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4일 티베트에서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안팎의 어딘가에서 뭔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을 가져왔던 터였다. 당장 3월22일로 예정된 타이완 총선에 미칠 파장이 생각났다. 티베트의 독립과 민주화 요구가 타이완 독립운동에 다시 불을 댕기면,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후보가 총통이 된다 해도 양안 정세는 계속 불안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어디 타이완뿐이랴. 올림픽 이후 경제 거품이 꺼지고, 거기에다 여타 지역의 소수민족 문제까지 겹치면, 자칫 천하대란으로 접어들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하게 된다.

사실 지난해 버마 사태 역시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기 직전, 버마 정국은 오히려 중국 영향권 안에 편입되면서 안정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IMF가 버마에 대한 연료보조금을 삭감해서, 결과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정국이 불안정해졌다. 버마를 중국의 틀 안에서 끌어내려는 미국 특정 세력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티베트 사태 역시 한족의 무리한 이주 강행, 서남공정의 실패, 티베트 불교에 대한 중국 당국의 몰인정 등 언론에서 열거한 이유만으로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그런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쳤다 해도 왜 2008년 3월14일 바로 그 자리에서 시위가 일어나야 했는지, 그리고 중국 당국의 이상한 대응 방식 등에 대해서는 별도 해명이 필요하다.

필자 역시 의문만 품었을 뿐 딱히 ‘이거다’라고 못하고 있을 즈음, 평소 안면이 있던 서방 전문가가 묘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중국의 역대 정부가 즐겨 써온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은 사실 오랑캐를

ⓒReuters=Newsis전인대 기간인 3월15일 회동한 쩡칭훙(왼쪽)과 후진타오.
이용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후진타오가 앞으로 티베트 사태 책임을 누구에게 묻는지 예의 주시해보라”고 말했다.그는 또 “1년에 100여 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는 시위 현장이 중국 전체적으로 약 300곳이나 되는데, 이런 곳은 철저히 통제가 이뤄져왔다. 그런데 티베트 사태만 요란하게 보도되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불현듯 지난해 10월 말 찾았던 ‘그레이(회색빛) 베이징’의 모습이 떠올랐다. 10월15일부터 시작된 중국 공산당 제17차 당대회는 홍콩과 타이완의 관찰자들이 ‘유례없는 정치 대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살벌했다. ‘물러나는 권력’ 쩡칭훙이 ‘살아 있는 권력’ 후진타오로부터 차기 대권을 걸머질 후계자와 치안 최고 책임자인 공안부장 자리를 빼앗아내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특히 저우융캉(周永康)에게 공안부장을 넘기라는 쩡칭훙에게 후진타오는 ‘재떨이까지 날리며’ 한 시간 동안 격렬하게 맞섰으나 결국 그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우융캉의 국무위원 탈락은 티베트 사태 때문?

그 뒤 공안부장 자리는 10월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저우융캉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하면서, 쩡칭훙계인 멍젠주(孟建柱) 장시성 당서기에게 승계됐다. 200만 중국 경찰의 최고 총수이자 베이징 올림픽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인 공안부장이야말로 이번 티베트 사태의 책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월 정치 대란 이후 절치부심했을 후진타오가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리 없다는 점에서, 티베트 사태를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장은 했을 수 있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온다.

권력 내부의 투쟁이 주변의 소요 사태를 필요로 하고, 주변의 소요 사태가 다시 권력 투쟁을 격화하는 악순환 관계 속으로 중국이 빠져들어 갈지도 모를 일이다. 가설로만 떠돌던 ‘2008년 위기론’이 실체를 얻어가는 느낌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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