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통신김정일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3월1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전격 방문해 류샤오밍 대사(오른쪽 두 번째)와 악수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 평양 공연이 끝나면 북·미 관계에 ‘멋진 신세계’가 도래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그 뒤끝은 썰렁하다. 2월28일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과는 개인적 유대를 가질 생각이 없다’며 찬물을 끼얹은 데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이튿날 평양에 있는 중국 대사관 방문으로 응수했다. 예정에 없던, 말 그대로 전격 방문이었다.

그가 대사관을 방문한 날, 베이징에서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김계관 부상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힐 차관보가 지난 2월27일에 이어 두 번째 바람을 맞은 것이다. 동남아 순방 도중 기별을 받고 급히 달려온 그로서는 말 그대로 ‘수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점은 베이징으로 향하던 김계관 부상의 발목을 붙잡고 못 나가게 한 사람이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었다는 것이다. 북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김 부상에게 나가지 말라고 직접 지시했다”라고 밝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중국 대사관으로 가버린 것이다. 마치 배수진을 친 듯한 비장감까지 물씬 풍긴다. 북·미 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뉴욕 필 평양 공연이 결정된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때부터 북·미 양측 사이에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됐다. 핵심은 미국 측 참석자의 범위 문제, 그 중에서도 라이스 장관이 참석할지 말지가 관건이었다. 북한 측은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이었고, 미국은 조건을 내걸었다. 즉 북한이 핵 신고에 대한 미국 안에 동의하면 라이스는 ‘한국과 상관없이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양측의 물밑 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라이스 장관이 2월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그 다음 날 평양에서 뉴욕 필 공연을 참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2월15일을 기점으로 라이스 방북 무산

그러나 북·미 간 물밑 협상은 2월 중순께 정점에 달했다가 2월15일 일단 파경을 맞았다. 이날 미국 국무부 숀 매코맥 대변인이 라이스 방북 가능성을 일축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바로 물밑 협상이 깨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 측 협상안이 뭐기에 깨진 것일까. 뉴욕 필 공연 이후 국내외 언론에 미국 측 안이 슬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이미 지난 2월 중순 북측에 건네져 한바탕 논의를 거친 것들이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플루토늄 추출량에 대해 미국이 그동안 주장한 50kg이 아니라 30kg만 신고해도 좋다는 것과 농축 우라늄 문제 및 시리아로의 핵 확산 문제는 비밀리에 미국에만 설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AP Photo중국을 방문한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2월26일 양제쓰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 포즈를 취했다.
북측을 배려한 것일 뿐 아니라 미국이 핵 문제 해결에 적극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안이었다. 그런데 북한 태도가 묘했다. 최근 국내 언론은 핵 신고에 대한 북한 태도가, 핵물질은 지금 신고하되, 우라늄 농축 문제는 6자 회담이 열린 뒤 얘기하자는 것과 미국도 테러 지원국 해제와 관련한 의회 동의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최소한 지난 2월 중순까지 최대 쟁점은 이런 기술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 측이 ‘조건부 라이스 방북’을 주장한 데 대해 북측은 ‘선 방북 후 문제 해결’로 팽팽히 맞섰다. 북한은 라이스가 일단 평양에 오면 김정일 위원장이 통 크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니, 평양에 올지 말지부터 결정하라는 뜻이었던 셈이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지난 2000년 올브라이트 장관 방북 때 사전에 합의를 하고 방북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던 점을 뼈아프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즉, 진짜 할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지 사전에 아무리 약속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 처지에서는 사전에 확약을 받지 않은 채 평양을 가기에는 무리였던 셈이다. 이 문제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가 2월 중순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2월15일 미국 국무부 발표로 이어진 것이다. 앞의 소식통은 “이때를 정점으로 뉴욕 필 평양 공연은 사실 김이 빠진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나 도널드 그레그 대사 등은 라이스가 불참함에 따라 대타로 참석하게 된 인물이다. 라이스는 페리에게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북핵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하자’는 대북 메시지를 주며, 평양에서 계속 협상 해줄 것을 당부했다. 페리 옆에는 미국 측 협상팀이 따라붙었고 2월26일 뉴욕 필 공연을 전후해 평양에서 대화가 이뤄졌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 측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 측 안을 수용하라는 채근에 대해 북한 측은 ‘곧 대답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은 곧바로 베이징에 체류 중이던 라이스에게 전달됐고, 라이스는 같이 도쿄로 출발할 예정이던 힐 차관보를 베이징에 남게 했다. 그러나 답을 주겠다던 평양은 감감무소식이었고, 할 수 없이 동남아 순방에 나섰던 힐 차관보가 기별을 받고 다시 베이징에 나타났는데도 또다시 바람을 맞혔다.

북한이 왜 갑자기 돌아서게 된 것일까. 북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북한은 미국이 대외적으로는 성의를 보이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시간을 끌면서 북한이 백기를 들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테러 지원국 해제에 대해서도 부시 행정부가 얼마든지 먼저 조처를 취할 수 있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2월27일 있었던 라이스의 중국 방문이 북한의 의심을 증폭했다. 즉 라이스가 중국 측에 ‘가능한 한 모든 영향력을 발휘해 북한을 압박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라이스의 요청을 받은 중국은 뒷구멍으로 북측에 ‘평양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식의 구도인가’라며 베이징행을 거부하며 버티는 김 위원장을 교묘히 자극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도 뭔가 상황을 전복시킬 한 수를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바로 대사관 방문이라는 배수진을 쳤다. 테러 지원국 해제 데드라인으로 알려진 3월15일까지 부시 행정부가 의회 보고서 제출 등 성의 있는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자신은 중국으로 북·중 동맹 강화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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