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퓰리처상을 95개나 받은 미국의 대표 권위지 뉴욕 타임스(위)는 ‘기록의 신문’이라 불린다.
‘기록의 신문’이라 불릴 정도로 오랜 세월 미국의 대표 권위지로 자리 잡은 뉴욕 타임스. 이 신문의 왼쪽 귀퉁이에는 ‘인쇄하기 적합한 모든 뉴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일종의 편집 방침이 박혀 있다. 1851년 창간 이후 뉴욕 타임스가 이같은 편집 방침에 100% 충실했느냐는 둘째치더라도 적어도 최고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흔적은 확연하다. 가장 객관적인 증거로 뉴욕 타임스는 1917년 이후 미국 최고 언론인상인 퓰리처상을 95개나 받았다. 2002년에는 퓰리처상을 다섯 개 받아 ‘역시 뉴욕 타임스!’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런 뉴욕 타임스가 요즘 구설에 휘말리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중 하나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71)을 겨냥한 흠집내기성 보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제1 보수 논객을 고정 칼럼니스트로 영입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의 논조나 보도 기준으로 볼 때 상식이나 정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정작 뉴욕 타임스 측은 해당 사안이 비판의 소지가 없다는 견해를 고수한다.

우선 매케인 후보 건부터 살펴보자. 보도의 핵심은 매케인 후보가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기 이전, 통신업에 종사하던 31세 연하인 미모의 여성 로비스트 비키 아이스먼(40)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보도가 나간 직후 매케인 후보는 기자 회견을 자청해 관련 사실을 공식 부인하면서 “뉴욕 타임스 보도에 너무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보도가 나오자 공화당 우파는 매케인을 깎아내리고 흠집내기 위한 의도가 숨은 기사라며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공화당 우파의 불만을 산 결정적 요인은 뉴욕 타임스가 해당 기사를 내보낸 시점 때문이다. 원래 뉴욕 타임스는 ‘매케인-아이스먼’ 건에 대해 일찌감치 취재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내보내려다 중단한 바 있다. 당시는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1월부터 본격 치러지는 예비선거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였고, 서로 상대의 약점을 캐내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때이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가 당시 기사 게재를 보류한 채 매케인이 공화당 후보로서 승세를 굳히던 지난 2월21일 해당 기사를 게재하기로 결정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을 노렸음을 의미한다고 공화당 우파는 생각한다. 그러나 빌 켈러 뉴욕 타임스 주필은 경쟁지 워싱턴 포스트의 미디어 전문가 하워드 커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일정을 보면서 언제 어떤 기사를 낼지를 판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매케인은 뉴욕 타임스에 감사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뉴욕 타임스가 설령 매케인을 흠집내기 위해 대세론이 굳어지는 시점을 택해 기사 게재를 결정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역효과를 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뉴욕 타임스는 기사 게재 시기를 매케인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서 승기를 굳히는 때로 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트 롬니·마이크 허커비 등 경쟁 상대가 미처 반격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AP Photo공화당 우파는 뉴욕 타임스가 매케인 후보(가운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려고 시기를 골라 ‘추문 의혹’을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만일 해당 기사가 예비선거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12월에 터져나왔더라면 후보들이 매케인의 도덕성을 집중 공격했을 것이며, 그 경우 지금쯤 매케인이 아닌 롬니가 승세를 굳혔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뉴욕 타임스에 매케인 건이 대서특필된 이후 오히려 위기의식을 느낀 범공화 보수층이 더욱 결속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줬다는 분석도 따른다. 실제로 뉴욕 타임스 보도 직후 ABC·NBC 등 미국 공중파 방송의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폭스 뉴스’와 ‘내셔널 리뷰’ 등 보수 언론은 일제히 매케인을 두둔하고 뉴욕 타임스 공격에 나섰다. 때문에 적어도 결과만을 놓고 보면 오히려 매케인이 뉴욕 타임스에 ‘감사’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마저 나오고 있다.

뉴욕 타임스를 구설에 몰아넣은 또 다른 요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골수 보수 논객인 빌 크리스톨(55)을 고정 칼럼니스트로 영입한 일이다. 뉴욕 타임스가 보유한 고정 칼럼니스트 9명 가운데 지금까지 보수 논객은 데이비드 브룩스가 유일했는데, 크리스톨이 가세함으로써 두 명으로 늘어났다. 하버드 대학 정치학 박사 출신인 크리스톨은 보수파의 대변지 노릇을 하는 주간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이면서 보수 언론인 폭스 뉴스의 해설위원이다.

그는 특히 1997년 동료인 로버트 케이건과 함께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보수 단체를 결성했는데, 당시 창간 발기인에는 훗날 부시 행정부에 들어간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부 장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포함돼 있어 성향을 짐작게 했다. 크리스톨은 이라크 전쟁의 열렬한 지지자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미국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친이스라엘주의자이다.

바로 이런 ‘반 타임스’ 보수 논객을 자유주의 논조를 대변한다는 뉴욕 타임스가 지난해 12월 고정 칼럼니스트로 영입하겠다고 발표한 뒤 실망한 고정 독자가 잇따라 절독을 선언하는 등 내부에서부터 파장이 적지 않다. 실례로 뉴욕 타임스 측은 크리스톨 영입에 관한 독자 편지를 수백 통 받았는데, 대부분 영입 결정을 반대하거나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뉴욕 타임스 경영진은 확고하다. 이 신문 ‘의견란’ 편집장인 앤서니 로젠탈은 논란이 거세지자 “어째서 반대편 견해를 두려워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라면서 크리스톨 영입을 옹호하고 나섰다. 대표적 보수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이 자유주의 논객을 한 사람도 두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뉴욕 타임스의 크리스톨 영입은 파격이다.

미국 정가에서 뉴욕 타임스가 논란의 핵심에 있는 데는 대통령 선거도 적잖이 작용한다. 뉴욕 타임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공화당 보수파는 이 신문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참기 힘들어한다. 그만큼 뉴욕 타임스가 차지하는 위상이 여전히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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