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고산씨(위)가 교체된 이유를 러시아 수출통제 강화 추세와 맞물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3월10일 한국인 최초 우주인 후보 고산씨가 이소연씨로 교체됐다.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훈련 중인 고산씨가 외부 반출이 금지된 훈련 교재를 가지고 나가 러시아 연방우주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뒤, 올 2월 하순 또 교육과 무관한 훈련 교재를 임의로 빌려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주선 발사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탑승자 교체는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고산씨가 산업 스파이라거나, 러시아가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려 한다는 식의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최근 국제안보통상 분야의 화두로 떠오른 수출통제(Export Control)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육과학기술부 발표에 따르면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9월 러시아 연방우주청이 고산씨의 훈련 교재 반출을 적발하면서부터다. 이 시점은 바로 직전에 열린 러시아 수출통제위원회 회의와 맞물린다. 2007년 8월10일 열린 연방수출통제위원회 회의에서 위원장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는 “주요 정보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외국과의 항공우주 협력사업을 철저히 모니터할 필요가 있다”라며 한국을 콕 찍어 언급했다. 그는 또 “한국과 우주항공 협력사업을 실행하는 데 신중하고도 균형감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중요한 군사 정보와 기술 유출을 막는다는 견지에서 협력사업 과정을 모니터하고, 러시아의 국방과 안보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바노프 발언 직후인 9월 고산씨가 러시아 우주연방청의 감시에 걸린 것은 우연일까.

수출통제위는 권한 막강한 부처통합위

러시아 연방수출통제위원회(Комиссии по экспортному контролю, 수출통제위원회)라는 기구를 깊이 살펴보면 사태의 맥락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구는 러시아의 수출통제 정책에 대해 최고 결정을 내리는 부처통합위원회로 관련 연방기관이 모두 참여한다.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 23명은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해 외무부·산업에너지부·경제발전통상부·연방원자력청·대외정보청·연방군총사령부총국·연방안전보장평의회 등 내로라하는 기구의 장차관급 간부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 3분의 1 이상이 국방 보안 관련 인사다. 수출통제위원회 위원장 이바노프 제1부총리는 KGB 시절부터 푸틴의 오른팔로 일하며 한때 그의 후계자로 거론된 러시아 정권 핵심 중의 핵심 실세다.

한국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점은, 23명 위원 가운데 바로 가가린 우주센터와 ‘최초 한국인 우주선 탑승사업’을 책임지는 연방우주청 청장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8월10일 이바노프 발언은 연방우주청장을 겨냥해 들으라고 한 말이나 다름없다.

ⓒReuters=Newsis러시아 정계 실력자 이바노프 부총리는 KGB 출신으로 수출통제위원회 위원장을 겸한다.
당시 회의석상에서 페르미노프 연방우주청장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 이바노프는 “양국 간 협정은 우주 연구와 평화적 이용이라는 토대에서 이뤄진 것이며, 우주선과 발사체  개발 및 운용을 포함한 첨단 기술을 보호하는 조처에 대한 동의도 포함한다”라고 강조했다.

페르미노프 우주청장 머릿속에는 지난 2004년 한국과 ‘우주기술 협력협정’에 서명한 일과, 러시아 기술의 제3국 유출 방지를 담은 ‘우주기술 보호협정’ 추진 사실이 떠올랐을 것이다. 러시아는 우주 관련 기술 유출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엄격하게 통제하는데, 이때 적용된 법 중에 하나가 수출통제법이다. 이바노프의 강조 발언은 페르미노프로 하여금 고산씨 등 한국인의 활동을 철저히 감시하고, 사소한 기술 유출 사례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지 말라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은 현재 러시아와 많은 협력사업을 한다. 다목적 위성을 지구궤도에 근접시킬 첫 로켓 보조 추진장치 발사를 계획 중이며, 이 프로젝트에 흐르니체프를 비롯해 에너고매슈, KBTM 등 여러 러시아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러시아와 원활히 일을 하기 위해서는 최근 러시아의 수출통제 강화 추세를 알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소련 붕괴 이후 1992년부터 2000년까지 러시아의 각종 군사 무기는 통제 없이 외국과 테러 집단에 흘러가는 일이 많았다. 오죽하면 ‘돈만 주면 핵무기도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을까. 하지만 2001년 푸틴 대통령이 당선하면서 러시아는 수출통제 관리조직과 수출통제법을 대거 정비했다. 수출통제위원회가 설립된 것도 당선 직후인 그해 1월이다. 2004년 푸틴 제2기 정부는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편해 수출통제 관련 의사결정을 집중화하는 동시에, 수출통제를 무역이 아닌 국가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연방기술수출규제청(ETECS)이 국방부 산하로 넘어간 것이 예다.  2005년 4월 푸틴이 ‘러시아연방 수출통제위원회에 관한 대통령령 제468호’에 서명하면서 수출통제위원회는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를 비롯해 핵·우주·첨단 기술 분야의 외국 협력사업 전반을 관할하는 막강한 기관이 되었다. 이어 푸틴은 2인자 이바노프 국방장관을 수출통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한 뒤 그를 제1부총리로 승진시켰다. 수출통제 정책은 강화되고, 의사결정은 일원화했으며, 수출통제위원회의 영향력이 커졌다.

현재 러시아 항공우주 전문가는 외국 출장시 일일이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며, 반대로 한국 항공우주 분야 관계자가 러시아를 방문할 때도 미리 여권을 보내 정부 승인을 얻어야 한다. 지난 2006년 8월 러시아에서는 금속 관련 고급 정보를 한국 기업에 유출한 혐의로 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초유연금속연구소장 오스카르 카이비셰프가 집행유예 6년을 선고받은 일이 있다. 그가 한국 기업에 제공한 기술이 금속의 유연성과 강도를 크게 높이는 것이어서, 한국이 이를 우주항공 프로그램에 적용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지금껏 수출통제 위반으로 유죄가 선고된 회사는 없어도, 이처럼 과학자가 스파이나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체포돼 처벌되는 사례가 어느 나라보다 빈번하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며, 국제사회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미국 제도를 모델로 시스템 가다듬어

수출통제에 목매는 게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푸틴은 미국 제도를 모델 삼아 수출통제 시스템을 다듬었다. 그만큼 서방 국가의 수출통제는 견고하다. 미국은, 중국을 자국 기업의 공장으로 활용하면서도 여전히 양국 간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출통제 제도를 변용하는 대표 국가다. 지난해 말 미국 의회의 초당파 자문기관인 미·중 경제안전보장검토위원회(USCC)는 연차보고서에서 위법한 기술 이전 및 중국 정부에 의한 산업 스파이 활동 방지를 목적으로 수출통제 정책의 집행예산 증액을 제안한 바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미국 상무부가 중국군 현대화를 의식해 중국으로의 첨단기술 수출에 대한 통제 강화책을 발표한 바 있다.

원래 수출통제는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개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국의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를 위해 차용한다. 이번 사건처럼 러시아는 자국이 우위를 갖는 부문에서는 확실한 통제와 보안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그동안 ‘기술 습득국’이라는 이유로 수출통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 최초 우주인 선발 행사가 진행될 때 ‘호화 우주 관광여행’이라며 냉소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이번 고산씨 해프닝은 역설적으로 우주인 훈련이 단순한 체험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우주인 교체 사건이 국제 수출통제 경쟁 속에 우리네 기술 개발과 수출통제 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윤덕찬 (경희국제안보통상법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