. 위는 2005년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군사훈련 모습.

〈시사IN〉이 ‘범태평양안보협의체’에 주목한 것은 지난 2월25일 후쿠다 일본 총리 방한 때부터였다. 당시 〈시사IN〉과 접촉한 서울의 한 서방 측 전문 가는 “이명박 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한·미·일 3자간 공조체제가 복원되면, 그 다음에는 호주나 뉴질랜드, 그리고 타이완까지 포함하는 지역안보협의체로 확대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안보협의체의 영문 이름까지 만들었고, 대통령직 인수위에도 전달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전문가는 그러나 끝내 이름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이후 주로 서울과 워싱턴의 다양한 취재원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3월 하순께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워싱턴 내 안보협의체와 관련한 두 개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PAN ASIA PACIFIC SECURITY TREATY(범아·태안 보조약, 또는 범태평양 안보조약)’였고, 또 하나는 ‘PAN ASIA PACIFIC SECURITY UNION(범태평양 안보협의체, 또는 범아·태 안보협의체)이었다. 즉 앞부분은 똑같고, 뒷부분을 ‘조약(TREATY)’이라고 할 건지, ‘협의체(UNION)’로 할 건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조약으로 할 경우는 나라 간 구속력이 매우 강하다. 반면 협의체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에 비교적 부담 없이 가입할 수 있다. 3월 하순께까지도 워싱턴에서 두 개의 이름이 떠돌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조직이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져 가는 단계에 있음을 뜻한다. 특히 미국은 안보협의체 결성 초기부터 ‘아·태 지역 친미 국가들에 의한 반중 포위전선’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고심하는 것 같다. 3월 하순을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협의체’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도 바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미국이 새로운 지역안보 협의체를 구상하고 실천에 옮기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어느 단계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과 이해가 상충하는 것을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미국은 그동안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이를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6자회담이 진행되고 중·러 양국이 점차 미국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런 방식으로는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10월 한국 대선에서 친미 보수 성향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하자 한·미·일 3각 안보체제의 복원을 통한 새로운 지역협의체 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한·미·일 3각 공조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지역협의체를 결성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이명박 정부 등장으로 이런 구상이 가능해졌다.

특히 지난해 12월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 핫라인을 개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준군사 동맹화 가능성이 떠오르자, 미국 내에서도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친미 국가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중·러의 군사 핫라인 개설이 연기되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 듯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14일 오후 4시 중국과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군사 핫라인을 개통하면서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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