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9월 부산 아시안게임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본부 호텔로 지정된 부산롯데호텔에 세계 각국의 스포츠 거물이 모였다. 최고 귀빈인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은 하룻밤 218만원 하는 스위트룸을 썼다. 그런데 자크 로게보다 더 비싼 방을 잡은 인물이 있었다. 그는 하루 숙박료가 무려 363만원에 달하는 270㎡짜리 로열스위트룸에 19박20일 동안 머물렀다. 방값만 7000만원 가까이 낸 것이다. 이 억만장자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이자 아시아핸드볼연맹(AHF) 회장인 쿠웨이트의 세이크 아메드 알파하드 알사바 왕자였다.

요즘 이 왕자(이하 아메드)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핸드볼 부정 시합 파문 때문이다. 대한핸드볼협회는 3월19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 심리에 증인 3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남자 핸드볼 올림픽 예선경기와 지난해 8월 여자 핸드볼 예선경기가 편파 판정으로 얼룩졌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대한핸드볼협회 부회장은 “AHF 회장인 쿠웨이트 왕자가 거액을 들여 변호사를 샀다는 얘기가 나와 염려되기도 하지만,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에 잘 결론이 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메드 왕자가 계속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쿠웨이트 왕실이 전횡을 일삼는 아시아핸드볼연맹을 탈퇴해 따로 협회를 꾸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쿠웨이트와 경기를 하면 심판의 등쌀 때문에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AFH는 재시합을 추진한 한국과 일본을 징계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대를 이어 34년간 권력 실세 노릇

AFH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조적으로 쿠웨이트 왕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4년 아시아핸드볼연맹을 처음 세운 사람이 바로  쿠웨이트의 실력자 마르티르(Martyr) 세이크 파하드 알아메드 알자베르 알사바다.  마르티르는 쿠웨이트 국왕(당시)의 동생이자 아메드 왕자의 아버지다. 그는 오일 달러를 무기로 국제 스포츠계를 주름잡아 세계에서 단 8명뿐인 IOC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는 AFH 출범 이래 자신이 죽을 때까지 회장직을 놓지 않았다. AHF의 주요 보직은 쿠웨이트인이 맡았다. 당연히 연맹 본부는 쿠웨이트에 뒀다.
 

ⓒReuters=Newsis지난 2월26일 한국 핸드볼 대표팀은 국제핸드볼연맹이 심판을 파견한 덕에 쿠웨이트를 이겼다.

마르티르 알사바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다른 왕족은 다 피신했는데, 그는 혼자 남아서 다스만 왕궁을 지키며 저항하다 이라크군에 의해 피살됐다. 죽기 전까지 이라크군 15명을 죽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장남 아메드는 1990년부터 AHF 회장을 대물림했다. 아메드 역시 IOC 위원이며 쿠웨이트 권력 실세다. 정보통신부 장관에 이어 석유장관·에너지장관 등을 맡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 참석하며 세계 경제를 주물렀다. 2006년 1월 전 국왕(삼촌)이 죽고 사촌이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도 그의 권세는 여전하다. 2006년 7월부터 지금까지는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안보국 국장을 맡고 있다.

대를 이어 34년간 권력 실세가 핸드볼연맹을 잡다 보니 AHF는 알사바 집안의 사조직이 되었다. AHF 홈페이지를 보면 첫 화면에 알사바 부자(父子) 사진부터 나온다. 연맹 홈피인지 가족 홈피인지 헷갈린다. 전 AHF 부회장이었던 모하메드 압둘 씨는 지난 2월 〈걸프 데일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AHF는 부패했다. 뇌물로 경기 결과를 바꾸는 일이 성행한다. 뇌물을 쓰는 사람은 아메드 알사바 왕자이며, 경기마다 고위 관계자 한두 명이 돈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유치 때는 우리 편 취급 

억울하게 올림픽 예선에서 패한 우리나라는 AHF와 OCA의 제왕적 구조를 개혁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가 있다. 종종 우리 정치인들은 이런 아시아 스포츠계의 권력 구조를 이용해 과실을 얻곤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17일 쿠웨이트에서 열린 하계아시안게임 개최지 투표 당일, 생중계로 “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 도시는 한국의 인천입니다”라며 발표문을 읽어 시민을 열광케 한 주인공이 바로 아메드 왕자다. 당시 인천시 아시안게임 유치단과 지역 정치인들은 표결 전 아메드 왕자와 만났다는 사실을 유난히 강조했다. 장시간 그를 설득한 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부산 대회를 치른 뒤 1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 아시안게임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이 그 덕분이었을까. 2007년 5월28일 인천시는 한 사우디아라비아 사업가에게 명예시민증을 주었다. 이유는 그가 ‘아메드 회장을 섭외하는 데 성공해 아시안게임 유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좀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스포츠계는 세이크 알사바 집안에 빚이 있다. 아메드의 아버지가 OAC 회장과 IOC 집행위원을 할 때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했다.

1988년 9월30일 한국 여자 핸드볼팀은 소련과 결승리그 최종전을 치렀다. 당시 소련은 북한과 동급의 적국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두 차례 역전 끝에 21-19로 이겨 금메달을 땄다. 구기(球技) 사상 첫 금메달이었다. 결정적 고비 때마다 심판이 상대의 반칙을 잡아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날 경기를 지난해 핸드볼 예선처럼 노골적인 부정 시합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소련 감독은 시합이 끝난 뒤 “이해하기 힘든 판정이 15번이나 있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외신 기자들은 한국이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었다고 말했다.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은 복싱 등에서 논란의 판정승을 거둔 끝에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라는 ‘엽기적’ 목표를 이뤘다. 한국이 ‘쿠웨이트스러웠을’ 시절 이야기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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