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가 났을 때 남일당이라는 건물이 용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거기에 왜 가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제야 그 이유를 좀 알 듯합니다.

지난주에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봤습니다. 과연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영화입니다. 개봉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 중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제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용산을 봤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철거민이자 농성자인 사람들이 뚝딱뚝딱 망루를 짓고 있습니다. 망루를 짓는다는 건 기나긴 농성을 시작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망루를 짓는 걸 지켜보던 누군가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용산 문제를 길게 끌지 말고 신속하게 해결하자! 그러곤 테러 진압을 목표로 하는 경찰특공대에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누가 전화했는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전화 한 통으로 테러리스트를 섬멸하는 것이 임무인 특공대가 망루에 투입되기로 결정됩니다. 전화벨이 울리고 특공대가 망루에 진입하기까지 운명의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 그것이 영화 〈두 개의 문〉이 다루는 내용입니다. 특공대가 도착합니다. 날이 환하게 밝기 전에, 시민들이 출근하기 전에 특공대는 1차로 망루에 진입합니다. 그러고 곧바로 다시 2차 진입을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불이 납니다. 불이 난 순간 망루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난 것일까? 증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몇 시간이 지나자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경찰은 사고가 나자마자 시신을 빼내서 가족 동의 없이 부검해버렸습니다. 그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은 경찰에겐 은밀히 처리해야 할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d이우일 그림

영화의 제목 ‘두 개의 문’은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망루가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층에 문이 두 개 있었다는 뜻입니다. 특공대는 어떤 문이 망루로 통하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진압에 필요한 건물 정보를 전달받을 틈도 없이 정신없이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불이 나기 전 철거민 농성자 세 명이 망루의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 죽어.” “올라오지 마.” 다 죽어, 올라오지 마는 무슨 뜻인가요? 하나는 “올라오면 다 죽여버리겠다”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올라오면 너희들도 죽어. 위험해. 올라오지 마”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요?


‘다 죽어’라는 외침의 뜻은?

한 경찰특공대원은 법정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때는 적개심이 넘쳤기 때문에 올라오면 다 죽여버리겠다,로 들렸지만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보니 ‘올라오면 다 죽어’였던 것 같습니다,라고. 이 ‘두 개의 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둘 중의 어떤 문을 통해 용산 참사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용산을 달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다 죽여버리겠다”의 문을 선택했습니다. 재판부는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을 범죄자로,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미 닫힌 것 같은 또 다른 문, 두 번째 문을 열어볼 수 있을까요?

지금 남일당 건물은 사라졌습니다. 남일당 건물이 있던 자리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 친구는 용산에 갔다가 기억이 깨끗이 사라져버린 듯하다고 슬퍼했습니다. 용산은 망각의 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은 우리가 만든 또 하나의 문입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망각의 문을 선택했고, 어쩌면 그것은 제가 당시 용산에 가지 않았던 이유와 같을 겁니다. 저는 그때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잊자.’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제 저는 결코 열어보지 못한 두 번째 문에 대해 생각합니다. 뭘 어쩔 수 있겠어,라는 사람들의 체념과 망각이 실은 진실의 문을 잠그는 자물쇠입니다. 그러니 용산은 다시 기억되어야 하고, 다시 그 진상이 밝혀져야 합니다. 이제 저는 용산에 갈 때마다 매번 이 두 번째 문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자명 정혜윤 CBS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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