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nhua2007년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왼쪽 사진 가운데)과 함께한 타이완의 롄진 전 국민당 주석(사진 오른쪽). 롄진 전 주석이 후진타오와 회담할 때 마잉주 총통 당선자가 수행하곤 했다.
민주진보당은 당 강령인 타이완 독립을 국책으로 내세워 지난 8년 집권 기간 끈질기게 중국을 자극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후보가 타이완 총통 선거에 승리해 민주진보당 집권 연장을 막았다는 소식은 중국 지도부를 안심시키고 있다. 신화(新華)통신을 비롯한 유력 신문과 방송이 하나같이 “민주진보당의 패배는 그들이 추진해온 타이완 독립이 민심을 얻지 못한 결과다”라는 요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물론 중국 정부 당국은 타이완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만큼 타이완 ‘정권’ 혹은 ‘정부’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며,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공식 의견 발표도 삼가고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국익에 유익한 결과라고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베이징 주재 서방 외교관 사이에서는 후진타오 국가주석 겸 총서기가 선거 결과에 고무돼 타이완 문제 주무 부서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고위급 책임자를 불러 마잉주의 당선을 함께 축하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이 마잉주의 국민당 주석 당선을 축하한다는 축전을 보낸 사실을 기억하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마잉주 당선자는 중국의 판다를 선물하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거 민주진보당 정부는 2005년 중국의 판다 선물을 정치색이 짙다며 거절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국민당은 한때 중국 공산당과 오랜 내전을 벌인 숙적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중국, 하나의 타이완’을 주창하는 민주진보당보다는 중국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국’만을 인정하는 국민당 쪽이 소통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중국 공산당은 과거 내전 와중에도 두 차례에 걸쳐 국민당과 이른바 ‘국공 합작’을 벌인 바 있다.
 
마잉주 당선자 개인에 대한 중국의 호감도 나름의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최근 마잉주 당선자는 친중국 발언을 쏟아냈다. 이를테면 총통 당선 직후인 3월24일 “재임 중 타이완 독립이라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겠다”라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이 발언은 중국이 타이완 지도자에게 그토록 기대했던 말이었는데, 마잉주 당선자가 중국이 요구하기도 전에 먼저 선물을 준 것이다.

ⓒReuters=Newsis2001년 마잉주 당선자(오른쪽)가 타이베이 시장이던 시절 중국 상하이 부시장을 만나는 모습.
마잉주 당선자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후진타오 주석 겸 총서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5년 4월 국민당 부주석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의기투합한 후 서로 축전까지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했다. 마잉주 당선자는 후진타오 주석 겸 총서기가 2007년 10월의 공산당 제17기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에 재선출될 때 축전을 보낸 바 있다. 일부에서는 관례라며 그 의미를 낮춰보기도 했지만, 과거에 타이완 정당 간부가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축전을 상호 교환한 전례는 없었다.

중국·타이완의 평화협상 재개될 듯

중국의 분위기로 볼 때 향후 양안(중국과 타이완) 관계의 전망은 지난 8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다. 우선 금세기 들어 거의 중단됐던 양안 교류 및 협력을 위한 평화협상이 어떤 형태로든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마 당선자 역시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해 적극 언급한 바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볼 경우 1992년 양안의 해빙 무드를 주도했던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타이완의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 간의 접촉이 활발해지리라 전망된다. 중국은 민주진보당 정부가 들어선 2000년 이후 타이완과의 협상을 거의 포기한 채 해협회 회장까지 공석으로 남겨뒀으나 조만간 체제를 정비해 상황 변화에 대응할 개연성이 높다. 이후 경제 교류는 봇물 터지듯 활발해질 것이다.

마잉주 당선자는 선거 공약으로 직항·교역·서신 왕래, 이른바 3통의 실현을 강조했다. 중국 처지에서도 3통의 실현으로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가 강화되면 타이완 경제가 중국 경제권에 자연스럽게 편입돼 통일의 물질적 토대를 쌓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만큼 반대할 까닭이 전혀 없다. 타이완 경제학자 중에는 지나치게 타이완 시장을 개방하면 타이완 경제가 중국 경제에 흡수되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염려하기도 했지만, 마잉주 당선자는 일단 중국-타이완 시장 통합에 무게를 둘 듯하다.

ⓒEPA마잉주 당선자는 민주진보당 정부가 거절했던 중국의 선물 판다(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양안 관계의 낙관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리둔추(李敦球), 런민 대학의 팡창핑(方長平) 같은 학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중국 본토와 타이완이 정치 체제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에, 한동안 양국이 정치 시스템의 공통점을 발전시키지 않는 한 양안 관계에는 크게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당선 직후 마잉주 당선자의 양안 정치 관계에 대한 발언을 보면 이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지는 않다. 마잉주 당선자는 “양안 관계의 원칙으로 통일과 독립도 하지 않고 무력도 동원하지 않는 3불(不) 정책을 선언하겠다. 통일 문제는 50년, 100년 뒤의 후손에게 맡기자”라는 요지의 말로 당장의 통일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이 없음을 은근하게 밝혔다. 복잡한 문제는 다음 세대로 미루자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잉주 당선자는 “가능하면 중국 정부와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싶다”라는 말을 통해 타이완이 정치적 독자성을 보유하기를 바라는 타이완 시민의 심리를 일부 반영하기도 했다. 타이완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시각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중국은 마잉주 당선자가 5월20일 취임식 이전에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공언한 것 역시 다소 기분이 좋지 않은 대목이다. 마잉주 당선자는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양안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이완과 미국의 협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으나 중국은 그의 속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진보당이 집권한 8년 동안 타이완은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선거 제도를 발전시키며 중국과는 다른 사회 체제로 전진했다. 마잉주 당선자가 중국이 꿈꾸는 ‘타이완 흡수 병합’ 계획을 도와줄 수는 없다. 마잉주 당선자는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의 시간을 연장할 뿐이다.

기자명 베이징·홍순도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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