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라이스 국무장관이 3, 4월 정지 작업을 거친 뒤 5월께 평양에 갈 것이라는 얘기가 워싱턴에 돌았다.
2월25일과 26일은 한반도 정세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 될 것 같다. 2월25일은 이명박 정부 출범일이다. 이와 함께 지난 10년간 남북 관계를 지렛대로 동북아 외교에서 발언권을 행사해온 한국 외교 전략도 사실상 방향 전환을 할 듯하다. 새 정부는 대북 문제의 주도권 대신 한·미 공조를 택했다. 그 다음 날인 2월26일 평양에서는 한국의 지분까지 확보한 미국의 한반도통이 출정식을 화려하게 치른다. 바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이다.

대북 관계에 대한 이명박 당선자 측 주장은 많은 사람을 헷갈리게 해왔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 신대북 정책은 일부 내용에서 햇볕 정책보다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신대북 정책을 추진했던 정형근 의원이 이명박 당선자의 국정원장 제의를 고사함으로써 인적 연결고리는 끊어진 상태다. ‘비핵개방3000’이니 ‘300만 달러 수출기업 100개 육성’이니 하는 장밋빛 구호도 있지만 아직까지 각론도 실행 의지도 확인된 바 없다.

미국, 대북 협상에 남한 카드 활용할 듯

이명박 정부의 행로를 무엇보다 선명히 드러낸 사례가 바로 김영남 상임위원장 방한 건이다. 북한은 이를 계기로 남북 관계를 좀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당선자 측은 ‘한·미 관계 복원에 밀려 남북 관계는 4월 이전에는 어렵다’는 견해였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명박 외교안보팀은 지금까지와는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라고 규정했다. 지난 10년간 남쪽 정부가 ‘남북 관계를 선행해서 국제 관계를 견인한다’는 방침이었다면, 이명박 팀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선북 정책’에서 문제가 모두 파생했다고 본다. 즉 주변 국가가 한국을 불신하고, 대북 진출 경쟁을 벌인 원인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10년간의 대북 지원이나 남북 경협이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새로운 방향은 이렇다. 우선 북한과 독자 접촉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미·일·중·러 등 주변국과 관계를 우선한다. 특히 미국과의 신뢰 회복에 중점을 둔다. 모든 문제를 미국과 상의해가며 보조를 맞춘다. 중국·일본·러시아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들 역시 한국을 배제하면서까지 골치 아픈 북한 문제에 매달릴 까닭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 한국이 다시 대북 문제의 주도권을 찾아올 것이다. 결국 우리가 대북 주도권을 포기하면 다른 나라도 그만둘 것이므로, 나중에는 우리 것이 된다는 얘기다.

ⓒAP Photo2월26일 평양에서 열리는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오른쪽) 공연은 미국의 대북 진출을 알리는 진군 축하무대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생큐’다. 상하 양원이 나서서 열렬히 환영할 정도이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에 따르면, 워싱턴은 지금 꿈에 부풀어 있다. 그동안 미국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 방해 요인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북·중 관계이고 또 하나가 남북 관계다. 북·중 관계는 이미 무시해도 될 정도다. 지난 2006년 이래 관계가 틀어져 이제는 중국이 미국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볼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버티고 있어 골치 아팠는데 이명박 정권은 자발적으로 들어서 바치겠다고 한다.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나.

앞의 한반도 전문가는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부터 미국의 대북 프로세스는 본격화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구체적으로는 2월25일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취임식 참석차 서울에 온 김에 대북 문제 주도권을 미국에 넘기고 한국 정부는 이를 뒷받침한다는 점을 한·미 간에 분명히 다짐받으려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앞으로 북한과 협상에서 남한 카드를 철저히 활용할 계획이다. 미국은 흥정은 자신들이 하지만 돈은 내지 않는 나라다. 그동안은 일본이 돈을 냈는데, 여기에 한국이 새롭게 머리를 디밀었다. 미국으로서는 절차가 까다로운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상대하기 수월하다. 협상은 미국이 하고 그에 따른 비용은 남한이 지불하는 역할 분담 체계가 성립한다. 김영삼 정권 당시 제네바 협상 모델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협상 시작 단계부터 한국 카드는 다양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은 북한이 미국 말을 들으면 북·일 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겠다는 게 미국의 단골 메뉴였다. 그런데 이제는 남한으로부터 대북 지원을 대폭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또는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남쪽에서 한 푼도 못받을 것이다 따위가 주 메뉴가 될 듯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난 10년의 정권보다 훨씬 많은 대북 지원이 이뤄질 수도 있다. 북·미 관계가 좋아질수록 한국의 부담이 더욱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지원을 퍼붓는다 해도 한국에는 남는 게 없다는 점이다. 생색은 미국이 내고 한국은 돈만 대고 끝날 수도 있다. 그간 대북 퍼주기가 논란이 됐는데 자칫하면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2월26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평양 공연에 맞춰 방북 얘기가 나돌던 라이스의 일정이 늦춰진 것도 바로 한국 변수 때문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확실히 다짐을 받아두고 북한에 가야 미국이 쓸 카드가 많아진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따라서 2월26일 콘돌리사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서울에 와서 한국과 역할 분담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미국은 대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3~4월에 6자 회담과 6자 외무장관 회담을 거쳐 5월에 라이스가 평양에 가는 일정이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 다시 거론되었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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