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을 매개로 발칸 반도 공략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흑해에서 출발해 발칸 반도를 지나는 가스관 ‘사우스 스트림’.
“굿바이 세르비아!” 발칸 지진이 거대한 체스판 말(馬)들의 전쟁을 촉발했다. 지난 2월17일 코소보 독립 선포로 서방과 러시아가 격돌한 것이다. 발칸 문제 해법에서 서방과 러시아의 견해는 상충한다. 유럽이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자, 러시아는 즉각 유엔 안보리 소집 요구로 맞섰다. 코소보 독립은 유럽 대 러시아, 나아가 범게르만 대 범슬라브 간 갈등을 표출한 역사적 사건이다.

“서방은 코소보 분리 지지라는 이중 잣대식 정책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 코소보 독립선언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월14일 기자 간담회에서 서방을 비난했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해 6월 G8 정상회의에서 코소보 독립 반대를 국제사회에 천명했고, 코소보 지위 문제는 유엔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가 코소보 독립을 반대하는 까닭은 코소보 독립이 러시아 연방 내 수많은 자치국의 분리·독립 운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십 수년간 러시아는 체첸 분리주의 문제로 골치를 앓는 중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발칸 반도라는 전략 요충지의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1812년 부쿠레슈티 조약 이래 발칸 반도에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때문에 유럽연합(EU)과 나토는 동진(東進) 정책을 강행하며 발칸을 아우르려 하고 러시아는 이를 견제해야 한다.

지난해 말 ‘가제타(Gazeta)’라는 폴란드 일간지(12월20일자)는 코소보가 독립하면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문은 코소보가 이미 수개월째 유엔 안보리가 아닌 유럽연합과 나토의 결정에 따라서 독자 행보를 걷고 있음을 언급하며, 이에 대한 모스크바의 대책을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동진 정책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얼마 전 강경 민족주의자인 드미트리 로고진을 나토 대사로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올해 2월 빅토르 유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해서 핵미사일 겨냥 운운하며 흥분했다.

1999년 폴란드·헝가리·체코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며 동진을 시작한 나토는 오는 4월 초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의 때 크로아티아·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 발칸 반도 3개국의 가입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또 독립국가연합(CIS)에 속한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후보국 가입 신청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린다. 이 문제와 관련해 나토는 푸틴 대통령을 초청했고, 크렘린은 참석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코소보 해법에서 유럽은 러시아와는 완전히 상충된 견해이다. 유럽은 발칸 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단일국가의 출현을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큰 원칙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세르비아가 발칸 반도의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자세이다. 국제 전범(戰犯)으로 낙인찍혀 법정에 섰던 밀로셰비치가 표방했던 대(大)세르비아(코소보·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마케도니아 내 세르비아계 밀집 거주지역을 합병한 세르비아)의 출현을 예방하고 세르비아를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구상이다.

ⓒReuters=Newsis위는 지난해 6월24일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발칸 에너지 정상회담 때 푸틴 대통령(오른쪽)이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
발칸에 대한 서방 전략은 역사적 사례에서 드러난 바다. 1980년~1990년대 초 공산주의 붕괴 과정에서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이 잇따라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이 발생했다. 그리고 전쟁이 종결되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은 전쟁 책임을 전적으로 세르비아에 전가했다. 코소보 독립은 과거 발칸 맹주국으로 군림했던 유고연방 해체의 마지막 순서라는 견해이다.

서방은 강한 세르비아의 출현 못지않게 러시아의 발칸 영향력 확대를 경계한다.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민족(슬라브족), 종교(정교), 언어(끼릴어) 측면에서 가깝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세력인 급진당은 세르비아의 미래가 유럽연합이 아니라 러시아이며 따라서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말고 러시아에 근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코소보를 세르비아에서 독립시키는 데 적극적 태도를 보인 데는 이와 같은 국제·정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초부터 러시아는 에너지 협력을 매개로 발칸 반도 공략에 나섰다, 크렘린 정책의 전위대는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이다. 지난해 6월 가즈프롬은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 회사인 에니(ENI)와 손잡고 러시아(크라스노다르스크)에서 흑해 해저를 지나 불가리아(바르나)로 향하는 일명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건설에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불가리아의 불가르가즈와 세르비아를 동참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세르비아는 자국의 독점 국영 에너지 회사인 ‘NIS’ 지분 51%(4억 유로)도 가즈프롬에 넘겨주었다. 또 양측은 세르비아에 러시아 에너지 공급 허브를 건설하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협약에도 서명했다. 협약은 세르비아의 주요 가스관을 연결하고 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협약에 서명한 뒤 푸틴 대통령은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남유럽 에너지 공급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의 전쟁은 발칸에서 시작됐다”

러시아 흑해 연안을 출발한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은 불가리아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한 갈래는 마케도니아-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 남부로 향하고, 다른 갈래는 루마니아-세르비아를 경유해서 이탈리아 북부와 유럽 중심부로 간다.

서방 측은 세르비아가 러시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유럽 기업을 따돌리고 NIS를 러시아에 넘기고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정치적 동기라고 주장한다. 즉, NIS 거래는 러시아가 국제 사회에서 코소보 독립을 반대해주는 대가라는 얘기다. 또 유럽 측은 나토 회원국이자 유럽연합 가입국인 불가리아가 유럽연합이 주관하는 ‘나부코(NABUCCO)’ 사업 참여를 유보한 채 러시아가 주도하는 사우스 스트림 사업에 동참한 데 유감을 표명했다.

나부코 가스관 사업은 2006년 1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유럽이 가스난을 겪으면서 촉발했고 같은 해 6월 유럽연합이 추진하기로 합의한 컨소시엄 프로젝트다. 이 가스관은 중앙아시아 카스피 해 가스를 터키-불가리아-루마니아-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운반하며 총 연장 3300㎞에 건설비 5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2012년 가스관이 완공되면 이란·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카스피 해 연안국의 가스는 물론 이집트와 시리아 가스도 이 가스관을 통해서 유럽으로 들어간다.

제1차 세계대전은 발칸 반도에서 시작되었고 유럽 역사에서 수많은 전쟁이 발칸에서 비롯되었다. 코소보라는 특정 지역을 넘어서 발칸 반도 전체로 그림을 확대해 이번 사태를 봐야하는 까닭이다.

기자명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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