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결국 숨을 거두었다. 암이라는 게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베네수엘라 안팎의 수많은 정적들도 도저히 꺾을 수 없었던 58세의 정력적인 정치가를 암이 무자비하게 쓰러뜨려버렸다.

차베스의 죽음이 알려지자 세계의 주요 언론은 지난 14년 동안 차베스가 걸어온 정치적 삶과 그 의의를 추도사·해설·논평을 통해 부산하게 조명하고 있다.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확연히 갈라지지만, 그럼에도 왜소한 기술관료 정치가 압도하고 있는 오늘의 일반적 세계 정치 무대에서 예외적인 거인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개의 언론이 공감한다. 한국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건방진 말일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국내 언론의 기사는 대체로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라틴아메리카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외신을 근거로 기사를 급조한 탓일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이 의존하는 게 대개는 세계의 주류 미디어가 제공하는 자료라는 점이다. 이런 사정은 진보 매체라고 해서 별로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그 결과 다소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언론들의 논지는 거의 한결같다. 즉, 차베스는 오랜 세월 계속돼온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과두지배 체제를 깨고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공로는 크지만, 14년 동안 정치적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언론자유를 봉쇄해온 독재자였다는 것이다.

물론 차베스의 통치에 독재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가로서의 차베스의 공죄를 가린답시고 이런 식으로 요약해버리면, 그가 추구한 ‘볼리바르 혁명’의 진실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이런 요약으로는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다. 즉, 차베스가 마치 박정희와 닮은 존재가 아니냐는 오해 말이다.

하지만 ‘독재’라고 해도 차베스의 독재는 박정희의 그것과는 전혀 질이 다른 것이었다. 박정희는 대기업 중심의 철저히 물량적 경제발전에 집중하며 국민 개개인의 인격과 자존심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이에 비해 차베스의 관심은 철두철미 가난한 사람, 소외된 원주민,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의 회복에 있었다.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오랜 세월 민중의 노예화를 강요해온 수탈체제와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 투쟁은 국내외의 막강한 기득권 세력과의 격렬한 대립을 불가피하게 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권력욕 때문이라면 차베스가 미국 정부를 비롯한 국내외의 자본가·투자자·언론·대학 등 막강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가열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근원적 욕구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밥만 먹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른바 엘리트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착각이다. 민중에게는 밥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각기 인격적인 존재로서 자기 인생의 주체로 살고자 하는 깊은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차베스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공동체 평의회 통해 민주주의 체험한 베네수엘라 사람들

그 단적인 증거가 ‘공동체 평의회(communal councils)’라는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 시스템이다. 차베스 집권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확대된 이 시스템은 기존 지역행정기관이라는 관료 시스템과는 별도로, 도시에서는 200~400세대, 농촌에서는 20세대 정도를 1개 단위로 주민들이 모여 자기 동네와 관련된 문제들을 자유롭게 토의·결정하며, 필요하면 정부에 예산지원을 요청하는 직접민주주의 형태의 풀뿌리 의회이다.

이 ‘평의회’에서는 학식·재산·연령·성별에 관계없이 15세 이상의 모든 주민이 평등한 발언권을 행사한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특기할 대목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지금 베네수엘라에는 그동안 정치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난생처음 자기인생의 주인이 된 기분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차베스는 자신의 목표가 ‘21세기적 사회주의’ 건설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평의회’를 염두에 둔다면, 차베스가 겨냥한 ‘사회주의’란 결국 민중의 자기통치, 즉 래디컬 데모크라시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차베스를 통해서 모처럼 ‘민주주의’를 체험한 민중을 다시 노예시절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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