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중국 고학력자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위는 취업박람회에서 즉석 면접을 보는 취업 준비생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 마이애미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20대 후반에 중국으로 돌아온 우원한 씨(吳文翰)는 요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미국에서 내 전공으로 호텔 같은 곳에 취직을 하면 기본 연봉이 4만 달러였다. 중국에 돌아오면 최소한 그 절반인 14만 위안(약 182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줄 기대했다. 현실은 달랐다. 대다수 중국 호텔은 연봉 8만 위안(약 1040만원)을 제시했다. 그것도 좋은 조건이라며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인재들이 줄을 서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원한 씨의 상황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유학생이 중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잘 보여준다.

중국에서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인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MBA 출신이라는 꼬리표까지 거창하게 붙는다면, 인기가 대단했다. 일반 직장에 취직을 원할 경우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골라 가는 것은 거의 기본이었다. 일반 대학 졸업자들의 2~3배에 이르는 최소 연봉 10만 위안(약 1300만원)도 크게 무리한 요구라고 하기 어려웠다. 해외 유학파를 일컫는 하이구이(海歸)라는 거창한 별칭이 최근 고유명사로 중국 사전에까지 등록된 것도 다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 지금 중국 전역에서 이들 ‘하이구이’의 인기가 폭락 중이어서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이들에 대한 명칭도 공부를 끝내고 귀국해 취업을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하이다이’(海待)로까지 치욕스럽게 바뀌었을 정도다. 한마디로 이들에게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따로 없다고 해도 좋다. 아이비 리거나 MBA 출신이 한때 큰 각광을 받다 지금은 그저 그런 인재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의 인재 시장 변화 양상이 중국에서 되풀이되는 셈이다.

하이구이가 하이다이로 떨어지게 된 까닭은 여럿이다. 우선 2~3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전반적인 구직난에서 비롯된다. 현재 중국에서 매년 쏟아지는 대학 졸업 인력은 대략 350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취업 재수생을 합치면 매년 취업을 희망하는 고급 인력은 500만명 가까이나 된다. 아무리 중국의 취업 시장이 넓어도 이들을 다 소화하기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이구이에게까지 눈을 돌릴 기업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불량 유학파’ 뽑았다가 골치 썩기도

너무 임금이 높았다는 것도 문제였다. 현재 중국 대졸 인력의 기본임금은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연 5만 위안(약 650만원)을 넘지 않는다. 비교적 임금이 많은 외국계 기업도 크게 다를 바 없다. 10만 위안 넘게 주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하이구이가 희망하는 연봉은 다르다. 10만 위안까지는 몰라도 5만 위안 이상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몸값으로 연 5만 위안 이하를 받는다면 유학에 투자한 경비를 뽑지 못하는 탓이다.

하이구이의 존재가 과거처럼 대단하게 인식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작용한다. 지난 1990년 이후 해외 유학을 떠난 중국 인재는 현재 무려 50만여 명을 헤아린다. 이 가운데 매년 최소한 10만여 명은 돌아온다는 것이 중국 교육당국의 통계이다. 하이구이가 더 이상 희귀한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이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써도 아쉽지 않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나온다. 

기대보다 능력이 못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 역시 이유로 꼽힌다. 예컨대 기업이 중국에서 대학도 못 들어가고 이른바 조기 유학을 떠난 이른바 ‘불량 인재’들을 이제는 충분히 식별할 눈을 보유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에는 이런 불량 인재들을 뽑아 두고두고 골치를 썩는 회사가 수두룩하다고 한다.

ⓒAP Photo중국의 유학파가 취업 대기자 신세가 됐다. 위는 취업 박람회에서 원서를 쓰는 수험생들.
상황이 이러니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무엇보다 몸값을 스스로 낮추는 황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인력보다 덜 받겠다는 유학파도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하이구이는 일자리만 준다면 월급은 당분간 한 푼도 받지 않아도 좋다는 파격적 조건까지 내건다. 언론에서 종종 언급하는 이른바 링궁즈(零工資)의 선택까지 감수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국의 ‘88만원 세대’보다 훨씬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직종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0대 초반의 차오췬(曹群) 씨는 베이징 근교의 한 장례식장에서 일한다. 이른바 하향 지원을 해 취업에 성공한 경우이다. 그는 귀국 뒤 취업을 위해 무려 수백 통의 이력서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하이구이에서 하이다이로 전락하는 게 싫어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현지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하이구이도 적지 않다. 현실에 적응을 하지 못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다시 돌아오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칭화 대학에서 하이구이를 위한 취업 상담을 하는 하이구이 출신의 마쥔 씨(馬軍)는 이에 대해 “하이구이들은 유학을 떠났을 때처럼 돌아올 때도 청운의 꿈을 품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너도나도 입도선매하려는 초특급 인재가 아닌 한 취업 시장에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홧김에 유학한 현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돌아왔던 하이구이는 현지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한다. 곧 현실에 순응해 귀국길에 오른다”라며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취업을 포기한 채 창업에 나서는 선택은 나름으로 긍정스러운 측면이 많다.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다. 자기가 직접 창업한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의 나스닥 상장으로 일약 중국의 빌 게이츠로 떠오른 리옌홍(李延宏·42), 중국 3대 포털 사이트 써우후(搜狐)의 장차오양(張朝陽·46) 총재, PHS 단말기인 샤오링퉁(小靈通) 제조회사 UT스다캉(斯達康)의 우잉(吳鷹·51) 총재 등이 모두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이구이다. 현재 이들이 창업한 기업은 전국에서 무려 6000여 개, 매출액은 20억 위안(약 2조60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족 하이구이 역시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 경우는 중앙 및 지방정부들도 채용에 적극적이어서 ‘윈윈’의 바람직한 사례로 인식된다.

지금도 하루에 많게는 1000명, 평균적으로 500명 이상의 하이구이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게다가 앞으로는 더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이제는 하이구이도 과거같은 좋은 시절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기자명 베이징=홍순도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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