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3월18일 인도 뉴델리에서 망명 티베트인들이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잡혀가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공식 엠블럼 ‘춤추는 베이징(Dancing Beijing)’은 빨간 바탕에 하얀 사람이 춤추는 형상이다. 요즘 이 엠블럼이 수난을 겪는다. 중국의 티베트 탄압 소식에 분노한 전세계 네티즌이 엠블럼을 조금씩 고쳐 패러디하는 게 유행이 됐다. 수정된 엠블럼에서 하얀색 주인공 몸짓은 더 이상 춤이 아니라, 가슴에 총을 맞고 괴로워하거나 고문으로 몸부림치는 동작으로 바뀐다.

3월10일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시작된 티베트인의 저항 운동이 인근 쓰촨성 등지로 확산됐다. 중국 정부는 ‘생사를 건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북한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언론 취재가 봉쇄된 티베트에서 지난 10일간 도대체 몇 명이 죽고 체포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3월20일 중국 공안은 시위대에 총을 쏜 사실을 인정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 사망자가 13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숫자는 ‘무고한 민간인’(중국 측 표현)만 센 것으로 ‘폭력시위에 가담한’ 시위 희생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티베트 망명 정부 측은 사망자가 100명이 넘을 가능성이 높고 최소한 1000명이 체포됐다고 추산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이다"

고유의 역사와 종교·문화를 지닌 티베트는 중국이 1951년 점령한 이후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가혹한 인권 탄압이 이어졌다.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인은 중국을 탈출해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티베트 봉기가 있을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뉴스의 중심에 달라이 라마가 서 있다. 달라이 라마는 1391년  이래  14대째 내려온 티베트 불교 지도자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여겨진다. 현 14대 달라이 라마(72)는 1989년 비폭력 독립 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중국 외교부는 3월18일 “달라이 라마 집단이 이번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많다”고 주장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사태 중재를 위해 달라이라마를 만났고,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곧 달라이 라마를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uters=Newsis달라이 라마(위)를 존경하는 티베트인조차 그의 비폭력 온건 노선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중국과 서방 모두 달라이 라마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면이 있다. 이번 봉기는 달라이 라마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무슨 해결책을 내놓을 리도 없다. 물론 많은 티베트인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달라이 라마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외신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는 3월18일 성명에서 “중국이 나를 시위 조종 인물로 지목했는데, 이 주장이 사실인지 믿을 만한 기구에 맡겨 조사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반박했다. 최고 지도자의 말치고는 책임 회피성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이틀 전인 3월16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매우 슬프고, 불안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이다”라고 자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티베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 중국 당국은 티베트에서 소요가 발생한 원인으로 3월10일 인도 망명 티베트인들이 다람살라부터 티베트까지 이른바 ‘티베트 대장정’ 행진을 추진한 것이 중국 내 티베트인을 자극했다고 지목했다. 티베트 대장정은 인도 경찰에게 제지됐다. 그런데 ‘티베트 대장정’ 시위를 기획한 쪽은 달라이 라마가 아니라 티베트 청년회(TYC)라고 불리는 망명 티베트인 단체였다.

티베트 청년회, 달라이 라마 노선에 반기

티베트 청년회는 요즘 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인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이다. ‘독립’ 대신 ‘자치’를 말하는 달라이 라마와 달리 티베트 청년회는 분명하게 완전 독립을 외친다. 청년회는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비판한다.
 

ⓒReuters=Newsis3월17일 경찰 총에 맞아 죽은 주민을 위해 티베트인들이 장례 전통에 따라 돈을 던지고 있다(위).

전세계에 회원을 3만5000명 두었다고 주장하는 티베트 청년회는 인도 내 각종 시위를 기동력 있게 주도하며 저항운동을 이끌고 있다. 츠왕 리그진 회장(35)을 비롯해 회원 대다수가 20~30대다. 이 중에는 티베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망명 2세가 많다. 그런데 투쟁 열기는 되레 망명 1세보다 뜨겁다. 영어도 잘하고 인터넷에도 밝아 세계 언론인의 호감을 산다. 월스트리트 저널 3월20일자 기사는 ‘티베트 청년회가 중국은 물론 달라이 라마에게도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력한 달라이 라마에 비해 티베트청년회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동안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이 별 성과가 없었다는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2년 전 칭짱철도가 개통하면서 한족 인구 유입으로 티베트 전통 문화가 파괴되면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3월21일 티베트청년회 대변인 텐진 노쌍 씨(26)는 〈시사I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은 툭하면 달라이 라마가 시위대를 조종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는 정신적 지도자일 뿐이지 구체적인 투쟁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특히 티베트 현지 저항 조직과는 아무런 연결선이 없다. 중국이 시위의 순수성을 훼손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를 이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텐진 대변인은 티베트청년회가 달라이 라마에 이어 차세대 티베트 독립 운동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그렇지 않다. 독립 투쟁의 리더는 티베트 안에 있는 주민 자신이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봉기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도 티베트 청년회도 배후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티베트 청년회의 부상은 티베트 독립운동이 질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동안 티베트 저항운동의 중심은 ‘살아 있는 신’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신화적 종교 투쟁에 바탕을 두었다. 반면 티베트청년회는 종교색이 거의 없다. 근대적 인권 운동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스스로 한계를 깨달은 듯하다. 3월18일 그는 “상황이 통제될 수 없는 지경이라면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완전히 물러나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15대 달라이 라마를 뽑을 준비를 하고 있으나, 티베트 밖에서 태어난 달라이 라마는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합리적 교육을 받은 신세대는 ‘신의 환생’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저 전통에 따라 달라이 라마를 존중할 뿐이다. 티베트 주민들이 중국 공안의 총격에 쓰러질 때 ‘관세음보살의 화신’ 달라이 라마도 죽었다. 단지 일흔 두 살 노인이 남았을 뿐이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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