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마잉주 당선자(오른쪽 흰 모자 쓴 사람)는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타이완 정치사는 최근 한국을 빼닮아가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3년 뒤인 1990년 타이완 학생들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첫 정권교체를 이룬 지 2년 뒤 2000년 타이완 민주진보당 천수이볜(陳水扁)은 오랜 국민당 일당 독재를 끝내고 총통에 올랐다. 옛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 승리한 석 달 뒤인 지난 3월22일 타이완 대선에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후보가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3년→2년→3개월로 타이완이 한국을 닮아가는 주기가 짧아졌다.

특히 이번 타이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한국 대선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마잉주가 승리한 원인은 ‘타이완의 노무현’ 천수이볜에게 실망한 유권자의 복고 성향이 작용했다. 마잉주가 이명박의 747 공약을 본뜬 633플랜(성장률 6%,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실업률 3%)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사실을 통해 잘 알려졌다.

재미있는 현상은 마잉주의 당선 이후 행보도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마잉주 당선자가 취임을 전후해 돌파해야 할 ‘3대 난제’는 이명박의 상황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첫 번째는 자신의 주요 공약이었던 ‘i-타이완 12프로젝트’를 방어하는 일이다. 타이완 대선 다음 날부터 타이완 환경단체들은 ‘i-타이완 12프로젝트’의 전면 재검토를 주문하고 나섰다. ‘i-타이완 12프로젝트’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사를 본뜬 대규모 토목 사업이다. 마잉주는 전국에 걸쳐 고속도로를 닦고 공항을 확장하고 연안을 개발하는 ‘i-타이완 12프로젝트’를 통해 타이완 교통·물류 체계를 개선하고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반도 대운하와 목적부터가 똑같다.

찬반이 갈리는 것도 한반도 대운하와 마찬가지다. 타이완 행정원환경보호국(EPA)의 전 조사위원 리켄쳉(李根政)은 3월23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i-타이완 12프로젝트 지지자들은 경제 부흥을 가져다줄 거라고 선전하지만, 사람들은 이게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타이완 환경보호연합(TEPU) 창립 회장인 시신민(施信民)도 〈타이베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i-타이완 12프로젝트가 국민당의 오랜 ‘친경제 반환경’ 악몽을 부활시켰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서울시장 출신의 이명박 ‘후보’(위)는 타이베이 시장 출신인 마잉주 ‘후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다.


경부운하 닮은 토목공사 벌일 계획

i-타이완 12프로젝트가 진행되면 타이완 삼림 600㎢가 없어진다. 이는 서울시 전체 면적에 해당한 넓이다. 시신민 회장은 “환경단체는 숲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잉주 당선자는 i-타이완 12프로젝트의 부수 효과로 ‘교통이 좋아져 관광객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대운하 사업 목적을 관광으로 바꾼 이명박 대통령 측과 똑같은 논리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명승지 알리(阿理)산이 일월담(日月潭) 등을 난개발해 모텔과 빌딩을 지으려 한다며 개발업자에게 국립공원을 넘기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마잉주 당선자는 최근 한나라당의 행보를 보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이명박 당선 직후 한나라당은 대운하 드라이브를 걸며 총선 바람을 잡으려다 요즘은 대운하 이야기를 쏙 감춰버렸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운하 건설 반대 여론이 6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마잉주 당선자가 넘어야 할 두 번째 난제는 검찰 수사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 특검 수사를 받았던 점과 비슷하다. 3월25일 타이베이 지방검찰은 “마잉주에 대한 조사는 당선 이후에도 계속된다”라고 밝혔다. 지난 대선 기간 국민당과 민진당 후보 모두에게 검찰 수사는 아킬레스 건이었다. 민진당 셰창팅 후보는 가오슝 시장 시절 대중교통시스템 개선 사업 비리, 가오슝 은행 이사회 선출 비리, 가오슝 스타디움 공사 비리 따위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당 마잉주 후보는 타이베이 시장 시절 차이나텔레비전, 센트럴모션픽처, 차이나 타임스 등 93억 타이완 달러(약 3000억원)에 달하는 계약 비리 혐의를 받았다. 거기에 국민당 주석 시절 43억 타이완 달러(약 1400억원)대 매각 거래와 관련한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은 양 진영 후보를 동시에 수사하면서 정치적 형평성을 맞추려는 듯했다.

검찰이 요란을 떨다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는 모습도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과 비슷하다. 5월20일 이후에는 대통령 면책특권이 시작돼 기소할 수 없는데 수사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검찰은 2007년 2월 마잉주를 시장 판공비 유용 건으로 기소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고 대법원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대법원 판결이 5월20일 취임 전에 있을 것이고, 무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로 마잉주가 돌파해야 할 과제는 국민당 내부 권력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명박 측 한나라당 내 박근혜계 인사를 공천 과정에서 정리한 사례와 비슷하다. 현재 마잉주는 국민당 내부 장악력에서 국민당 주석 우보슝(吳伯雄)에게 뒤진다. 우 주석은 1월 총선과 3월 대선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마잉주는 과거 이등휘 총통이나 장국경 총통처럼 정-당 일치의 강력한 지도자가 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보슝 주석을 넘어야 한다. 대선 승리 일등공신인 그를 버릴 수도, 지킬 수도 없는 것이 그의 딜레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3대 난제 중 둘째 고비(특검)는 넘겼지만 첫째(대운하 사업 강행 여부), 셋째(박근혜계 정리) 난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마잉주 처지에서 보면 열심히 연구 사례를 제공해주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마잉주의 ‘이명박 연구’는 당선 이후에도 계속된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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