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여긴 마당이 있네. 하늘집 같아.” 마감 공사가 한창인 현장에 멋쟁이 부인이 들어오며 했던 한마디. 많은 애정을 쏟은 만큼 이름을 고민하던 차에 하늘집이란다. ‘하늘집.’ 이 집의 의도를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하는 참 멋진 이름이다.

아파트와 주택의 가장 큰 차이는 세상과 친해지는 방법의 차이인 것 같다. 이웃과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이 아파트에서는 시간을 내야 하는 기회라면, 주택에서는 창 너머 이웃과의 눈인사, 마당의 잡초를 정리하다 자연스레 친해지는 삶에 녹아 있는 사귐이다. 낙엽을 쓸고 아무도 밟지 않은 간밤의 눈을 만나는 기쁨. 잠이 묻은 커피 한잔으로 즐거운 아침마당. 이런 한 편의 일상이 주택에 사는 특권이 아닐까.

집을 비우는 시간이 더 많은 도시민의 삶을 담아야 하는 도시형 주택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하나의 해결책은 우리 한옥과 같은 중정 구조이다. 아파트가 방들이 겹쳐진 꽉 찬 박스형 구조라면, 한옥은 실(室)들로 마당이 에워진 빈 박스처럼 모든 실이 안마당과 직접 닿아 있고 마당은 세상과 소통하는 장점이 있다. 판교의 하늘집(2011, 경기도건축문화상)과 노란돌집(2012)은 현대인의 생활에 필요한 프라이버시와 세상과의 소통, 그 둘을 충족하는 중정형 주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 크기의 마당을 확보하는 것인데, 한순간 방심하면 중정은 감옥처럼 갑갑해진다. 마당이라면 ‘저 푸른 초원’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도심의 마당은 쓰임이 다르다. 하늘집의 경우 마당에 잔디를 꼭 심어달라는 건축주의 유일한 소망을 뒤로하고 70%를 ‘데크’로 시공했다. 6개월 후 여전히 불편하면 건축가의 부담으로 전면 교체하겠다는 어이없는 고집으로 최소한의 조경을 했다. 현대인의 일상은 주차장의 잔디조차 돌보기 여유롭지 않아 ‘잡초 밭’을 만들기 일쑤인 것처럼 집도 풀도 사랑하고 보살피지 않으면 투정을 부린다. 아파트의 편리함에 익숙한 도시민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리의 부담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집을 설계하는 것은 삶을 디자인하는 일

손님 초대가 잦은 하늘집의 마당은 낮이면 노천 카페로, 밤이면 야외 식당이 되어 자연의 정취를 더하고, 이웃집들과 인접한 노란돌집의 마당은 동네 반상회장이라고 한다.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 마당은 자연의 놀이터가 된다. 노란돌집의 유치원생 막둥이는 아빠와 물싸움을 하면서 숨겨진 사내다움을 보여주어 흐뭇했다는 자랑을 전한다. 2층 옥상정원에 마련된 한 뼘 텃밭의 채소를 신기해하며 직접 기른 상추쌈을 먹는 즐거움도 소소하단다. 이처럼 각층에 마련된 마당은 카페로, 반상회장으로, 심지어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욕조에 누워 별을 보는 은밀한 장소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건축가에게 가장 신나고도 어려운 숙제는 하늘집처럼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하는 경우이다. 건축주 안계혁씨(51)는 가족 구성과 예산, 답답하지 않은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외에 입주까지 모든 과정, 즉 디자인에서 삶의 편의까지 무한 신뢰와 책임을 건축가에게 일임했다. 집을 설계하는 작업은 어쩌면 삶을 디자인하는 막중한 임무이다. 여성 건축가인 덕분에 밥하고 청소하는 성가심을 공감하는 주부로서, 숨 가쁜 업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쉬고 싶은 직장인 처지에서, 그리고 건축학도인 딸의 꿈을 위해 방들의 쓰임과 관계를 고려했다. 살림이 많아 주방과 다용도실, 집안 곳곳에 최대한 수납공간을 만들어 가사 부담을 덜고, 남다른 작업이 필요한 딸을 위해 2층 가구들은 시공 당시 함께 제작했다. 빛이 드는 지하마당과 접한 AV(오디오 비디오)실은 직장인의 쉼터로, 때로는 부부의 오붓한 데이트 장소로 쓰인다.

하늘집을 보고 찾아와 노란돌집을 의뢰한 건축주 김유재씨(39)는 젊고 세련된 웹디자이너로 설계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 오각형의 대지에 방들이 배치되지 않아 고민하던 중, 일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긴 사다리꼴의 안방을 제안했는데 건축주의 특별한 감각은 오히려 재미있는 공간이라며 건축가를 북돋았다. 중정형 주택의 문제는 대지 경계를 따라 나열되는 방 때문에 생기는 복도인데,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이 공간을 쓰임새 있게 치환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1층 복도는 부엌의 보조 수납공간으로, 2층 복도는 서재로 기능을 보완했다. 디자이너인 건축주의 섬세한 감성은 집이 완공될 때까지 끊임없는 긴장을 요구했지만 가구 하나에도 건축가의 의견을 참고하는 등 곳곳의 디자인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집 한 채를 지으면 10년을 늙는다는 말이 있다. 집짓기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 시간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집은 건축주·건축가·시공자가 좋은 인연을 맺어야 결실을 볼 수 있다. 건축주는 막연히 언덕 위의 하얀 집보다는 개성 있는 나만의 집을 그리는 것이 옳다. 설익은 꿈의 조각들에 무조건 동의하기보다는 그 재료로 입맛 당기는 식단을 만들 건축가를 선택하고, ‘싸게 싸게’보다는 알뜰하고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시공자를 만나야 한다. 현명한 건축주는 올바른 취사선택을 위해 건축가와 시공자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어디서 보고 들은 이야기는 참고일 뿐 그것이 항상 내게도 유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귀가 시간이 일러진 안계혁씨는 ‘무늬만 남편’에서 ‘조금은 남편’이 되었다는 부인의 칭찬에 으쓱한다. 입주한 지 넉 달이 된 김유재씨는 퇴근길에 돌아갈 집을 떠올리며 ‘이 집이 정말 내 집인가’ 하는 꿈을 꾸는 듯하단다. 시간이 흘러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이 어쩌면 건축가로서 누리는 최고의 영예가 아닐지. 마음먹은 의도도 아닌데 판교에서는 중정형 건축가로 불린다. 내년 4월이면 네 번째 중정형 주택인 벽돌지붕집이 완공된다. 사춘기 딸들의 소원인 다락방을 위해 공사 중인 이 집은 후일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자못 기대된다.

기자명 정수진 (건축 에스아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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