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5일 저녁 6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 영화 〈26년〉의 또 다른 주인공 ‘그 사람’이 5공화국 인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전두환·이순자씨 내외는 영화처럼 경호원의 호위를 받았다. 이날 두 사람은 장남 재국씨의 큰딸 전수현씨(27) 결혼식에 참석했다. 억대 호화 결혼식이라는 시선은 의식하지 않았다.

손녀 수현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전두환 일가의 ‘화수분 재테크’ 때마다 거론되었다. 수현씨는 1997년 열두 살 때 그녀 명의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재 330여㎡(100평) 부동산을 소유했다. 열일곱 살에는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대지 약 383㎡(116평)의 대중음식점을 최 아무개씨와 공동으로 매입했다. 2004년 재국씨가 경기도 연천군에 허브빌리지를 짓기 위해 처음 땅을 살 때도 그녀가 명의자였다. 수현씨는 현재 시공사(출판사) 주식 12.35%를 보유한 3대 주주다.
 

트라우마가 전이된 5·18 2세와 달리 전두환씨 2세들은 준재벌급으로 부를 늘렸다. 전두환씨는 재국·효선·재용·재만 씨 등 3남 1녀를 두었다. 시공사 회장 재국씨를 비롯해 이들이 보유한 국내외 재산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전두환씨나 그의 2세들의 재산 증식 과정에는 특징이 있다. 아리송한 종잣돈, 그들끼리 내부 거래를 통한 증식, 세금 회피가 그것이다.

첫째, 종잣돈 출처가 불분명하다. 재국씨는 1990년 시공사를 창업했다. 초기부터 계열사를 늘려가며 문어발 확장을 했다. 초기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등 베스트셀러 덕이라고 재국씨는 항변했지만, 검찰은 사업 확장의 ‘실탄’이 비자금이 아니겠느냐고 의심했다. 1995년, 2004년 등 전두환 비자금 수사 때에도 시공사에 대해 혐의를 두었지만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뒷심이 발판이 된 것은 사실이다. 현재 ㈜시공사가 들어선 터도 전두환씨가 1988년 5공 청산 성명을 내면서 국가에 반환하기로 약속한 곳이다. 백담사에서 돌아온 뒤 1991년 전씨는 그 땅을 장남 재국씨와 차남 재용씨에게 공동 증여했다.

비엘에셋 대표를 맡은 차남 재용씨는 종잣돈의 꼬리가 밟혔다. 2004년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국민주택채권 119억원어치에 대한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60억원을 선고받았다. 재용씨는 결혼 축의금을 외할아버지(이규동씨)에게 맡겨 불린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노숙자 이름을 빌려 차명 계좌를 개설하고 무기명 채권을 반복 구입하는 방식으로 돈을 세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전두환 일가는 돈세탁 전문가”

3남 재만씨는 현재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지하 4층, 지상 8층짜리 빌딩을 갖고 있다. 2002년에 샀다. 그는 1995년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 큰딸 윤혜씨와 결혼했다. 이 회장은 이때 결혼 축하금이라며 재만씨에게 160억원어치 채권을 건넸다. 검찰은 이 가운데 비자금이 섞인 것으로 보고 이를 압류 조치했다. 하지만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았다”라고 우기는 이 회장의 주장을 반박할 증거를 찾지 못해 다시 돌려주었다. 국세청은 이 회장에게 증여세 53억9000만원을 과세했다. 재만씨가 보유한 빌딩 역시 이 회장이 상속 과정에서 마련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재만씨는 이 회장과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세운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 ‘다나 에스테이트’를 운영한다.
 


초기 종잣돈에 대한 출처 수사가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전두환 2세들의 재산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려워졌다. 검찰 관계자는 “(전두환 일가는) 돈 세탁 전문가들인 데다, 오래 지나서 사실상 수사가 진척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전두환 2세들의 화수분 재테크 두 번째 특징은 그들끼리의 내부 거래다. 지난 5월 KBS 〈시사기획 창〉은 재용씨와 전두환씨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처남 이창석씨의 수상한 땅 거래를 보도했다.

이창석씨가 2006년 12월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의 야산 95만㎡를 팔았는데, 과정이 이상했다. 땅의 절반은 건설업자에게 500억원에 팔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조카인 전재용씨에게 28억원에 팔았다. 1년 뒤 재용씨는 이 땅을 400억원에 다시 팔아 15배 이득을 취한 것이다.

이창석씨와 전두환씨의 맏딸 효선씨의 내부 거래도 최근 들통이 났다.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과 이혼한 효선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208㎡(63평형) 빌라에 산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10년 12월 7억4000만원에 샀다. 그런데 효선씨에게 집을 판 이 아무개씨(32)는 이 집을 2007년 7억4000만원에 샀다. 그러니까 집주인이 효선씨에게 집을 팔면서 한 푼도 올려 받지 않고 그대로 판 것이다. 취득세나 등록세 등을 감안하면 손해보고 판 것이다. 바로 전 주인 이 아무개씨는 이창석씨의 아들로 알려졌다. 효선씨는 최근 〈한겨레21〉 보도로 이순자씨 소유라는 의혹을 받았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임야 2만6876㎡를 2006년 이창석씨에게 증여받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전두환씨 2세들의 재산 증식 과정에서 드러난 또 다른 특징은 세금 회피다. 현재 추징금 1672억원을 내지 않고 있는 전두환씨는 지방세도 체납 중이다. 전씨는 2003년 12월 대지 818.9㎡에 연면적 438.8㎡인 연희동 사저 별채 소유권을 이창석씨에게 이전하면서 지방세 3017만6620원을 부과 받았다. 추징금 징수를 위해 경매에 부쳐진 별채를 이창석씨가 낙찰받았고, 그 과정에서 부과된 세금이다. 하지만 전씨는 아직까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가산금이 붙어 현재 체납액은 3868만6220원이다. 서울시가 2012년에도 독촉장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묵묵부답이다.

추징금 시효 올해 10월까지 연장

부전자전이랄까. 재용씨도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 용산세무서는 지난해 5월2일 시공사 건물의 재용씨 지분을 압류했다.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땅을 둘러싸고 이창석씨와 수상한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재용씨에게 증여세를 부과했는데 내지 않자, 세무당국이 시공사 건물 지분을 비롯해 재용씨 부인 박상아씨 명의 부동산에 대해서도 압류했다. 

2010년 10월 전두환씨가 강연 수익 300만원을 납부하면서 미납 추징금에 대한 추징 시효는 2013년 10월까지 연장되었다. 추징금 시효는 보통 3년인데, 이 기간에 1원이라도 내면 3년씩 자동 연장된다. 본인이 내지 않거나, 검찰이 숨은 재산을 찾아내 압류하지 못하면 시효는 자동 소멸한다. 2세에게도 추징금을 물릴 수는 없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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